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ou inspire me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모성은 타고나는 것인가?

by Iris K HYUN





지금 집을 구하기 전 잠깐 살았던 집의 이웃에는 유치원 다닐 정도의 여자 아이와 부모가 살았다. 가끔 할머니도 드나들며 아이를 봐주시는 것 같았다. 아이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동물처럼 울고 악을 쓰는데 목이 쉬지도 않는지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한결 같이 머리카락이 쭈뼛 설만큼 강렬하고도 원초적인 사운드를 선사했다. 돌고래인가 싶을 정도였다. 저렇게 오랫동안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아이 엄마는 대체 뭘 하는가 싶었다. 그래도 곧 이사 갈 건데 참자 생각하고 넘겼다.



이 무렵 나의 스페인 친구 레베카가 '모성'과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보내줬다. 그녀는 현재 콜롬비아에서 남자 친구와 살고 있는데 자신의 출산을 담은 이번 영상은 두 번째였다. 지난겨울쯤 보낸 첫 영상을 볼 때는 내가 출산 준비를 하는 거도 아닌데 대체 이걸 왜 보라는 거야 싶었는데 그녀가 직접 아이를 출산하는 두 번째 영상은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감동적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가벼운 마음도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엄마가 되는 일을 아주 무겁게 생각하다 못해 무섭게 생각했던 거 같다. 표면적으로는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무의식에서는 온 마음을 다해 아이를 거부하는 듯했다. 그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 내 무의식을 거울 보듯 들여다볼 수 있는데 그런 작용이 매번 내게 어떤 변화를 이끌어냈다.


'엄마의 사랑은 위대한 거야. 모성애는 여자라면 타고나는 거야.' 엄마는 이러이러해야 해라는 이런 틀은 세상이 두 쪽나도 변하지 않을 참인 명제처럼 (의식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를 두렵게 했나 보다. 세상은 착하고 어진 엄마에 대한 위대한 모성을 찬양하는 나머지 자식을 위한 희생마저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 정말 그럴까. 아이에 대한 사랑이 선천적으로 아주 컸을 것만 같은 우리 엄마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엄마는 원래 애들을 안 좋아했어." 나는 그때 좀 놀랐는데 엄마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는 거 보니 정말 그런 거 같았다. 그리고 엄마는 그랬다. 근데 너를 낳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치앙마이에서 레베카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나는 시장을 헤집고 다니며 그 아이가 태어나면 입을 옷을 열심히 골랐다. 앙증맞은 코끼리가 수 놓인, 치앙마이 스타일의 통풍이 잘 될 법한 아래위 한 벌의 옷 하나를 고르는데 과도하게 신중했고 제법 오래 걸렸다. 그녀와 헤어지는 날 포장도 제대로 못한 그걸 건넸는데 그녀는 아이한테 주는 첫 선물이라며 너무도 감격해했다. 세상에 두려움이 없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기쁜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와 아빠를 닮은 눈이 예쁠 것 같았다.

나는 당시 치앙마이에서 만난 남자와의 인연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고 있었고 그녀에게 내 소울 메이트는 어디 있을까 하며 둘러 하소연했다. 그랬더니만 그녀는 내게 생뚱맞은 소리를 했었다. '아이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애 아빠?가 찾아올 거야'라고. 엥? 속으로 뭔 소리야 싶었는데 그녀는 매번 답을 주지 않고 내 안을 보게 하는 질문을 하는 것 같았다.

내 인생에 자식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그 또한 가볍게 생각된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 마음조차 괜찮다고 느낀다. 자식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게 있으면 생기고 아니면 아니겠지 뭐 그런.



