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생의 그 모든 다이내믹을 선택한 것이다.
왜?
그게 없으면 심심하니까.
나를 괴롭히는 사람, 질병, 결점, 어떤 측면에서 그것 없이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요상한 무의식은 정말로 그것을 놓길 두려워한다. 아프길 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겠지만, 아픈 상황을 필요로 하는 나의 무의식이 있다면 어떻게 느끼는가? 난 정말 그걸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 맞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겠지만 내 무의식에서 그 똥구덩이를 경험하고 싶다면, 왜 그럴까.
삶의 모든 비극적인 구덩이도 내가 무언가를 위해 판 거라면 이젠 기꺼이 (-다시 나올 걸 잊은 것처럼 아주 푹-) 빠지겠다고. 생각했다. 빠지겠다고 파놓고 안 빠지려고 혹은 빠져서 잠깐 있는 시간을 죽겠다고 발버둥 친 내가 좀 모양 빠져 보였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서 겪는 감정의 다이내믹이 남들이 하지 못하는 걸 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선물인 거지. 그러니 두려움 없이 받아 보려고.
누군가 그랬다. 가만히 가면 쉽고 편한 길을 너는 왜 어렵게 가려고 하냐고. 쉬운 거 재미없잖아. 내 안에서 그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그러나 요즘은 좀 쉽게 가자고도 하는 거 같다. 쉽다는 것이 예측 가능한 길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찌질한 상황조차도. 예측은 여전히 불가다.)
내가 팠다지만 가끔 구덩이가 잔인하리만큼 너무 크고 깊을 땐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케일이 크구만. 아주 보통이 아니야.
아무리 크고 깊어도 언젠가는 거기서 나올 건데 그때 온몸으로 쏟아지는 그 빛이 얼마나 달콤할 건가 말이다. 몇 번의 구덩이를 통해 어떤 것도 잘못될 일은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잘못된 거 같아도 결국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니까.
커버 사진: Cuba, Habana, 20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