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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6. 2019

17년만에 하는 특별한 결혼식

초등학생 민석이의 눈으로 본 가족 이야기입니다. 지체장애인 부부 이홍석(37·가명)씨와 정명숙(37·가명)씨는 지자체 장애인종합복지관의 도움으로 결혼 17년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엄마는 내가 청개구리래. 말을 안 들어서 청개구리 같대. 시시하게 개구리가 뭐야. 멋있는 것도 많은데. 난 엄마, 아빠, 할머니랑 살아. 누나는 건강하지 못해서 다른 곳에서 지내. 자주 못 보니까 다음번에 누나를 보러 가면 내 키가 이만큼 더 커졌다고 자랑할거야.


아참, 내 소개가 늦었지? 난 민석이야. 나중에 프로게이머가 될거야. 게임을 해야 하는데 PC방 갈 돈이 없어. 엄마한테 졸라서 500원, 아빠한테도 500원을 받으면, 바로 PC방으로 고고! 그래도 한 시간밖에 게임을 하지 못해. 집에 있는 컴퓨터는 너무 느려서 게임을 못해.


엄만 내가 게임하는 건 질색인데, 책을 보면 잘한다고 머릴 쓰다듬어줘. 엄마가 내 머릴 슥슥 문지르면 나도 모르게 잠이 와. 에잇 기껏 책보려고 했는데, 엄마는 ‘청개구리야 일어나’라고 웃으면서 볼을 꼬집어. 아프진 않아도 으아아악 하고 뒹구르면 엄마는 웃어.


난 엄마가 웃는 게 좋아


아빤 식당에서 일해. 일 하느라 집에 안 오는 날도 있어. 아빠가 일하러 가면 엄마랑 할머니만 집에 있어. 엄마는 친구가 별로 없어. 그래서 집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날 기다리나봐. 난 임대아파트에 살아. 사람들이 그러는데 돈 없는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래. 왜 우리 집은 돈이 없을까. 엄마가 우리 집은 기초생활수급을 받아서 돈이 없는 거래. 그게 뭔지 난 잘 모르겠어. 돈이 많으면 게임하게 컴퓨터를 사달라고 할 텐데. 이크, 그럼 엄마가 또 청개구리야, 청개구리야 하겠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엄마와 아빠는 몸이 불편하대. 아빠는 지적장애가 있고, 엄마는 지체장애랑 지적장애 두 개 다 있대. 엄마, 아빠는 있는데 나는 없어서 서운해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엄마가 말하면 잘 알아듣는데, 사람들은 엄마가 말하는 게 알아듣기 어렵대. 이상하다, 난 엄마가 청개구리야 하면 바로 알겠던데.


동네 아저씨가 엄마보고 병신이라고 했어. 엄만, 병신 아닌데, 엄만 엄만데.   


엄마, 아빠는 고등학교에서 만났대. 아빠가 사귀자길래 엄마가 사귀어줬대. 아빠는 까까머리, 엄마는 단발머리였는데 서로 맘에 들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이 살았대. 혼인신고는 했는데 결혼식은 안 올렸대. 그때 돈이 너무 없어서 나중에 하기로 했다고 할머니가 그랬어. 그리고 누나가 태어났는데, 몸이 너무 약해서 엄마가 많이 울었대.


마음이 아픈 게 뭔지 난 모르겠어. 쿡쿡 찌르게 아플까? 저번에 창민이랑 축구를 하다가 가슴에 공을 맞았을 때처럼 아플까? 누난 나만 보면 꼬맹이래. 누나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눈이 뜨거워져. 난 남자니까 울지 말아야지. 나중에 프로게이머가 되서 돈을 많이 벌면 꼭 누나랑 같이 살거야.

엄마는 결혼식을 하는 게 꿈이었대


나중에 내가 돈을 많이 벌면 엄마 결혼식을 시켜줄거라고 하니까 엄마는 내 머릴 또 쓰다듬어줬어. 언제는 안 해도 된다고 그러고 또 다른 날은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거야. 근데 엄만 진짜로 결혼식을 하고 싶나봐. TV에서 보니까 보면 결혼식 할 때 사람들이 꽃도 주고 그러더라고. 나도 엄마가 결혼식을 하면 꽃을 주려고 몇 달 전에 개나리랑 진달래를 한 움큼 꺾어왔는데 다 시들었어.


복지관 누나가 결혼식을 해준다고 했어. 엄마가 사실은 되게 기분이 좋았나봐. 콧노랠 막 불렀거든. 그날 난 일기장에 ‘꿈은 이뤄지는 건가 봐요’라고 썼어. 아차, 어쩌지! 개나리꽃은 이미 시들어서 할머니가 내다 버렸는데! 내가 시무룩해하니까 복지관 선생님이 나보고 화동을 하라고 하셨어. 화동이 뭐냐니까 선생님은 내가 꽃이 되는 거래. 선생님, 전 꽃이 아니라 민석인데요!! 그러니까 복지관 아저씨, 아줌마가 까르르 웃었어. 엄마는 내 볼을 또 살짝 꼬집었지 뭐야.


결혼식 날 난 누나랑 화동이 될 거야. 복지관 아줌마, 아저씨들도 결혼식 준비로 바쁜가봐. 축가를 하면서 율동도 한다고 매일 연습을 해. 노래도 2절까지 부르고 오른쪽, 왼쪽, 이렇게 춤 연습도 한다니깐. 엄마 결혼식에 연예인이 오면 진짜 멋질 텐데.


엄마, 아빠는 한번도 여행을 가본 적이 없어


여름방학에 친구들이 피서를 갖다왔다고 하면 난 할 말이 없어. 그래서 괜히 심통이 나. 저번에는 영석이가 바다에 다녀온 자랑을 해서 듣기 싫었어. 사실은 나도 엄마, 아빠, 할머니, 누나랑 바다에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 엄마는 결혼식을 하면 신혼여행을 갈 거래. 복지관에서는 여수로 신혼여행을 보내준댔어. 나도 가고 싶다고 졸랐는데, 복지관 선생님이 신혼여행은 부부만 가야하는 거랬어. 나도 가고 싶은데, 엄마가 웃으니까 이번만 참지 뭐. 엄마, 아빠 대신에 PC방 가게 용돈은 꼭 줘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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