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ou inspire me

내가 익숙한 상태

by Iris K HYUN

커버 사진: 땅바닥 무지개(동네 버스 정류장 바닥)




당신은 어떤 감정 상태가 가장 익숙하세요?

슬픔, 짜증, 화, 만족스러움, 기쁨, 우울, 무기력, 황홀, 답답, 즐거움, 신남, 불안, 초조, 고요....

주변 환경의 변화와 관계없이 내게 가장 익숙한 감정은 어떤 것일까? 기본 바탕색처럼 내게 깔린 그 감정의 색은?


재미난 건, 나에게 가장 익숙한 감정 상태가 가장 편안한 감정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예전에도 대답을 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 잡히지 않았던 것이 새로 잡히고 있다. 마치 그런 거다. 맨날 가는 카페에 늘 있던 소품이 어느 날 눈에 똭 보이는, 그래서 어 그게 거기 있었어? 하고 놀라는. 나는 그 카페를 구석구석 다 안 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거다. 물론 내가 안 보니까 그게 안 보인 거겠지만.



'관심과 집착의 상태',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겐 이게 익숙한 상태고 그건 어쩌면 나의 엄마가 내게 했던 맹목적 사랑의 색깔이기도 하다. 나는 그것이 익숙해서 그립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다. 그것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지만 익숙해서 다시 찾게 된다. 이 패턴이 사회에서 나의 다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그걸 거울처럼 내게 비춰 알려주는 사람들을 통해 배웠고, 배운다.



관심을 그만큼 주고 애정을 그만큼 주었는데 니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를 말한다면 그건 좋은 관계가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았다. 그녀는 거기서 말했다. 나는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다. 그 감정은 잘못되지 않았다.라고. 어떻게 인간이 맨날 좋고, 완벽하겠나. 헌데 가끔 지인들 중에 가족이라는 성(城)을 너무 화려하게 쌓고 있는 사람을 본다. 그러다 보니 그 성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적어도 밖의 세상에 비해 다 아름답게 비추어지길 원한다. 온갖 감정의 쓰레기를 끌어안고도 우아하게 웃다 보니 정작 이걸 어디다 갖다 버려야 될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골병이 난(혹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불만족스러운) 자신의 상태도 인정하지 않는다. 성의 컨셉이 확고할수록 보수, 유지를 위한 에너지도 많이 드니까. 나도 그 성을 아주 크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건 알고 보니 너무나 깜찍스럽게도 귀여운 작은 성이었다.



완벽한 성도, 완벽한 부모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의 부모님도 그들의 부모님에게서 완벽한 양육(이건 비단 경제적 차원의 지원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을 길어올리셨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을 나눌 자신감을 갖는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모습 그대로로.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로부터 받은 상처마저 이해할 때 우리는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게 된다. 사랑하게 된다. 그렇게 느낀다.







얼마 전 한 대화에서 남자는 자신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면 상처받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느끼기에 그 남자는 다른 사람의 다친 마음을 봐주고 잠재력을 끌어내주기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더 많은 사람들하고 나누기에 두려운 것 같았다.

특정 사람(-내 사람이라는 구획 안에 들어온-)에게 기대하고 쏟는 그 에너지가 더 넓게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고, 그렇게 될 것 같으니까.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 신기하게도 그에게 하는 말이 내가 내게 하는 말이어도 어쩐지 다 말이 된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기억해 본다. 나한테 다시 들려준다.



다른 사람에게서 애써 사랑을 찾지 말고, 네가 가지고 있는 사랑을 어떻게 줄지 거기에 더 집중해 보자




요 며칠 뭘 먹으면 속이 더부룩했다. 많은 음식들을 갑자기 돼지처럼 먹었는데 사실 난 그걸 다 소화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잘 먹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래 한번 잘 먹어보겠어 다짐했는데 먹을수록 속이 답답했다. 그렇게 욱여넣은 음식이 결국 나를 아프게 했다. 위가 싫다고 난리를 치는 음식이 별안간 나도 너무 싫어졌다. 내 몸의 소리를 그렇게 조금씩 더 듣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음식을 맛있다고 느낀다.



노래나 한바탕 불러봐야겠다.



바리/나모님 그리고 6명의 연주자, 몸의 연주, 이날 소리와 움직임이 모두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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