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고쳐 묶고 선풍기 바람이 어깨에 가도록 틀어본다. 비가 올랑말랑 하는 바람이 부는 토요일 오후에는 카메라를 들었던 날들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원복을 입고 식판 모양의 도시락통을 챙겼던 유치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동생 과자를 뺐어먹기 바빴던 어린 나의 기억은 미미하게 남아있다. 엄마가 남겨놓은 사진들이 담긴 커다랗고 무거운 앨범을 펼쳐보면 엉뚱한 미소로 포즈를 잡고 있는 내 모습이 여러 군데 있었다. 그것 덕분인지 더듬더듬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빨리 서보라고 조형물 앞에 멀찍이 서서 재촉을 하면 빨리 찍고 엄마 옆에 붙어있고 싶었다. 그렇게 어렸던 내가 이제는 엄마랑 어디를 갈 때마다 셀카를 찍자고 달려가 조른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하는 것보다 카메라를 들어 순간을 남기는 게 더 재미있어지는 나이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볕이 따스하게 들어오면 카메라를 든다.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못 먹을 것 같은 먹음직 스러운 음식이 보이면 카메라를 든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남기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뒤 카메라를 든다.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물건이나 장소가 눈에 들어오면 카메라를 든다.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어 피사체를 찍기 바쁘다.
선명한 화질의 카메라가 휴대폰에 내장이 되기 시작하고 너도나도 하나씩 전화기를 소지하고 다니니 찰나를 담을 수 있는 게 버튼 하나 누르면 가능해졌다. 음 기술의 발전이란 - 이것도 삶의 질이 상승한 예시일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내장된 배터리를 충전해 (비교적) 돌덩이 같은 카메라와 캠코더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사진을 남기기 얼마나 편한 세상이 왔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24시간으로 정해진 하루를 '찍기'에만 몰두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 황급히 카메라로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은 뒤 휴대폰 화면이 보이지 않도록 뒤집어 놓는 건 나의 암묵적인 습관이 되었다. 뭐랄까 찍기는 찍는데 후다닥 찍고 다시 현실 세상에 집중을 하려고 하는 나만의 규칙이랄까. 언뜻 보면 우리는 매 시간 매 순간 카메라와 함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졸업식, 돌잔치 같은 성장의 큰 발자취를 의미하는 행사에서 꺼냈던 카메라를 이렇게 가까이 할 수 있게 되다니!
사진을 찍는 순간들이 많아져서 사진을 많이 찍는 걸까
사진을 많이 찍게 되어져서 사진을 찍는 순간들이 많아진 걸까
사진첩에 속수무책으로 몇 천장씩 쌓이는 기록들을 보자니 내가 저 방대한 것들을 살아 생전에 다시 돌아볼 수는 있을런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웃음) 아무래도 남겨야 할 순간과 그저 오감으로 삼키고 지나가는 순간들을 적절히 판단하여 남기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 같다. 눈 한번 비비고 뚫어져라 눈에 담는 순간들도 있는 거고 친구들의 노래방 한바탕을 영상으로 남겨 두고두고 같이 꺼내보는 순간들도 있으니.
아, 저번주에 그립톡을 사려다가 말았다. 휴대폰에 부착하면 손과 아주 그냥 진하게 한 몸이 되어 내가 하루종일 끼고 다닐 것 같아서. 요번에는 사지 않아 보려고 한다. 일종의 휴대폰 사용 시간 줄이기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보는 풍경을 내가 풍성하게 느끼는 시간들이 점차 많아지기 위해서는 충분히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넓은 들판을 우두커니 서 있는다고 가정할 때 풍경 한 번 카메라에 담아주고 업로드할 사진을 찍으려 앵글에 시선을 고정하고 찍은 사진을 작은 부분마다 신경쓰기엔 (과거의 내가 그랬다) 그 하루가 돌이켜 보았을 때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사진은 찍되 주위를 둘러보며 숨도 크게 들여 쉬어보고, 맑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을 느껴보는 나를 상상하니 내가 가질 수 있는 기억의 범위가 크게 넓어지는 기분이다.
순간이 멈추는 것만 같은 사진 찍기는 포기할 수 없으니
두 행동이 적절히 섞여지며 나의 하루가 쌓여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