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발생 초기의 혼란…사태 시작부터 취재해 온 의학기자의 기록
세계보건기구(WHO)는 2018년 2월 ‘추후 세계 대유행을 일으킬 바이러스 8가지’를 발표했다. 8번째 바이러스는 ‘질병 X’(disease X)로, WHO는 신종 바이러스의 전 세계 대유행과 피해를 전망했다. 나는 여기에 착안해 그 해 12월 ‘감염병 공습 국경은 없다’는 테마를 안고 취재차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중국에서 유래해 홍콩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온 사스(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와 홍콩독감의 희생자들을 만 나고 난 후 기사 머리글을 다음처럼 썼다.
“새해를 달군 것은 신종 바이러스의 공습 소식이었다. 이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감염되며 약 일주일간의 잠복기를 거쳐 급속도로 확산됐다. 초기 증상은 고열과 두통, 구토, 탈수 등 독 감과 유사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전을 통해 수일 내 환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리고 1년 후 글은 거짓말처럼 현실이 되었다.
2020년을 며칠 앞둔 크리스마스이브의 홍콩. 구룡의 침사추이와 몽콕 일대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다. 2019년 초부터 홍콩에서는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빈발했는데, 시위는 점차 중국의 간섭과 통제를 거부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바뀌어 갔다. 그 과정에서 경찰의 강압적 진압은 홍콩인에게 깊은 상채기를 만들어, 분노의 불길은 연말이 되어도 꺼지지 않았다.
“가만있어, 이 바퀴벌레야!”
경찰이 한 젊은이를 아스팔트 바닥에 거칠게 누르며 외쳤다. 청 년의 얼굴은 이미 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눈앞에서의 처참한 광경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경 찰의 얼굴에 카메라 플래쉬를 터뜨렸다. 그가 무어라 날카롭게 외치며 손을 뻗는가 싶더니 이 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고추스프레이를 뒤집어 쓴 나는 연거푸 생수를 눈에 부었지만 불에 데인 듯 한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화끈한 휴가네?”
침묵을 깬 건 제이미 휴이(가명·36)였다. 말은 장난스러웠지만 얼굴에는 걱정이 배여 있었다. 그렇다고 아무 병원이나 갈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국립병원은 이미 부상 당한 시위대로 가득차 있었고 안전을 확신할 수 없었다. 체포 대상은 언론인과 의료인을 가리 지 않았고, 최악의 경우 나 같은 외국인은 추방될 수도 있었다. 제이미가 이끈 소규모 동네병 원에서 식염수로 눈을 소독하고 나서야 얼추 진정이 됐다.
“한국인은 너무 감정적이라니깐. 적당히 피했어야지. 프레스 조끼를 입고 있지도 않았다며?”
“숙소로 데려다 줘. 좀 누워야겠어.”
제이미의 오토바이가 골목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도로를 질주했다. 그녀는 홍콩과 영국을 오가는 프리랜서 언론인이었다. 숙소 날 데려다 준 그녀는 헬멧을 고쳐 쓰며 말했다.
“며칠 서울에 들를까 해.”
부릉 시동을 걸며 한 마디 더 보탰다.
“메인랜드(중국 본토)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어쨌든 서울에서 봐.”
그렇지만 그녀는 서울에 오지 못했다. 일주일 후인 2019년 12월 31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가 원인불명의 폐렴이 집단발생했다고 긴급 발표했기 때문이다. 진원지는 화난 수산시장이었는데 이곳은 우한을 방문한 여행객이라면 한번은 들르는 지역의 대표 관광지였다. 여기서 27명의 환자들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우한시 위생건강위원회와 WHO는 이 정체불명의 신종 바이러스-훗날 우리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부르게 될-에 대해 “분석 중”이라는 짧은 발표만을 내놨다.
