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You inspire me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by Iris K HYUN



한 곳에 정착하여 오래 살았지만 나는 언제나 이동한 사람들,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었다. 익숙한 집단에서 그 가치가 주는 안정감은 나름대로 내 정체성을 형성하였겠으나 어딘지 답답했다. 우리끼리의 연대의식을 강조할수록 어딘가 그 너머를 두려워하는 집단의 정서가 크게 느껴졌다. 이 가치가, 이 믿음이 정말 모든 곳에서 통용되는 진리인 것처럼 너는 내 사람 나는 네 사람하지만 정말 그렇던가.



자기 집단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악의가 없더라도 차별 감정을 키우는 온상이 된다.

-일본 철학자 나카지마 요시미치



그래서인지 자꾸 나와 다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다녔던 것 같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고, 이민자, 탈북이주민, 입양인처럼 같은 동포이나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도 궁금했다. 봉사활동이나 캠프나 일로 뭐 건수만 생겼다 하면 참여한 것도 이런 내재적인 궁금증이 바탕이 된 것 같다. 궁금하게 생각해서인지 그냥 여행을 가도 실제로 한국인이라는 그 단 하나의 사실로 그 동네 입양인을 소개해 주시는 분이 계셨고 하다못해 대학 때 돈이 털려 홈리스 쉘터에 간 것도 돌이켜 보면 잠시나마 다른 집단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나중에 사회조사방법론에서 완전 참여 관찰이었나? 자신을 밝히지 않고 참여자와 같은 것들을 경험하며 연구를 한다. 의 기법도 있더만 나는 이걸 보며 이때를 떠올렸다. 나도 참여 관찰했던 거? 구만 하면서.


그런데 나는 정말 그들과 달랐을까? 뭐 처한 상황은 다를 수 있으나 그들이 가지는 무의식과 내가 가지는 무의식에 어떤 비슷한 지점들이 있지 않았을까. 나는 내 안에 무얼 보려고 그들을 만났을까.



이동하는 사람들, 2022/ 포도뮤지엄




같은 국가 내에서도 서로 다른 집단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언젠가 터키에 갔을 때 나의 친구 둘(프랑스 캠프에서 만났던)은 그들 사회에 보수 엘리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었는데 당시 쿠르드인 문제를 내게 이야기했다. 그럼 난 또 쿠르드인을 만나보고 싶어, 정치색을 뺀 그 사람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에 이르고 실제 또 다니다 보면 우연인지 쿠르드 가족을 만났다. 정치에 대해 내가 떠들 주변머리도, 아는 것도 별로 없는지라 그냥 그대로 놀다 보면 집안에서 만나는 그들의 모습은 내가 느끼기에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이들이 가진 그 가치가 세상 어느 것보다 맞다고 생각하고 살았을 거고 그 전 주에 만난 내 친구의 집에서라면 이와 또 다른 가치가 세상 끝나도 진리인 듯 알고 살았겠네. 굉장히 위험해서 피해 다녀야 할 것처럼 느꼈던 그 쿠르드인의 집에서 난 나의 작은 우물에서 대체 무얼 보고 느끼고 살았던가. 뭐 이런 감상에 젖는 거다. 나는 그 속에서 나라는 개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하고. 개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포도 뮤지엄에 있는 27명의 광대, 고독한 단어들




포도 뮤지엄에서 현재 진행 중인 기획 전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를 그저께 보고 왔다. 지난번 전시도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포도 뮤지엄 사랑해요!-) 우리 사회에 진정한 공존과 포용이 무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이번에는 초점이 여러 시대의 디아스포라를 다루는데 자의로 혹은 타의로 경계를 넘나들며 이동하여 사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무얼 느끼며 삶을 이야기하고 있나.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지만 우리는 어떤 경계를 가지고 있나.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머물 수 없는 공간, 이배경, 2022



경계 안쪽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서, 다양성이 심화될수록 함께 번지는 혐오는 흔히 경계 밖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마치 나의 고정불변의 정체성의 훼손처럼 여겨지는 것일까. 우리가 가지는 정치, 이념, 종교, 문화 이런 다름이 나의 고정불변의 정체성으로 타인에게도 진리라고 어떻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보며 그것이 비단 그들만의 일이다라고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주춤하긴 하나 우리는 전 세계 구석구석으로의 이동이 아주 일상화된 세계에 살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아주 낯선 사회에 구성원이 될 가능성은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으며 그 상황에서 우리 역시 누군가의 판단의 대상이 된다. 하다못해 여행을 가서 제법 오래 그 사회에 있다 보면 우리는 이질성에 대한 혐오를 가끔 접하기도 한다.



