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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un Jun 02. 2024

나는 뛴다

점 펼치기 편 >1<


+점 펼치기 편은 <오므리기>와 반대되는 움직임으로 제가 여정 중 새로 발견한 저의 모습을 좀 더 펼쳐보는... 그런 것입니다.
++>펼치기<는 과거의 어느 시점이 미래의 어떤 점에 있는 저를 흘깃 보는 것일 수도 있고요. 어머. 니가 그런, 저런, 이런 모습도 있네 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는 별 일 아닌 점일 수도 있으나 제게는 아주 의미가 되는 그런 점이요. 응축된 점으로 존재하는 마음의 사진을 좀 더 확대해서 보는 줄글(줄줄 글)입니다.
+++ 점성학을 이용해 봅니다. 저의 행성과 별자리를 이용해서 캐릭터와 옷을 만들어 입히고 무대에 세워봅니다. 행성이 하는 그날의 질문이 있습니다. 그 답을 이어 나가다 보면 종착지에 다다르는데요. 거기에 한 사람의 비전이 새겨져 있는 별이 있다고 하네요.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가는 여정, 같이 가주실... 건 가요?






+캐릭터: 제주도에 1년 살기 하고 있는 여자, 요즘따라 매사 의욕 상실

+옷:  트레이닝 복, 가벼운 점퍼

+무대: 제주도 사려니숲



<이번 글은 시동 차원에서.. 일탈 매거진에서 제가 주절거렸던 한 점을 키웠습니다. 엄마 나는 걸을게요. 라는 첫 책에서 진화한... 나는 뛴다.입니다ㅎㅎ>



0.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아침에 에너지가 안 나서 격한 운동은 안 맞아. 거기다가 공복은 더 말도 안 됨. 안 먹고 뛰면 나 곧 쓰러질지 몰라하는 몸에 대한 저평가


 

0. 새로 발견한 자아; 어라 너무 잘 뛰네. 공복에 뛰면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하네. 이렇게 맑은 힘을 낼 수 있구나?!  새소리가 너무 좋구나.





<<<<<

제주의 겨울 아침, 그 전날 비까지 온 습하고 우중충한 날, 나는 웬일인지 마구 뛰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 전날 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뜬 그 아침, 커튼을 젖히고 본 어두컴컴한 음습함은 웬일로 생각해 낸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의욕처럼 느껴졌고 그래 뭣하러 그리 일찍 일어났니. 다시 눕자. 하는 마음에 도달하려고 했다.


창문을 여니 집 앞에 외로이 서 있는 야자나무 한 그루가 더 처량하게 휘청이며 자 보아라 바람이 오늘 이 정도야 감당할 수 있겠어하는 거 같았다.


심지어 전날 밤 먹었던 것들이 소화가 제대로 안 된 탓인지 속도 답답해서 일어나서 으레 들이킨 커피에도 위는 음식을 받아들일 의욕마저 없었다.


전날 밤 오랜만에 내게 전화한 친구는 일 년 전이랑 거의 복사한 듯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대화는 대략 이렇게 시작한다.



맨날 똑같지 뭐, 별거 있니.



며칠 전 다른 분께도 들은 말이었는데. 그 밤에 전화를 끊자마자 순간 막 뛰고 싶어졌다. 내가 막 뛴다고 그들의 속이 시원해지는 건 아니지만 뛰고 싶었다.     


여하간 종합적으로 별로인 그 상태에서 나는 사려니 숲길을 떠올렸다. 만만한 게 나냐고 사려니가 뭐라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나는 오르락 내리락이 거의 없는 평탄하게 긴 길을 걷고 싶을 땐 이 길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래 즉흥적으로 생각난 김에 걸어보자고, 먹을 의욕 없으면 그래 뭐 됐어하고 백팩에 물만 챙겨서 나섰다.  



그렇게 나선들 그 아침에 뛰어볼 생각은 당최 없었는데(밥도 안 먹고 뭘 뛰기까지 하겠어 했음) 나는 결론적으로 뛰었다.


