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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2. 2019

법원 신체감정의 비밀

A씨는 대학병원에서 신체감정을 받았다. 교통사고 피해자로 소송 중 법원으로부터 신체감정을 받아들였다. 감정을 받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비용은 수백만 원. 승소를 하게 되면 보상받을 수 있긴 하지만 당장 부담이 컸다. “극한의 환경에 몰아놓고 정말 아픈지를 관찰하는 것 같았죠. 우울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법원의 신체감정에서 환자는 실종된 것 아닌가요?”


법원 신체감정을 개선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내가 만난 다수의 소송 당사자들은 신체감정절차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부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일부는 “비용 부담이 커 결국 (신체감정을) 포기했다”고도 했다. 물론 그로 인한 불이익은 소송 당사자가 감당해야 한다.


신체감정이란, 감정의 여러 분야 중의 하나로 법원이 교통사고와 산업재해사고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사건에서 ▲피해자의 사인 ▲상해의 부위와 정도 ▲노동능력상실 정도 ▲향후치료비 및 소요일수 ▲개호의 필요성 및 정도 ▲의료비보조의 필요성 ▲기대여명의 단축 여부 등에 관해 해당 과목 의사에게 의견을 보고하도록 한 증거조사다. 신체감정은 지난 1979년 대법원이 신체감정에 따른 재판 예규를 지정한 이래, 97년과 2008년, 2017년 예규 개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돈은 감정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산업재해 피해자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신체감정은 큰 부담을 준다. “병원에서 신체감정비용으로 수백만 원이 나왔는데, 전부 검사 비용이었어요. 병원마다 비용이 달라서 B병원에 가면 1000만원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비용 고려에 대해 선택권은 환자에게 전혀 없어요.”


다음은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이다. “감정의들은 객관적 사실을 도출하라는 요구를 받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검사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비용은 천정부지로 오르게 되죠. 환자 입장에서는 과잉진료를 한다며 병원과 의사를 탓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현실이죠.”


법이 정한 신체감정절차는 감정일시의 지정, 감정절차, 감정소요실비, 소결, 감정결과의 회신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전 과정에 얼마나 걸릴까? 답은 ‘알 수 없다’이다. 당장 감정 신청 이후 촉탁기관 지정까지 소요되는 시간부터 제각각이다. 법원은 등록된 신체감정촉탁기관을 무작위 선택, 병원을 지정하는 단순한 과정임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그 이후다. 병원이 내부 사정 등으로 감정을 거절하면 법원도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다시 타 의료기관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또 상당한 시간이 지체된다. 다음은 민사소송을 진행 중인 한 변호사의 설명이다.

“신체감정 포기 및 반려자에 대한 집계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병원 지정이 번복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운 좋게 병원이 정해져도 다시 반려되는 불상사가 반복되죠.”  


한 번에 병원이 지정되도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감정의와 일정 조율을 하면 실제 신체감정은 2달~3달 후에나 이뤄지게 된다. 감정이 끝나도 최종 결과까지는 3달~4달이 걸린다. 이론상으론 신체감정이 완료되기까지 최소 6개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오지만, A씨처럼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법원이 신체감정촉탁기관을 지정해도 병원이 꺼려하는 경우가 많았다. 감정을 할 시간이 없고 의료진도 부족하다고 했다.”


“소송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감정에 있어서의 최소한의 절차적인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료기관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필요성의 인식이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하여 감정에 대한 적절한 절차의 안정성 확보는 물론이고 예측가능하며 합리적인 감정을 위하여 대법원과 대한병원협회가 합리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료기관 내부의 신체감정절차와 향후치료비 산정에 대한 문제점의 고찰(강요한 외, 2012)'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법원은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와 함께 의료감정 개정을 논의해 예규를 개정하기에 이른다. 대법원은 “신체감정료는 40만 원, 진료기록감정료 60만 원으로 각각 100% 인상하고, 재판장이 사정을 감안해 감정료를 인상할 수 있도록 관련 예규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사실 의료감정료 인상안은 이미 지난해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의 상설 협의체인 ‘재판제도 개선협의회’에서 예고된 바 있다. ‘2016년 7월 4일자 합의문 및 향후 추진 계획’에서 감정료 인상안은 이미 합의가 끝난 상태였다. 당시 회의에 참가한 법조인은 “병원에서 신체감정이 이뤄지면 감정의에게 돌아가는 감정료는 20만원 선이다. 적절한 감정료가 지급돼야 의사들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감정을 꺼리면 방법이 없다. 신체감정촉탁기관 지정을 위해 4~5개 병원을 거치는 동안 재판은 계속 지체된다. 원고 입장에서도 손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신체감정촉탁기관이 많아지면 병원 지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현재 대학병원의 신체감정 참여율은 결코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의협 관계자는 “대학병원에서 결론이 신속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반응을 청취한 바 없다”고 밝혔다. 주장대로라면 병원은 신속하게 감정을 했지만, 그 이외의 과정에서 지체됐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떻게 된 걸까?


법원과 병원의 입장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신체감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는 "신체감정 예규 개정의 전제부터 문제"라고 귀뜸했다. 의료감정료를 높여 촉탁기관 확보를 독려한다는 것은 ‘궁여지책’이라는 것이다. “신체감정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킵니다. 신체감정까지 가기 전에 피해자 중심주의가 무엇인지 고려해야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법조인도 “주치의가 환자의 상태를 가장 잘 안다. 그 역시 전문가인데 비합리적인 판단을 하겠는가. 알면서도 (신체감정) 유지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법조인도 “한국에서 법은 상식이나 현실 위에 군림한다. 재판부는 탈 많은 신체감정결과만 인정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앞선 A씨는 현재도 소송 중이다. 그는 과연 환자의 고통에 대해 법원이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인생이 파괴되는 느낌이 들어요.”


피해자 중심의 법원과 재판은
드라마 속에서만 가능한걸까?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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