이후 동물에서 유래한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전 파되어 발병한 인수공통감염병일 수 있다는 전망에 이어 시장에서 토끼, 꿩, 뱀과 같은 야생 동물이 팔렸다는 사실이 현지 지역 언론의 보도로 알려지자, 닭의 사체가 쌓여 있는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중국과 인근 도시, 국가들은 이 바이러스를 두고 2002년 중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대유행해 775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사스와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중국의 웨이보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는 사스의 재창궐이 아니냐는 게시물이 들끓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게시물 은 즉각 삭제되었다. 비슷한 일이 수개월 전에도 있었다. 중국에서 폐페스트가 발병한 후 중국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에 의구심을 표하는 게시물들도 사라졌다.
대만, 싱가포르 등 중화권 국가들은 사스뿐만 아니라 최근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에 쓰디쓴 경험을 갖고 있던 터라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특히 우한 시에서 고속열차로 4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홍콩은 즉각 비상경보를 내리고 검역 강화 조치를 실행했다. 사태 초기 소피아 챈 홍콩 식품보건장관은 홍 콩에서 감염병 경보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근거로 든 것은 정보의 부족, 그리고 그에 따른 원인 파악의 어려움이었다.
“우한시의 상황은 비정상적(unusual)입니다. 우린 아직 신종 바이러스 창궐의 명확한 원인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태 초반 홍콩이 다소 극성스러울 정도로 경계를 보인 이유는 과거 사스의 쓰디쓴 기억과 무관치 않았다. 2002년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는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됐다. 중국에서만 5300명이 감염돼 이 가운데 349명이 사망했고, 홍콩에서만 1750명이 감염되어 299명이 목숨을 잃었다. 홍콩의 저명한 미생물학자인 유엔 곽융 홍콩대 교수는 “우한시의 경우가 홍콩독감, 사스와 비슷하지만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고 밝혔지만 이미 홍콩인들은 공황 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중국과 접촉을 하고 있지만 언론에 공개된 내용 외에는 알지 못합니다. 중국 당국이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는 전제 하에 그들의 말을 믿고 그 수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검역을 강화하려면 검역 오염지역으로 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질병명 등은 있어야 하죠. 때문에 지금은 주의안내 당부 정도만 하고 있어요.”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 실무자의 수화기 너머 건조한 목소리.
“바이러스 연구와 현지실사가 어렵다는 건 알겠어요. 지금 대책이 선제적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요?”
대답 대신 질문이 날아들었다.
“중국에서 27명 말고 환자가 더 발생했는지도 모르는데 뭘 알아야 선제적 조치를 하죠.”
중국에서의 집단발생 소식 사흘 후인 1월 3일 질병관리본부는 대책반을 구성하고, 1주일에 8편 직항 운행 중이었던 우한발 항공편의 국내 입국자에 대한 ‘게이트검역’ 조치를 발표했다. 게이트검역은 공항 입국 게이트에서 발열 및 호흡기 이상 증세를 확인하는 입국 검역방법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입국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외교부와 협의가 되지 않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방역당국의 코로나19 대처는 바이러스 창궐 이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환자 발생 전후로 구분된다. 훗날 우리나라의 이른바 K-방역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초반만 해도 다소 느긋한 분위기가 있었다. 처음의 방침은 사실 ‘상황에 따라 대책을 유동적으로 바꾼다’는 것이었고, 그 자체만 본다면 합리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감염병에 대한 지나친 공포 조장은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너무 소극적인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정보 부족과 중국의 협조 를 구하기 어려운 동일 상황에서 중국의 통제 아래 놓여있는 홍콩이 되레 우리보다 더 적극적 방역 조치를 취하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이 원인불명의 감염병 정보 일체를 중국에 의존하는 형편이었다. 그렇지만 과연 중국이 투명한 정보공유를 할지는 미지수였다.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여기는 게 더 합리적 판단일 수 있었다. 실제로 중국 보건당국의 발표는 계속 바뀌었다.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그들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었다.
혼란은 가중되었다. 나는 줄곧 휴이로부터 중국과 홍콩 당국의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 가운데는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만 것도 있었는데 중국-홍콩 전문가들이 사람간 전파 가능성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는 정보도 그 중 하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은 환자를 돌본 의료진 가운데 감염된 사례가 없음을 들어 사람간 전파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 다고 수차례 발표했다.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말을 흘려들었다.
