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4. 2019

6병동의 엄마악어, 아기악어

화마가 할퀸 아동이 견뎌야 할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풍랑이 몰려올지 모른다. 화상 환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사회 분위기에서 소년이 파도를 헤치고 꿋꿋이 나아가길 기원할 뿐.




그렇게 살고 싶냐. 내 살 떼다 붙여라!


화상 환자를 향한 잔인한 조롱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병원 직원들이 취객을 끌어냈지만, 저항은 제법 거칠었다. 사내는 허공을 향해 주먹과 발길질을 해댔다. “카악, 퉤” 병원 바닥은 금세 가래침으로 얼룩졌다. 나는 곧 만나게 될 아이가 맞닥뜨려야 할 병원 밖 세상의 단면을 본 것만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기”


A간호사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직이 말을 건넸다. 퍼뜩 놀라 돌아보자 그가 말했다.


“환자 어머니께서 어렵게 취재에 응해주셨어요.”


“그랬군요.”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간호사 호출 버튼이 있는 병상 머리맡에 바다사자와 돛단배, 조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바다에 가고픈 김유민(가명·5)군의 ‘소행’일 것이다. 아이의 스케치북에도 유독 바다 풍경이 많다. 바다가 좋아 바다에 가고 싶은 유민이는 바다에 갈 수 없다. 손이 아프기 때문이다.


아이는 뜨거운 국에 손을 데였다. 수차례 수술에도 좀처럼 차도가 없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만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많은 화상 환자들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세상을 향한 원망의 쏟아낸다. 유민이의 어머니는 아이의 상처가 꼭 자기 때문인 것만 같다. 엄마는 아이에게 잠시 눈을 떼 상처를 입었다고 자책하고 있었다.  


엄마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민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잘 때도 곁에 엄마가 있어야 안심을 한다. 그래서 아이가 그린 악어, 돌고래, 물고기 그림은 꼭 한 쌍이다. 큰 악어는 엄마, 작은 악어는 유민이.


“엄마 저는 다섯 살이죠?”


“그래, 유민이는 5살이야.”


“여섯 살이 되면 바다에 가요?”


“응…. 그러자.”


“엄마 악어 그림 그려주세요. 엄마, 엄마, 악어도 바다에 살아요?”


“그래.”


“바다에서 악어를 만나고 싶어요.”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유민이는 장난꾸러기다. 사고 전까지 세 살 터울의 형과 뒤엉켜 놀다 곧잘 먼지투성이로 나타나 싱긋 웃곤 했다. 엄마는 말끝마다 ‘보통 아이들처럼’이란 말을 붙였다. 나는 보통 아이들처럼 유민이가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일거라고 생각했다.


여름이 되면 아이는 더 힘들어했다. 햇볕은 화상 상처에 치명적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폭염에도 환부를 내어 놓아선 안 된다. 그러나 이런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화상이 무서운 이유는 보이지 않는 증상 때문이다. 아동 환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나 우울·불안·수면장애·행동장애·학습장애·주의력 결핍 등이 자주 나타난다.


“엄마 아기 악어 그려주세요.”


“응 조금만 있다가.”


“빨리 아기 악어 그려주세요.”


“그래.”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유민이의 치료가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엄마는 병간호를 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냈다. 그러다보니 큰 아이는 일찍 철이 들었다. “아침마다 아빠에게 엄마가 스무 밤 자면 오냐고 묻더래요.”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큰 아이의 얼굴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어른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눈에는 이내 안타까움이 그렁그렁 맺혔다. 빠듯한 살림살이는 병원 생활이 길어질수록 더 팍팍해졌지만, 엄마는 완치만 된다면 영혼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 보통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는 것. 그것만이 엄마의 유일한 소망이다.


잇단 수술로 병원에 가야할 때마다 유민이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 가면 아프기 때문에 엄마는 매번 아이를 설득했다. “유민아 딱 스무 밤만 자고 올 거야.”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아이를 업은 엄마나, 그 뒷모습을 보는 아빠. 부모의 가슴은 무너졌다.


아직 유민이에게 우울이나 불안 등 정신과적 이상은 없었지만, 엄마는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통증과 흉터, 후유증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어떤 식으로라도 표출되는 건 아닐까. 아이가 칭얼대다 잠든 밤이면 엄마는 이런 생각들로 잠을 설쳤다. 치료가 끝나도 우울증과 외모 손상에 따른 회피반응, 활동퇴행, 불안감 등이 화상 환자를 짓누른다.


가까스로 이겨내도 세상의 차가운 시선은 환자에게 버거운 짐일 것이다. 유민이 처럼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지낸 경우, 가족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기기도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문제가 생기거나 장기간의 입원치료로 학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학교에서 화상 흉터는 따돌림의 원인도 된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아기악어는 금방 자랄거야


악어의 조상은 '카르누페스 캐롤리넨시스'다


공룡이 등장하기 전 이 녀석은 지구를 지배한 최강의 포식자였다. 현재 이 녀석을 가장 닮은 것은 바로 바다악어다. 바다악어는 몸무게는 1톤이 넘고 몸길이만 6미터나 된다. 현존하는 파충류 중에서 가장 크고 힘이 세다. 넘치는 힘으로 파도를 헤치며 자기보다 몸집이 큰 호랑이도 잡아먹는다.


글에 집어넣을 사진을 고르던 중 유민이의 악어 그림이 살아 움직였다. 주황색 악어가 점차 살이 붙고 단단한 외피를 갖추더니 살아 꿈틀거렸다. 마침내 사진을 뚫고 나온 바다악어는 나를 흘깃 쳐다보다 한강으로 풍덩 헤엄쳐 사라졌다. 문득 유민이의 말이 떠올랐다.


“아저씨, 아기악어는 금방 클거에요.”


아기악어는 굳센 바다악어로 자란다. 단단한 꼬리로 파도를 헤치며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때때로 고래와 씨름하고 밤이 되면 지중해의 이름모를 별똥별을 바라보며 잠들 것이다. 오른손에 난 작은 흉터는 바다악어의 긴 여정을 함께 할 터. 뱃사람들은 훗날 이렇게 노래하겠지.


‘바다악어가 있었네. 오른발에 흉터가 있는 녀석이었지. 악어가 물살을 가르고 헤엄칠 때, 우리는 그 힘찬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다네.’           


이전 03화 오늘도 희망 안고 달린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