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7. 2019

수술실의 비밀

지역의 한 정형외과. 의료진이 수술실로 우르르 달려갔다. 의료진이라고 해봤자 정형외과 전문의와 마취의사가 전부다. 나머지는 간호조무사와 응급구조사. 전신마취를 했던 환자는 심정지 상태였다. 심폐소생술이 실시됐지만, 환자는 9시간 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사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상한 일이 연거푸 일어났다. 간호조무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마취제를 사용했고 경찰 조사를 앞두고 마취 전문의는 병원에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모든 게 나의 잘못”이라고 적혀 있었다. 수술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2015년 5월 16일 오전 체육시간. 9살 ㅅ양은 놀이기구에서 떨어져 왼쪽 팔꿈치뼈 일부가 부러졌다. 담임교사는 아이를 데리고 인근 정형외과 의원에 내원했다. 의원은 ‘소아정형외과’를 진료과목으로 둔, 인근 병원 중 유일하게 마취 전문의가 있던 곳이었다. ㅅ양의 아버지는 수술 동의를 받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한다. 특히 ㅅ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전신마취에 대해 대체할 수 있는 국소마취를 시행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했다. 


꼭 전신마취를 해야 하냐고 물으니까 
(하지 않으면) 아이가 아파서 죽는다고 했어요


그러나 대법원 판례를 보면 의사는 ‘환자의 선택권’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사는 당시의 의료수준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을 설명하여 당해 환자가 그 필요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비교해 보고 그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 1995. 1. 20. 선고 94다3421 판결, 대법원 1997. 7. 22. 선고 95다49608 판결  


그러나 병원 측은 환자의 상태와 수술일정 및 방법, 마취에 대한 고지가 담임교사와 보호자에게 총 3회에 걸쳐 사전설명이 있었다고 반박했다. 아버지는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보호자에게 선택권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한 주치의 ㄱ씨 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ㄱ씨는 병원장이자 ㅅ양의 수술 집도의였다.     

    

입원일은 금요일이라 주말동안 병동에는 간호조무사밖에 없었다. ㅅ양의 어머니는 아이가 입원 당시 부상 부위의 통증을 호소하고 미열과 함께 2~3차례 코피를 흘렸다고 진술했다. 병원은 어떤 처치를 했을까.  

    

“코피를 흘린 것은 실내가 건조한 탓. 가습기를 작동시키면 된다”, “골절되면 열이 난다”…. 


진단은 의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가 했다. 이런 증상이 수술에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주치의는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았다. 모든 처치는 간호조무사 선에서 정리됐다. 간호조무사의 조치가 사실상 진료행위에 가깝다는 것은 아래 증언에서 더욱 드러난다.     

  

“아이가 아파해서 소아용 진통제를 요구했지만 갖고 있지 않다고 했어요. 집에서 아이가 먹는 진통제가 따로 있느냐고 되묻기에 해열진통제밖에 없다고 하니까 ‘괜찮다. 가져다 먹여라’고 했어요.”       


의료법 제27조 제1항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의료법 제2조 제1항은 의료인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의사는 문제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술 당일에 벌어졌다. 당시 상황을 마취기록지와 병원 CCTV, 경찰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오전 9시 ㅅ양이 수술실로 이동. 수술실 밖 대기실에서 수술실장인 ㅈ씨가 마취제를 주사했다.       


▷오전 9시50분 수술 시작. 전신마취를 유지하기 위해 근육이완제와 기관내삽관, 흡입마취제 및 산소가 투여됐다.       


▷오전 10시45분 근이완제 추가 투여.     

 

▷오전 11시20분 집도의 ㄱ씨가 수술실 밖에 나온 것을 ㅅ양의 모친이 목격. ㄱ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40분 근이완제의 역전제와 역전제의 부작용 방지 약물이 투여됐다.   

  

▷오전 11시50분 수술 종료. 흡입마취제 투여가 중단됐다. 아직 환자의 자발호흡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     


▷오후 12시50분 근이완제의 역전제 및 역전제의 부작용 방지 약물이 추가 투여됐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오후 2시 수술이 끝난지 2시간 10분이 지났지만, 아이는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당시 보호자와 마취의사와의 대화는 이랬다.


(ㅅ양 아버지) “애가 왜 안 깨어나죠?” 


(마취의사) “애라서 좀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아버지) “애가 깨어나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빨리 대학병원에 가야되는 것 아니냐.”


(마취의) “기다려달라.”      


