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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1. 2019

결핵은 무섭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

그날 비가 내렸다


빗방울은 공기 중의 먼지와 오염물질을 씻어낼 것이다. 이 비에 지긋지긋한 결핵균도 씻겨갈 순 없을까. 병상에 누워있던 A양은 바깥 날씨를 알지 못했다. 병실에는 창문이 없었다. 결핵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루에 세 번 먹어야 하는 독한 결핵약에 속이 울렁거렸다. 설핏 잠이 들었을 때, 문득 병실에 불이 켜졌다. “저기….” 불청객이 대화를 청했다. A는 수첩을 든 남자를 응시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결핵은 결핵균에 의한 법정감염병이다. 결핵균은 체내에서만 생존이 가능하다. 그래서 결핵은 환자에 의해서만 전염된다. 전염은 공기를 통해 진행된다. 대개 폐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폐결핵 환자가 주를 이루지만, 인체의 다른 부분에서의 폐외결핵도 관찰된다. 최근에는 슈퍼결핵, 즉 광범위약제내성결핵, 중증 결핵 등의 빈도가 늘고 있다. 치료기간도 길고 전염성도 더 강하다.


결핵은 감염성이 커 병동은 특별해야 한다. 병상간 간격은 최소한 2미터를 유지해야하고 음압도 조절해야 한다. 결핵은 종류가 많다. 최근에는 내성 결핵이 말썽이다. 결핵균이 1차 결핵 항생제에 내성을 가져 치료기간도 18개월~2년으로 길다. 완치도 어렵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결핵이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는 수년째 결핵3대 지표에서 압도적인 1위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장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서북병원, 국립목포병원과 국립마산병원을 빼면 많지 않다. 이 중 한 곳에서 하루를 보냈다. 의료진의 도움으로 병동 곳곳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곳의 환자 상당수는 딱한 형편에 놓여 있었다. 퇴원 후 막노동을 전전하다 다시 악화돼 재입원하는 일이 많다. 내성결핵도 문제지만, 환자의 상당수는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 치매 등을 함께 안고 있었다. 경계심이나 공격성이 강한 이들도 많아, 환자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일도 잦다. 이들은 행려자에 가깝다. 돌아갈 곳이 없어 병원은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결핵 치료는 약을 제때,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근데 그 꾸준함이 어렵다. 입원 환자 중에는 입안에 약을 숨겼다 몰래 뱉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상태가 호전되길 원치 않았다. 퇴원이 싫었다.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병을 더 오래 앓길 바랐다. 때문에 간호사는 제대로 약을 먹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게 중요한 업무였다.


이런 이유로 민간병원은 결핵 환자를 기피한다. 내성결핵환자는 민간병원에서는 치료 및 관리가 어렵다. 특히 난치성 결핵환자의 경우 치료가 18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등 입원 치료 기간이 길고, 고가의 약제비가 들어가지만 완치율은 낮다. 내원 환자가 결핵을 옮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이것이 부담스러워 민간병원은 결핵환자를 터부시한다.    


사실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1990년대 중반 결핵 환자수가 줄면서 정부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것이다. 관심이 떨어지면 예산도 줄어든다. 내가 만난 여러 결핵 전문의들은 결핵 예방 및 경각심이 옅어진 사이 결핵균은 계속 활개를 치게 됐다고 말해주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1미터와 떡볶이 


결핵 환자는 외롭다. 사람끼리 감염되기 때문이다. 결핵환자가 발생하면 정부의 역학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다. 사업장에서 결핵이 발생하면 역학조사가 끝날 때까지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쉬쉬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병원에서 만난 A는 감염성이 높은 상태라 1인실에서 격리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있었다. 나는 보호자 베드에 걸터앉았다. 우리의 거리는 1미터.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2미터의 거리가 확보돼야 한다. 약간 불안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했다.


처음 입원을 할 때만 해도 쾌유를 바라는 친구들의 응원이 많았다. 잠시 뿐이었다. 보건소의 결핵 역학조사가 들어가자 응원은 순식간에 원망으로 바뀌었다. 욕설이 날아오던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았다. 결핵균은 건강과 친구들을 앗아갔다. 이야기를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뜨려는데 A의 말 몇 마디에 나는 약간 멍해졌다.   


“먹고 싶은 게 있어요.”


“네?”


“떡볶이 같은 거 있잖아요.”


“아… 떡볶이요.”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선배, 떡볶이 어때요?”


“뭐? 왜 하필 떡볶이야.”


“그냥요. 떡볶이가 먹고싶어요.”


후배 기자의 말에 나는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A와의 1미터가 떠올랐다. 이후로도 한참을 나는 A의 말을 떠올리곤 했다. 면도를 할 때나 잠자리에 들때면 그 힘없는 목소리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 글을 쓰면서 나는 A가 건강을 되찾았을지, 퇴원 후 떡볶이를 먹었을까 궁금해졌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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