물론 10km를 다 뛴 건 아니고 한 삼 킬로 정도 뛰었고 나머지를 걸었다. 공복으로.


보통 때 같으면 적당히 걷다가 돌아왔을 텐데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딱 절반쯤에 도달했을 때부터는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걸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람도 없고 그렇담 한번 뛰어볼까 했던 것이었다. 그 길로 내달리기 시작, 의외로 오래 뛰었다. 기분이 무척 좋았고 심지어 실실 웃으며 뛰었다. (누가 보면 정신 나간 줄 알았을 듯)



밥을 안 먹고 이 정도로 에너지를 쓰다니 하면서.. 괜히 비실거리려는 건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는 말 같았다.




여전사처럼 별안간 슈퍼 파워가 생길 수는 없지만.. 어릴 때 오래 달리기 하고 피토하던.. 그 아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나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




내가 태어났을 때 그 시간, 그 장소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화성염소자리에 있었다. 나는 중얼거린다.



염소야. 네가 힘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구나. 가야 하는 그 길의 끝 점이 막막하리만큼 보이지 않았구나.



그렇다. 위 캐릭터는 단순히 몸에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 내가 가야 하는 그 한 점이 희미할 때는 몸까지 희미해져 버린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으면 힘을 제대로 못 쓰고 비실거리는 염소.. 이 아이가 언제 제일 생기가 돌았을까.

그것은...

다음 편에 이야기하려 한다.

그때 염소를 생각하니 벌써 웃음이 나고 신이 난다. 다음 편은 그래서 '화성이'의 이야기다. 태양계에서 흉성이라 간주되는 화성이가 힘을 벌떡벌떡 내던 지점은 어디였을까?




+

7명의 캐릭터가 차례로 서로 다른 무대에서 자신의 공연을 펼칠 예정이오니 가끔 놀러 오셔서 머물러 주세요.   



7번의 연재 동안 >펼치기< 편은 과거를 통한 미래의 한 점을 펼칠 거예요. 이번만 예외로 대과거에 놓인 염소를 한번 펼쳐봅니다. 요즘 오므리기를 열심히 하고 있는 산티아고 길, 도착점이 명확했던 그 길에서 염소는 참 묵묵히 잘도 걸었습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완주였어요. 체력이 거의 바닥인 상태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런 어처구니없는 체력으로 시작한 염소였지만 나는 어쨌든 거기 간다. 그게 있었던 거 같아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울림이 되는 길이었어요.



그 길을 시작할 때 만났던 사람들, 저는 마지막에 결국 다 만났는데요. 제가 거북이처럼 걸어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는구나 했습니다. 처음과 끝에 사람들과 함께 들었던 노래, 'Il mondo'(영화 어바웃 타임에 ost로도 쓰였어요)에요.

마지막에 같이 밥 먹으러 간 식당에서 이 노래가 나와서 정말 놀랬습니다. 저에게는 뭔가.. 인셉션에 등장한.. 에디트 피아프가 부른 Non je ne regrette rien... 같은 거였어요. 처음, 끝에도 나왔지만 중간에 힘들어서 더 못 가겠는데.. 그때 마을이 똭 나오거나 식당이 나올 때 그때마다 제 주크박스에서 흘러나왔거든요. 이 노래가 나오면서 마을이 저 끝에 보일 때 뭐라 말할 수 없이 벅차더라고요.




처음에 피레네 산맥 넘고 나서.. 같이 걸은 분에게 제가 들은 말이 있는데요.

제게는 아주 큰 울림이었어요. 그 순간이 잊히지가 않아요.

오늘 우연히 여기 오신 분들에게도 제 목소리로 한번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너는 네가 생각한 거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야.





펼치기 끝.






Il mondo,

Non si é fermato mai un momento

La notte insegue sempre il giorno,

Ed il giorno verrà


그 세상은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어요.

밤이 가면 언제나 대낮이 따라오고

날은 밝기 마련이니까.





https://youtu.be/vu-iNE_xD9I?si=j3CnC46j9Jkvef27





+커버 사진은 인도 콜카타에서 만난 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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