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갔던 만남들을 하나씩 돌려 감아 보았다. 크나큰 세상에서 나와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다지만 부쩍 이유 모르게 소원해진 관계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관계가 더 발전하기를 원했던 건 나의 노력 없는 욕심이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내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렸던 시간들이 떠올라 서운한 마음을 구겨 버리고는 더 많이 생각하는 사람만 더 깊게 잠수하는 꼴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자각한다. 반대편에 서있는 그는 유유자적하게 물 위에 떠있을 수도 있겠지만.
마음을 준다는 것은 꽤나 가벼워 보일지라도 그 진심만큼은 명백하다. 이를 가볍게 보는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나 빠르게 등을 돌리곤 했었다. 그래서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처럼 우위 관계를 나도 모르게 만들어내는 사람을 제일 먼저 피하게 된다. 나는 사람을 마주할 때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밸런스가 어긋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다. 줄기차게 쉬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을 만나면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저 멀리 증발해버린다. 대화를 하는 건지 무용담을 듣는 건지 의아해지는 그런 대화는 테이블 앞에 앉아있기 너무 힘이 드는 것 같다. 그렇게 의도치 않아도 청자가 자신의 관객 그 이상이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유독 눈에 빨리 띈다.
관계에 진심과 애정이 기본적으로 내재되어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 옅어진 관계들을 보면 오로지 나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쓰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기 솔직히 싫어졌다.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기분이 쉽게 좋아지고 행복해하는 나라지만, 지금은 그들 하나하나를 전부 신경 쓰기에는 너무 귀찮다.
특정 사람과 선이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은 쿡쿡 쑤시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혼자 관계를 위해 노력해서 돌아오는 게 뭐가 있나 싶다. 나를 위해 돌아오는 게 도대체 뭔디요? 뭣이래요? 버젓이 상한선이 존재하는 관계를 위해 나는 더 이상 애쓰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돌연 사라져도 어떤 사람은 망설임 없이 연락을 할 것이고 상대방이 돌연 사라진다고 해도 내가 그 사람과 지속해서 인연이 맞닿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연락을 할 것이다. 혹은 관계의 진전이 지금이 아니라 내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어느 먼 미래일 수도.
그런데 말이야 뭔가 이건 아니라고 느껴지고 썩 좋지 않은 감정이 관계에 깃들면 그 관계는 그냥 거기까지인 것 같아. 그거 혼자 이건 둘 다 이건 둘이 일치하는 것보다 그런 신호가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존재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심을 가리기 위해 원치 않는 것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둘은 오래 보지 못할 사이로 가고 있을 거야. 마음에 걸리는 건 계속 생각나기 마련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