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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6. 2019

굿바이 알코올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


이곳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작은 행사가 열린다. 알코올 중독자에 의한, 알코올 중독자를 위한 행사. 술을 이야기하고 봉사활동을 하면서 단주(斷酒)를 유지하자는 취지. 2012년부터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 행사다. 보건소와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 그리고 우리사회의 가장 아래에 있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십시일반 마련한 이 작은 행사를 찾아갔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2012년 넉달동안 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알코올 중독 때문이었다. 고립된 이들은 가난과 우울을 이기지 못하고 삶을 등졌다. 비극적인 죽음. 비극의 되풀이를 막기 위해 지역 사회복지사들은 고립된 이들을 찾아다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알코올 중독의 제대로 된 명칭은 ‘알코올 사용장애’로, 반복적으로 술을 마시는 것만이 증상의 전부는 아니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공격적 행동, 판단력 손상 등 광범위한 신체적 장애 및 심리적 고통을 일으키는 정신 질환이다. 알코올성 치매, 성격 변화, 대인관계 단절, 사회적 부적응, 가족의 해체, 자살로도 이어진다. 이 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정신질환 중 유병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알코올 사용장애 인구수는 159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알코올 사용장애로 인한 진료청구 건수가 2011년 약 28만 건에서 2015년 약 34만 건으로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음주상태에서의 사건 발생 증가, 생산성 감소로 인한 사회·경제적 소실 비용을 약 23조4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내가 찾아간 임대아파트 단지의 사람들 상당수도 알코올 사용장애를 앓고 있었다. 지역 사회복지사는 이 지역의 고위험 음주율이 16.6%라고 말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정님씨(가명)는 술을 끊은 지 16년이 넘었다. 단주 이후 바뀐 삶에 대해 그가 말했다. “맑은 정신, 제정신으로 살 수 있어요.” 그는 현재 회복자 상담가로 활동한다. 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단주를 하도록 돕는 게 그의 일이다. 정님씨는 일주일에 이틀 상담자로 활동한다. 받는 돈은 시급 만원이다. 


“위기가 여러 번 있었죠. 지금 회복자 상담 활동을 하는 것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술을 마시지 않고 살기 위한 노력과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자조모임이나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형남씨(가명)는 동네에서 화가로 불린다. 소싯적에 정씨는 아이들에게 미술 지도를 했다. 그림을 그리며 습관처럼 마시던 술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사업에 문제가 생기자 술의 양은 더욱 늘었다. 끼니도 거른 채 막걸리를 마셔댔다. 자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현재 그는 한차례 단주 실패 이후 다시 5개월째 술을 끊고 있다. 

형남씨가 내게 아파트 단지 이곳저곳을 보여줬다. 주민들이 오가며 쉴 수 있는 나무 벤치가 그럴싸했다. 나무가 썩어 흉물이었던 벤치는 그의 손을 거치자 말끔하게 뒤바뀌었다. 벤치에는 한 마을 주민이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인목씨(가명)는 곧 단주 100일이 된다. 매일 소주 10명을 마셔야 성에 찼다. 그조차도 “정신에 문제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매일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닐 때가 많았다. 단지 내 골칫거리였던 그도 봉사모임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바꿨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그렇다고 이 모임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사회복지사의 말. 


“처음에는 찾아가면 고함부터 질러댔어요.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계속 노크를 하니까 마지못해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문을 열어줬어요.”


평균 연령 60세. 스마트폰을 찍은 사진을 출력해 청테이프로 붙이고, 폐자재로 만든 다용도함을 주민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한차례 강풍이 불자 애써 붙인 사진이 바람에 뜯겨나갔다.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진 사진을 줍는 동안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그러나 사회복지사는 마음이 무겁다


사회복지사 한 명이 챙겨야 하는 지역 주민은 최소 120명. 매주 하루를 꼬박 이들과 만나면 그만큼의 ‘구멍’이 생긴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조모임에 예산 지원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폐품을 얻어 고쳐 쓰고, 센터 내 여분의 물품을 가져와 행사에 사용하는 아랫돌 괴어서 윗돌을 얹는 식의 활동이 자그마치 7년. 


“최근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이후 커뮤니티케어를 비롯해 중앙에서 지역에 하달되는 의뢰권은 쏟아져 업무가 과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장은 너무 열악합니다. 지역민 스스로 재활을 위한 노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합니다.”


술의 유혹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 그들이 머문 두 개의 천막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행사였다. 그러나 지역 내 술로 문제를 겪고 있거나 겪었던 이들에게 적어도 이날만큼은 특별한 하루였을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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