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에서 보내는 추석
친정으로 향하는 추석이 아직은 낯설지만, 온전하게 명절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연휴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부모님 댁으로 향하며, 굳이 캐리어를 꺼내 옷가지들과 노트북을 담아 나왔다.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친정에 가서 2박 정도 할 예정임에도 캐리어를 챙긴 이유는,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이혼을 하고 1년 동안, 비행기 티켓을 찾아보고 여행 계획을 짰다가 포기하기를 여러 번. 여행을 포기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아이를 맡기고 여행을 가려면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부담, 혼자 여행을 떠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였던 금전적인 부담. 이혼을 하고 아직 큰 수입이 없는 터라, 통장에 있는 돈을 깨서 여행을 가는 게 상식적으로 맞는 건지 도통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여행에 대한 갈증이 있는 상황에서, 명절 때라도 기분만 내고 싶어 캐리어를 꺼내 끌었다. 바닥에 캐리어 바퀴가 굴러갈 때의 느낌이란, 내가 마치 공항으로 떠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확 비행기 티켓을 지를까.' 하마터면 진짜 비행기 티켓을 끊을 뻔했다.
그렇게 캐리어와 함께 친정집에 도착해 엄마, 나, 아이 셋이 나란히 앉아 꼬치를 끼우고 전을 만들었다. 3대가 모여 부침개를 만들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그 시간이 너무나 따뜻해, 오늘만큼은 시간이 조금 더디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을 가고선, 시댁을 다녀오고 늦게 친정에 왔으니 엄마와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 시간이 없었다. 결혼 전에는 당연했던 일상을 다시금 하니 기쁨은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우리는 평범함에 속아 일상 속 행복을 종종 잊기 마련이니까.
친정 부모님께선 아이를 위해 올해는 송편을 함께 빚자고 하셨고, 우리는 빙 둘러앉아 추석의 꽃인 송편까지 만들었다. 가족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 명절을 보내는 중이다. 아이와 엄마가 끊임없이 말을 건네주는 통에, 도무지 혼자만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 평소보다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이 시간이, 정말 풍요롭게 느껴져 풍요로운 추석이란 게 어떤 의미인지 몸소 느낄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가족들이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는 명절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특별할 것 없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을까.
이따금씩 아픈 허리를 통통 튀기시며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의 주름과 흰머리가 부쩍 눈에 띄었다. 이제 나이가 느껴지는 부모님의 모습에, 코 끝이 시큰해졌다. 내 곁에 두 분이 더 오랫동안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송편을 열심히 빚어보았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나의 소망처럼, 이번 명절은 평범해서 행복한 명절이다. 예전이었으면 절대 몰랐을 평범함의 행복. 그런 의미에서 내가 지나온 힘든 시간들이 밉지만은 않다. 힘든 시간들이 있었기에, 평범함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까.
오늘도 평범한 하루에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