서른여섯의 생일
생일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내가 태어난 날이자,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일한 하루?
생일이 갖는 의미는 우리가 나이를 먹으며 변화해 간다. 어릴 적엔 나를 위한 특별한 날인 것 같아, 1년 중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었다. 그날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게 좋았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관심을 한껏 받아 사랑받는 기분으로 충만해지는 날이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점점 내 생일의 존재는 희미해져 갔다. 어떤 이유로 이렇게 변화하게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가 급격하게 나이를 먹었거나 세상에 초연해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내가 주인공이 되는 생일이 어쩐지 조금 낯선 느낌이다.
생일도 그저 지나가는 하루에 지나지 않다고 애써 들뜨는 마음을 부여잡았던 탓인지, 정말 내 가슴에 일렁이던 주인공이 되고자 하던 욕구가 사라져 버린 탓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어릴 적 본인 생일을 위해선 미역국을 끓이지 않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가족들 생일상은 준비하면서 엄마 생일은 안 챙겨?"
"생일이 뭐 별 건가. 엄마는 그런 거 의미 없어."
어린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본인을 위한 날이 의미가 없는 걸까.
하지만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의 말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의 특별함이 조금 불편해지고, '생일이 뭐 별 건가' 싶어 유난 떨고 싶어지지 않는 마음. 나도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버렸다.
친구와 생일 축하를 나누며, 이런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니 친구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 되어버렸단다.
"나도 그래. 챙길 게 많아지니 생일 의미 없어지더라. 그래도 우리 생일은 우리가 잘 챙기자."
어쩌면, 내 생일을 귀하게 여기고 스스로 축하해 주는 마음은 '나를 아끼는 마음'일지도. 내가 나에게 의미를 주고 사랑해 줄 때, 우리는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는 게 아닐까.
가정이 생기고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며, 우리들의 대부분은 나 자신의 많은 부분을 잊고 살아가게 된다. 그중 하나가 내 생일에 무감각해지는 것. 남편과 아이의 생일은 특별하게 선물을 준비하고 생일상을 차려내지만, 정작 내 생일을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떤 이유랄 것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엄마가 되었다.
앞으로는 내 생일을 조금 더 기쁜 마음으로 맞아주어야겠다.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친구들을 챙기는 반만큼이라도 나를 챙겨줘야겠다. 나 자신을 아낄 때, 비로소 다른 사람도 나의 존재를 더욱 소중히 아껴줄 수 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아이와 함께 한 서른여섯의 생일은, 평소 주말과 비슷하게 보낸 평범한 하루였지만 참 행복했다. 따뜻한 가을 햇살이 가득한 하루였기도 하고, 아이와 영화관 데이트를 하는 내내 아이가 소리 내어 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는 애니메이션 영화 속 웃음을 유발하는 코드에서 정확하게 소리 내어 웃으며 아이다움을 한껏 보여주었다.
'아, 영화 만든 사람들은 관객 아이가 이렇게 웃기려는 장면에서 빵빵 터져주면 진짜 뿌듯하겠다.'
아이는 용돈을 차곡차곡 모은 지갑을 꺼내며, 내게 선물을 사주겠다고 했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향수는 비싸서 못 사줘도 다른 선물은 사줄 수 있어."
"아니야. 엄마는 편지면 충분해."
"내가 엄마한테 선물해주고 싶어서 그래. 근데 엄마가 안 받겠다고 하면 내가 속상해. 나도 엄마한테 뭔가 해주고 싶단 말이야"
"그래? 그럼 머리띠 하나 사줄래?"
아이는 마트에 있는 액세서리 가게에서, 내게 큐빅 가득한 머리띠를 선물로 사주었다. 아이는 예쁘다고, 엄마에게 잘 어울린다며 아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받는 행복 말고도, 주는 행복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아이가 내게 선물을 사주며 느낄 수 있는 행복을, 내가 아이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빼앗으려 했다. 순간 '아차' 싶었다.
서른여섯 나의 생일, 아이에게 주는 기쁨을 알게 해 준 오늘이, 참 좋았다.
엄마인 나만, 아이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을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덧 아이는 키가 자란 만큼 엄마에게 무언가 내어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를 위해 선물을 사주고 엄마가 예쁘게 머리띠를 한 모습을 보며 뿌듯해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아이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아이와 나는 조금의 나이차가 있을 뿐 그 마음엔 큰 차이가 없음을, 오늘 또 이렇게 배우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생각이다. 그 길 위에,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는 아직도 성장 중인 나에게, 온전하게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복잡한 삶을 살아내며 단순한 진리를 자주 종종 잊게 되는데,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 명확하게 보이는 순간들이 제법 있다. 바로 오늘처럼 말이다.
내가 아이에게 주는 기쁨을 아이도 느낄 수 있도록, 자주 종종 기회를 허락해 줘야겠다. 아이의 마음에 어여쁜 꽃들이 자주 종종 피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