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를 찾아서
5월 8일, 어버이날은 엄마의 기일이기도 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난 오히려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는 내게 사랑을 많이 주셨는데 그 사랑의 색을 굉장히 익숙한 감정에서 떨어트려보니 이런 색으로도 저런 색으로도 보였다. 고마워도 하고 미워도 하고 돌아가시고 나서 제대로 한판이 아니라 여러 판을 지독하게 싸우며 엄마를 알아갔다. 그 결과 엄마라는 역할 말고 한 여자, 사람으로 엄마의 삶을 좀 멀리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건 뒤늦게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며 이런저런 자아의 나를 본 지난 몇 년과도 비슷하게 맞물린다.
어딜 가도 엄마의 시선이 있을 것만 같은 그 느낌은 따뜻함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혼자 미워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 북 치고 장구치고 다했다.
엄마는 아나운서로 아빠는 엔지니어로 두 분은 방송국에서 만나셨다. 요즘 나는 주파수, 소리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는데 두 분은 라디오 부스를 사이로 서로의 주파수가 맞으셨나 보다.
나는 여느 딸이 그렇듯 엄마의 스토리텔링을 주로 들으며 자랐다. 홀시어머니에 외아들, 가진 것 없는 아빠를 만나 단칸방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출발했던 엄마의 삶. 말해 뭣하리 할 만큼 엄마의 인생에는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했을 거다. 우리 남매와 가족 모두에게 엄마의 따뜻함을 아낌없이 주셨다. 아마 엄마가 가진 에너지보다 배로 쓰시지 않았나 한다.
그런데 이번에 사진첩을 보다 보니 엄마가 들인 노력만큼 아빠도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표현 방식이 다르지만 그 책임감의 무게가 크게 느껴졌다. 평생 서로의 삶을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애쓰셨을 두 분이 존경스럽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나의 출생기록을 보면, 디테일이 살아있다. 사주 보러 가거나 어디서 태어난 시간이 필요할 일이 있으면 헷갈릴 일이 절대 없다. 첫 대면의 시각, 이불에 누워있는 상태까지.. 아버지의 기록, 외롭게 자라셨던 만큼 가족이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했다.
가진 것이 없었다지만 저때 아빠는 안 되는 것도 되게하라의 패기가 있으셨고 스타일이 있으셨다!
점성학에 South node, North node라는 개념이 있다. 이건 실제 행성이 위치하는 지점이 아니라 태양이 지나가는 황도와 달이 지나가는 백도가 교차하는 가상의 점이다. 사우스 노드는 내가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 부분이자 유지하려는 영역, 뭔가 이전 생이 있다면 거기서부터 익숙하게 이어지는 습이라면, 노스 노드는 내가 성장 발전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자질이나 성향이라고 본다.
모두의 시작점과 끝점은 다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지점은 모든 장애물, 시련과 충동(중간에 배치된 행성들)에도 나는 그리로 간다는 신념과 비전을 느껴볼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재밌는 건 이걸 나타내는 기호 모양이 사우스 노드는 밥그릇, 노스노드는 밥그릇이 뒤집힌 헤드폰 모양이다. (-처음에 볼 때 나는 이렇게 보여서 계속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건 뭔가 생존에 유리한 방식에서 나의 비전으로 향해 가는 그런 느낌이다. 헤드폰을 바로 쓴다는 건, 외부에 오만가지 소리에서 내가 정말 듣고 싶은 그 소리를 듣는 것.으로 해석하고 싶다. 그 소리는 나의 진짜 목소리일지 모른다.
요가를 할 때 뒤로 몸을 굴려서 다리를 접어 귀 옆에 딱 붙이는 동작이 있다. (카르나피다아사나) 나는 이 동작을 할 때마다 자꾸 헤드폰 저게 생각이 났다.ㅎㅎ 요가 선생님의 가이드도 뭔가 그런 지점의 울림이 있었다. 무릎으로 내 귀를 막으면 내 숨소리가 더 잘 들린다.
우리 부모님은 안전함, 보호받는 환경, 학습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주고 싶으셨다. 부모님이 누리지 못했던 그 안정감, 가족이라는 단단한 울타리를 내게 주셨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식은 반대의 가치를 갈망한다. 나의 경우 내 나침반의 이야기는 뭔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의 분위기다. 진짜 아이?가 되어 세상을 마감하는. 1 하우스에서 끝난다.
자아 정체감 확립, 진정한 자유를 향해 가는 나의 노스노드,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각자의 서사는 가지각색이지만 어쩌면 각자의 결핍감, 내가 인생에서 채우고 싶은 부분의 완성을 향해 떠나는 여정 같다. 돌고 돈다.
인생에서 채우고 싶은 부분이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에게는 돈, 부 그 자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 애정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타에 대한 신뢰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명예, 사회적 성취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건강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자아 정체감이나 주체성일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조건 없는 사랑일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걸 채우고 완성하는 이야기라면 모두가 특별한 여정이고
한 편의 멋진 영화다.
예전에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종착지가 있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나는 거길 향해 41일을 걸었는데
그 길에 도착하는 길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갈림길에서 우회로 갈 수도 있고 한 곳에서 하루가 아닌 며칠을 머물 수도 있다.
멍을 때리며 길에 주저앉아 있기도 한다.
중간에 버스를 타고 점프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마지막은 결국 거기에 도착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청춘 엄마는
자유롭고 솔직하게 네 목소리를 내고 살아라.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인생 짧다.ㅎㅎ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엄마 세례명의 뜻이 별이다. 스텔라. 본명보다 더 많이 썼고 지금도 주변 사람들은 엄마를 그렇게 기억한다.
나에게 소중한 별이었던 엄마를 기억하며,
아버지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하며!
올해 어버이날은
두 분이 살아오신 삶에 사랑보다 큰 존경의 마음을 보내드리고 싶다.
https://youtu.be/btqHrVYO3KI?si=U3y_jVoZo8kTLe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