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개꽃 Oct 02. 2023

오리 가족을 만났다

모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이른 아침엔, 계절의 냄새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때로 발바닥 밑까지 내려와 있던 나의 마음을 원래의 자리에 올려다 놓을 만큼. 오늘도 아침 공기를 마시기 위해, 아침 산책을 나섰다.


연휴 기간 동안은, 아이를 맡기고 이른 아침을 거닐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친정 근처 천변으로 매일 아침산책을 했다. 오늘의 아침 공기는, 가을의 색을 한껏 담아 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내 마음이 색이 바래 빛바랜 종이처럼 변해버렸음에도, 그것과 상관없이 여전히 세상은 찬란함을. 어느덧 내 옆에 가을이 와있음을.

'그래, 어쩌면 내게 큰 일처럼 느껴지는 지금 이 모든 일이, 지나고 보면 별 일 아닐 수도 있어. 결국 시간은 돌고 돌아 다시 가을로 왔는 걸.'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이 예뻐,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금빛 윤슬이 반짝이며, 일상 속 고단함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그렇게 윤슬 앞에서 사진도 찍고 동영상에 담아도 보며, 10분을 서성였을까.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오리가족이 보였다. 오리가족은 옹기종기 모여 물살을 가르며 왔다 갔다 헤엄을 치기 바빴다. 물 밖에서 보는 그들은 유유자적해 보였지만, 물아래에서 그들은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고, 새삼 오리가족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과 오리가족의 삶은 그리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순간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의 인생을 보며 나보다 평온하고 행복한 것만 같아, 때로 왜 내 인생만 이렇게 지뢰밭일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게,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아니던가.


다른 누군가는 당신의 인생을 보면서 퍽 부러움을 느낄 수 있다. 한 뼘 멀리서 바라보는 당신의 삶은, 마치 오리가족의 평온함처럼 보일 테니. 그 아래서 끊임없이 발을 구르며 헤엄치고 있단 사실은 모를 테니.


나는 결혼을 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면 부럽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아이를 낳고도 여전히 아가씨 때 몸매를 유지하며 운동도 꾸준히 하고 나를 가꾸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인다고들 했다. 보이는 부분은 분명 여유가 있는 삶이었지만, 마음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나의 다양한 취미 생활은 삶의 안정적인 지표처럼 보여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곤 했지만, 취미 생활조차 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은 끝없는 암흑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았고 더 열심히 취미를 가꿔줬다. 물론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20대 때 같으면 친구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싱글맘이 된 나의 삶을 비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짧은 결혼생활을 하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건 쉬운 인생은 하나도 없다는 것. 어떤 삶이든 그 삶을 살아내기 위해선 꽤나 노력이 필요하고, 그 삶을 위한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인생의 밝은 부분만 바라보며 부러워할 필요도, 내 삶을 비관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게 주어진 길 위에서, 내 행복을 위해 살아가면 그뿐이라고.


이혼 후 때로 마음이 무너져, 내게 찾아온 불행에 비교의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곤 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보이는 내 삶과 버텨내는 내 삶이 다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삶도 나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지금 이 순간에도, 비교의 마음이 불쑥 고개를 들어 당신을 괴롭히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속에 이 문장을 담아두기를.

'모든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오리 가족과 함께한, 아침 산책.
이전 02화 생일의 의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