이후 마취의사 ㄱ씨는 ㅅ양의 어머니에게 환자가 깨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마취의) “아이의 의식이 점점 돌아오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ㅅ양 어머니)  “애 얼굴 좀 보여 달라. 애가 의식이 있는 것이냐.”


(마취의)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아이들 수술을 많이 해봤는데 이렇게 안 깨어나는 경우가 처음이라 협진병원에 자문을 구하고 있다.”           


▷오후 2시30분 근이완제의 역전제 및 역전제의 부작용 방지 약물이 다시 투여됐다.


오후 4시 보호자는 주치의 ㄱ씨와 면담을 가졌다. ㄱ씨는 외래환자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고 있느냐, 속 시원히 얘기를 해 달라.”


(주치의) “마취의사와 수시로 얘기하고 있다. 지금은 늦게 깰 뿐이지 혈압 같은 것은 정상이다.”


(아버지) “너무 늦게 깨면 후유증이나 이런 것이 있는 것은 아니냐.”


(주치의) “천천히 깨고 있는 것 같다.”          

 

늦게 깨는 것뿐이고 환자의 혈압은 정상이라는 주치의의 설명은 사실과 달랐다. 마취기록지에는 환자의 상태가 ‘정상’으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경찰은 오후 3시40분 이미 심폐소생술이 실시된 사실을 확인했다. 4시50분 주치의와의 면담이 한차례 더 이뤄졌다. ㅅ양 아버지의 증언이다. 


“(주치의는 제게) 혈압과 맥박을 계속 마취과 선생과 통신하고 있는데 문제가 없으니 1시간 정도 더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그래도 차도가 없으면 어떡할 것이냐고 묻자, 대학병원에 가서 뇌파 검사 등을 실시하자고 했습니다.”     


‘부작용 등 잘못될 가능성은 없다’는 주치의의 호언장담은, 그러나 30분 만에 뒤집어졌다. 당일 진료기록은 오후 4시 이후의 마취기록이 없었고 아이가 후송되기까지의 기록은 사건 후에야 제출됐다. 오후 4시 이후 응급 상황이 지속됐고, 마취기록을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오후 5시30분 의료진이 갑자기 수술실 안으로 몰려 들어갔고, 간호사들이 수액 및 무언가를 수술실 안으로 가져다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혈압은 정상이 아니었고, 인공호흡기를 통해 겨우 호흡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정지가 발생한 ㅅ양의 심폐소생술은 마취의사가 전담하고 있었다. 심정지가 반복되자 전기충격기가 동원됐다. 그제야 아버지의 요구로 ㅅ양은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오후8시48분 대학병원에서는 ㅅ양의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수술실의 비밀 


마취제를 주입한 수술실장 ㅈ씨는 간호조무사였다. 의료법의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2조 제1항에는 간호조무사에게 간호 보조 및 진료 보조 업무를 허용하고 있다. ‘진료 보조 업무’는 간호사의 고유한 업무다. 즉, 간호보조사도 간호사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 역시 간호조무사가 근육주사와 정맥주사를 놓거나 수술준비 등의 의사 진료를 보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의사의 지시·감독 하에서만 이 같은 진료 보조 업무가 가능하다는 조건이 붙는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ㅅ양의 모친은 의사의 입회나, 지시, 감독 등은 전무했다고 증언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결과 ㅅ양에게서 저산소성 뇌손상이 관찰됐다. 국과수는 ▲마취과정의 문제 ▲자발호흡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 지속 등이 저산소성 뇌손상을 유발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기관삽관에 쓰인 내경 4.0mm의 기관튜브는 9세 아동의 경우 내경이 5.5~6.0mm여야 한다. 내경이 좁은 기관튜브는 기도 저항을 증가시킨다. 이는 환기부전을 발생시킬 수 있다. 환기부전은 자발호흡 회복에 방해로 작용될 수 있다.   

    

당시 사용된 마취제는 유효기간이 3개월 지난 것이었다. 병원 측은 다른 환자에게 동일한 마취제를 사용했지만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면, 타 환자들에게도 유효기간이 지난 마취제를 사용했음을 병원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후 마취의사 ㄱ씨는 병원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유서로 보이는 A4 두 장 분량의 글도 함께 발견됐다. 컴퓨터로 작성된 글은 마취 과정에서 일어난 일은 마취의사의 전적인 책임이며, 속죄를 위해 자살을 선택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수술실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ㅅ양의 아버지는 울며 내게 말했다. 


아이에게 잠깐 자다 일어나면 된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이전 14화 법원 신체감정의 비밀
brunch book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나는 투명인간을 보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