한 날은 장을 봐서 가는데 내 앞에 돌고래 소리를 잘 내는 옆집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보였다. 매번 소리만 들었지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 목소리만 듣고도 그 집이구나 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가 가는 그 길을 앞서 걷고 있었다. 맨날 같이 울고 소리 지르는 상상 속 아이의 모습은 쳐키나 못난이 인형...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직접 보니 의외로 무척 귀여웠다. 볼은 찐빵을 통째로 욱여넣어 양쪽으로 물고 있는 거처럼 통통하고 웰시코기처럼 짧고 통실한 다리를 씩씩하게 내뻗으며 엉덩이를 바쁘게 씰룩였다. 모든 죄가 사해질 것 같은 귀여움이었는데 평화도 잠시 뿐 몇 걸음 못 가서 바닥에 드러누우며 괴성을 질렀다. 또 시작이네 싶으면서도 의외로 화가 나지 않았다. '애답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나는 저만한 나이에 저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만큼 한껏' 난리를 쳐 본 적이 있나 싶었다. 어느 정도 그랬을지언정 늘 내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던 거 같다. 밖에서 저 정도 구르고 난리 치지도 않았겠지만 감정을 격하게 표출했다면 거의 동시적으로 엄마를 괴롭혔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거다. 내 무의식에서는 언제나 그걸 듣는 사람의 불안감과 고통이 더 크고 중요했다. 저 아이보다 훨씬 어릴 적부터 그런 느낌을 가졌던 것 같았다.


아이가 갑자기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보란 듯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야 너만 소리 지를 수 있냐. 나도 소리 지른다. 하면서 같이 소리를 빽 질러볼까 싶기도 했으나 미친년 취급받을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애 엄마는 자주 있는 일인 듯 그렇게 당황하지도 않고 애 팔만 잡아끌었다.

넌 참 아이답구나. 욕구에 맞게 잘 표현하는구나. 그런 차원으로 생각하니 속이 시원한 지점도 있었다. 애 엄마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겠으나.



완벽하지 않은 아이와 완벽하지 않은 엄마가 만나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서로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봐 주고 인정하고 그러면서 사랑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그 안에서 모성도 형성되고 서로를 인내하고 사랑할 힘도 생기는 것 같다. 그래도 멋도 모르는 시기에 악이라도 써본 아이는 그게 대체 무슨 감정인지, 왜 그런 것인지 서로 꺼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느낌과 감정은 마음의 언어라고 하는데 자신의 언어를 익히기 전에 부모의 언어에 더 민감한 아이는 자신의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일지 모른다. 어른의 감정과 생각을 이른 나이에 내면화한 성인군자 같은 아이가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귀엽지가 않다. 한편으로 모든 면에 너무도 바른 엄마가 아이의 욕구를 얼마나 그대로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내 아이가 어린 나이부터 '어머니 저는 자라서 꼭 효도를 하겠습니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감격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어딘가 안쓰러워 보이나 싶을 거 같다. 부디 니 일이나 신나게 잘하거라 라고 하겠다. 애도 없는데 별 생각을 다한다.ㅎ



완벽한 자식이 없듯 완벽한 부모도 없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별별 사람을 다 만났는데 우리 엄마의 메시지라며 내게 이야기해 준 사람도 있었다. 그것의 첫마디가 너를 통해 엄마는 많이 배웠다 였다. 사랑을 배웠다고 했다. 그것이 진짜 엄마의 영혼이 이야기한 것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나는 부모 자식 관계처럼 인생을 제대로 통렬히, 찐하게 공부하기에 적절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처음 태어나서 마주하는 그들은 내게 가장 깊은 상처와 가장 깊은 사랑을 동시에 알려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여행 중 이야기를 나눈, 성공한 CEO인 한 할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용서를 부모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그것이 그의 삶을 자유롭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면 내 삶에서 펼쳐지는 상당한 관계들에 해답도 같이 찾아진다. 엄마는 유년기를 보내면서 엄마의 엄마로부터 상처 받고 미처 치유되지 못한 아이의 마음도 있었을 거다. 엄마의 엄마는 엄마의 엄마의 엄마에게 그러했을 거다. 아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매 순간 사랑을 배우는 그 길에 서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설령 자신이 표면적으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나는 지금 그들의 사랑을 느낀다.


엄마의 사랑은 내게 충분했지만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한계 짓지 않는다. 나는 그걸 내게 다가오는 새로운 인연들을 통해 더 크게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계 지어 버렸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것들. 엄마는 내게 넌 나보다 훨씬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그게 더 이상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모성이라는 것이 그렇듯 사랑의 형태는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재단할 거리가 아니었다. 통제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허용하면 되는 것이었다.



Chiangmai, 2020.01.01 매일이 축제의 날로 행복하길. to the mother of us All and myself.


커버 사진: Musée de l'homme, paris, 20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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