요코 오노, 채색의 바다<난민 보트>




다양성이 얼마나 허용되고 있는가. 가 성숙한 사회의 중요한 지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누군가가 나서서 주장을 하고 머리로 배워서 합의된 체계라기보다 궁극적으로는 개개인의 가슴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에 더 가깝다. 타인을 허용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포용력에 우쭐해질 수도 있으나 이는 자신에 대한 허용이기도 하다. 나의 모습을 얼마나 다양하게 볼 수 있는가, 그것에 대한 관용 수준이 타인에 대한 관용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타인을 무시하는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을 향하는 것으로 보이나 자기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이다. 아마 자기 자신에 대한 허용 수준이 아주 낮을 것이며 그 기준에 못 미치는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 엄격할 거다. 비난의 화살은 밖을 향해 있는 듯하나 언제나 그건 자신을 향해 있다. 상대에 대한 우월감은 자기 자신의 열등감의 반영이다. 나-나의 관계성이 나-밖의 관계성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히틀러의 그 우월의식은 열등감에서 나왔다. 열등감이 가장 최악으로 풀린 사례가 아닐지. 그리고 그것이 다른 열등감을 가진 집단에게 얼마나 매혹적인 사탕이 되었는지를 보라. 동류 집단이 되어 받은 그 조그마한 사탕 하나를 줄줄 빨며 나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포도 뮤지엄에서 제작한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뭉클하더라고요. 직접 가셔서 전곡을 들어보세요.




전시를 보고 나오며 나는 두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그 하나는 나의 그릇은 얼마나 되는 걸까? 나의 포용의 수준은?

간장 종지보다는 크겠지?ㅎ

뭐 조금씩 넓어지긴 했겠으나..

갑자기 그릇을 그냥 깨버리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성질 괴팍?ㅎ)


지금 내가 마주치는 사람에게서 어떤 식으로든 나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걸 굳이 담을 필요도 없겠다?

그냥 서로가 흐를 수 있게 잘 내버려 두면 되겠다?

특별히 포용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필요도 없어지는 사회, 그건 유토피아일까. 특수한 이야기가 보편에 가 닿는 지점이 늘 발생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와 연결이 된다.



또 하나는 나에게 이동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무얼 찾아 그렇게 이동을 하였던가?




꽃들에게 희망을, 갑자기 어릴 때 보았던 노란 책이 떠올랐다. 당시 내겐 큰 충격과 아름다움을 안겨 주었던 책.


애벌레는 다른 사람들을 밟고 미친 듯이 올라가는 그 대열이 무언지도 모르고 얼결에 합류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꼭대기를 향해 이동한다. 치열하게. 열심히 온 힘을 다해.

온갖 험난함을 뚫고 투쟁 끝에 제법 높은 곳까지 올라간 애벌레는 별안간 충격적 소리를 듣는다.

끝까지 가보았다는 한 녀석은 이렇게 말한다.


쉿 조용히 해. 사실 저 위엔 아무것도 없어.



당신은 어떤 애벌레이신가요?


1. 내가 지금 가는 이 대열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고, 어디쯤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미친 듯 올라가는 애벌레

2. 대열에 밀려 밑에서 헤맨다는 생각에 애가 타는 애벌레

3. 제법 높이 올라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넘 좋아좋아 우쭐한 애벌레

4. 사실 그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밑에 사람들한테 알려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버티는 애벌레

(-상대적으로 위에 있다는 단지 그 우월감 하나로, 그러나 그 기둥에서만 유효하구나 하는 허망함이 시작되는-)

5. 다시 내려와서 그 기둥이 뭔지 보고 자신이 되길 준비하는 애벌레

(-기둥이 없어도 되는 것이었구나 느끼는-)



어디에 계실까요?


그건 그렇고 나중에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아이는 애벌레에게 뭐라고 할까요?


뭘 애쓰니, 어차피 모두 나비가 될 건데.



포도 뮤지엄에서 나와서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근처 계곡에서 한참이나 놀았어요. 놀다가 본 나비가 색깔이 너무도 오묘하게 예뻤어요. 그 푸른빛을 영상에 담을 수 없어서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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