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한 일 중 하나, 눈을 그렸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말고 사람 눈.
누군가의 눈을 뚫어져라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못 생겼다? 싶은 사람도 눈 속은 정말 예쁘다.
잊을 수 없는 눈들이 있다. 그 눈들의 공통점은 나의 흔들리는 눈을 꽉 잡아준 눈이었다. 내가 바로 보기 싫어하는 나의 약한 모습을 나 대신 들여다보고 있는 눈이었다. 흔들림 없는 그 눈, 주변의 어떤 난리에도 가만히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 나 대신 괜찮다고 말하는 눈.
과거에 나는 내가 지켜보고 있어.라는 느낌을 가진 시선을 지독히도 부담스러워했다. 그런데 사실 그건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었다. 더 잘해야 한다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하는 시선을 타인을 통해 반복적으로 내게 들려줬다.
이집트에서 스쿠버 다이빙 과정을 할 때였다. 마스크에 물이 차서 멘붕이 온 나는 손을 휘저으며 위로 올라가겠다고 몸부림을 쳤다. 고개를 들어 마스크에 물을 뺀다고 했는데도 자꾸 물이 들어오니 공포스러웠다. 나를 지도해 준 이집트 강사님은 미쳐 날뛰는 나를 꽉 잡으며 자신의 눈을 들여다보라고 하셨다. 그 눈을 들여다보며 난 그의 박자에 맞춰 숨을 들이쉬고 내 쉬었다. 코로 물이 들어가서 아프다는 느낌도 점차 가라앉았고 두려움에 날뛰던 마음이 사라졌다.
이후 프리 다이빙을 배우러 갔을 때도 그런 눈이 있었다. 한국인 강사님이셨는데 물 안에서 고요하고 힘 있게 지켜보는 그 눈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안정이 되었다. 그리고 내 몸이 본능적으로 물 안에서 어떤 움직임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그걸 느껴볼 수 있었는데 그건 완벽함을 기대하는 나의 통제가 없을 때 자연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 눈은 언제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을 아주 거슬러 올라가 산티아고 길을 걸었던 2016년부터 난 그런 눈을 만났다. 느리지만 내 발로 나다운 걸음을 걸어보겠다고 다짐한 그 순간부터. 늘 있었을 건데.. 내가 나를 솔직히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한 순간에만 보인 거 보면 그 눈은 어쩌면 내 눈? 이기도 했다.
이번에 서울에 갔을 때 반가운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이런 순간들이 스쳐 지나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있는 그 눈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힘 있는 시선을 좋아한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다. 눈에 억지로 힘준다고 그런 광채가 나지는 않는다. 그런 눈을 보고 있으면 그냥 좋다.
어떠한 난리 통에도 그 자리에서 나를 지켜보는 눈, 고요하게 강한 시선, 그 순간에서 나를 전적으로 믿어주는 눈. 그건 마치 바다의 눈 같다. 언제나 내가 여기 있을게. 하는 목소리 같기도 하다. 하나하나의 독특한 물결을 담은 그 시선이 감사하다. 물은 그 사람의 모양을 바꾸지 않고 그저 흐른다.
내 목소리가 빠진 엄마의 시선은 그렇게 한없는 사랑이었다.
아무 일이 없는 고요한 바다를 염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풍랑이 있어도 나는 그걸 마주할 힘이 있음을 내 안에서 점차 찾아가는 것 같다.
제주에서의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섭섭해졌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 감사로 느껴진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떠나는 것이 아쉽다가도 그게 더 좋다는 생각도 든다.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니까. 금방 또 놀러 올지도.
눈을 그리며 생각했다.
바다는 나보다 더 큰 존재다. 거기에 기꺼이 누우리. 힘들거나 기쁘거나 어떤 상황에도 나는 그 큰 힘이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온몸에 힘을 빼고 누우리. 그 눈은 나를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 아주 어둡고 보기 싫은 약한 내 모습을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할 수 있다면 다른 이의 그런 면도 볼 수 있다. 그건 상대를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힘이다. 너의 존재 자체가 진심으로 괜찮다고 무언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