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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7. 2019

녹두거리 잔혹사

서울시 관악구 서림동과 대학동 일대. 원 거주민보다 공시생이 더 많이 사는 곳. 만 원으로 싼 밥과 술을 먹을 수 있는 곳. 트레이닝복 차림의 청년들이 패딩 점퍼에 몸을 감싼 곳. 봄보다 겨울의 흔적이 짙은 곳. 푸름보다 무채색 황량함이 더 진한 곳. 이곳은 내일만 사는 청춘의 늪, 녹두거리다.     




번잡은 지하철을 내리면서부터 시작됐다. 하필이면 이날 서울대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꽃다발을 든 부모와 신입생으로 역사부터 시끄러웠다. 그러나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는 비단 이날의 특별행사가 아니어도 늘 사람의 행렬로 붐볐다. 서울대를 지나 녹두거리에 이르는 시내버스 5515번을 타려는 사람들은 항상 많았다. 인파는 서울대로 향하는 학생과 고시촌에 가는 이들로 나뉜다. 고시촌에 가는 사람들은 다시 공시생이나 싼 자취방에 거주하는 노동자로 쪼개진다. 그래서 버스는 늘상 만원이다. 버스 운전기사가 무심히 말했다.


“서울대생이요? 여기 사는 학생은 0.1%도 안 될걸요. 노량진을 거쳤다 온 공시생이 태반이에요.”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녹두리아로 불리는 햄버거가게를 발견했다면 당신은 녹두거리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매장를 끼고 돌면 눈앞에 주욱 이어지는 좁은 길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녹두거리의 시작이다. 이곳은 밤만 되면 즐비한 식당과 술집, 부동산중개소와 노래방 따위가 내뿜은 빛의 소음으로 어지럽다.


녹두거리에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방을 구하려면 보증금 500만원이 필요하다. 고시촌 풀옵션 원룸은 2평 남짓 방에 작은 냉장고와 장롱, 세탁기 등이 갖춰져 있다. 월세는 30~50만원. 보증금이 낮을수록 프라이버시는 포기해야 한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5만원의 방은 세탁기와 화장실을 공용으로 써야한다.


더 싼 방도 있다. ‘잠방’이다. 가구라고 해봤자 책상과 의자가 전부. 1평도 안 되는 단칸방은 성인 남성이 똑바로 누울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합판으로 덧대 옆방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린다. 그나마도 지하인지 아닌지 창문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매달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달라진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거주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전입신고를 하고 주민세를 납부하거나 4대보험이 보장되는 정규직 노동자는 많지 않다. 태반이 용돈을 받아 수험생활을 하는 고시생이거나 싼 방을 찾아 떠밀려 온 계약직 및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임시거주자가 얼마나 있는지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었다. 2017년 지자체가 2만9363가구의 주거취약계층 조사가 가장 최근의, 그리고 최초의 조사였다.


지하방 2만847가구, 옥탑방 1284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된 상담에서 5394가구(18.3%)만이 설문에 참가했다.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56%)은 월세방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단독가구는 57%, 생계·주거·환경개선을 요청한 경우는 42%였다. 응답자의 43%는 기초생활보장가구 26%, 기초연금가구 17%와 같은 저소득층이었다. 이 조사를 통해 여기에 사는 임시거주자들의 실상을 가늠할 수 있지만, 정확한 실상은 아무도 모른다.


이들은 모습을 드러내지도
드러나지도 않는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녹두거리에는 술집이 많다. 노래방과 PC방도 많다. 1만원이면 술과 안주를 해결할 수 있다. 1만원만 더 있으면 게임이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현재의 고달픔과 내일의 불안, 그리고 외로움을 잠깐의 위로로 달래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술이나 게임, 노래가 싫은 사람들은 1000원을 들고 카페로 가면된다. 탄 맛이 나는 아메리카 한 잔이면 카페에서 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녹두거리에는 카페도 많다.


각종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100대1이 우습다. 승자는 한 명. 그가 떠난 자리는 금세 다른 이로 채워진다. 나머지 99%는 기약 없는 경쟁에 내몰린다. 이곳의 청춘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녹두거리에 살지만 녹두거리를 떠나는 것만이 청춘의 유일한 목표다. ‘공무원이 되어 승진시험을 준비하고 싶다.’ 매일 밤 녹두거리 한편에 편 술자리에서 이런 푸념이 빠지지 않는다.     


청년을 팝니다


잊을만하면 정부와 국회는 청년을 위한다는 구호를 내건다. 그러나 당장 오늘이 고달픈 이곳의 청춘에게 정치가 가져다 준 것은 거의 없다. 경쟁의 벼랑에 내몰린 청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정치나 정책은 적어도 선거 기간 외에는 없었다.


언젠가 녹두거리에서 유세에 나선 국회의원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표를 주면 이곳을 바꾸겠다고, 먹고 살만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고도 했다. 그의 유세에 멈춰 서서 귀를 기울인 이들이 없었다. 녹두거리를 채운 상당수의 임시거주자들에게 이곳에 어떤 정당과 정치인이 오는 지는 중요치 않다.




끼익!


취재를 마치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나는 급제동이 만들어낸 소리에 급히 멈춰섰다. "앞을 똑바로 봐야지, 이 새X야. 정신이 있어, 없어!" 짜증섞인 욕지거리가 귓가에 날아들었다. 황망한 마음에 길을 건너고 문득 돌아보자, 청춘의 우울한 뒷골목. 녹두거리에 다시 겨울이 오고 있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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