한번은 이 바이러스에 대해 국내 한 대학병원의 감염내과 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람간 전염이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두고 봐야죠.”
그러던 중에 특이한 사례가 발견되었다. 우한시에서 집단 발병한 환자 가운데 바이러스 발생지인 화난 수산시장을 방문한 적이 없었지만 감염된 여성 환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시장 상인이었고, 그가 감염된 후 아내도 뒤따라 발병했다. 이들의 사례를 들어 사람간 전 파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 섣부른 게 아닌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홍콩에서 지속적으로 나왔다. 그럼에도 우한시건강위원회는 “역학 조사결과 사례가 발견되지 않아 사람간 감염은 배제했다. 위험성은 낮다”는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했다. 질병관리본부 측도 내게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설명을 내놓았다.
“(우한시 부부 감염자) 매우 밀접한 접촉자에 의한 단 하나의 감염 사례인건데요. 태국 보건당국은 자국 내 환자와 접촉한 사람들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밀접한 접촉이 아닌 일상접촉, 그러니까 대화 등 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은 낮다는 거죠.”
그렇지만 훗날 사람간 전파는 사실로 판명되었다.
감염병 창궐 보름전인 2019년 12월 14일 서울에서 한중일 보건부 장관이 만나 감염병 공동 대책을 논의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날 삼국이 맺은 감염병 협조체계가 과연 실효성을 담보한 것인지, 아니면 외교적 퍼포먼스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줄곧 의문을 품고 있었다. 수일 후 보 건복지부장관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었다.
“감염병에 대해 진전된 합의 내용이 있었습니까?”
“감염병이 발생하면 실무자선에서 핫라인을 개통하고 장관끼리도 주고받을 핫라인도 열기로 했습니다.”
“중국 폐페스트 사례에서도 감염병 정보 공유가 현지에서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는데, 민감 한 감염병은 정보 교류 확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한중은 폐페스트 환자 상태 및 현지 대처, 확산 방지 대책 등을 매일 주고받았습니다. 위중한 감염병 발생 시 어떻게 행동하고 지방단위까지 어떻게 행동에 옮길지 도상훈련을 하는데에도 합의했고요.”
1월 14일 중국 바깥에서도 첫 확진자가 나왔다. 태국 방콕의 수안나폼 공항을 통해 입국하려 던 61세의 중국 여성은 발열반응 등의 이상 증세가 발견되었던 것이다. 타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자 WHO, 중국 국민보건위원회(National Health Commission; NHC), 홍콩 보건부 산하 건강보호센터(Centre for Health Protection; CHP) 등은 발칵 뒤집혔다.
엿새 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첫 확진자가 입국 과정에서 발견됐다. 그리고 한 달 후인 운명의 2월 19일 31 번째 확진환자 발생 이후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대유행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즈음 나는 제이미와 연락이 끊겼다. 그녀가 내게 전한 마지막 메시지는 현지 마스크 가격 이 ‘미친 듯이’ 치솟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지역까지 다 퍼진 것 아냐?”
서울 영등포구 당산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 3층 브리핑실. 이곳에 진을 치고 있던 취재진 가운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확진환자가 나온 이후 우리 정부의 기조는 크게 바뀌어 공격적인 대응이 이루어졌다. 당시 코로나19에 대한 브리핑은 매일 오전 11시에는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오후 2시에는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맡아 진행했다. 브리핑은 정부세종청사-오송-서울, 질병관리본부-세종-서울 사이에 화상으로 진행됐다.
코로나 19 국내 발생 현황은 각각 오전 10시와 오후 5시에 발표됐기 때문에 발표 시간이 가까울수록 각 언론은 신경을 곧추세웠다. 기자들은 매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어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그나마 수일째 환자 발생이 줄어 일순 상황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조심스레 종식 선언을 묻는 이들도 있었다. 2020년 2월 18일 오전 10시 확진자 현황이 발표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날 새로 추가된 확진환자에게 부여된 번호는 31번이었다. 29, 30, 31번째 확진자들은 이전과는 달랐다. 다른 확진자들은 중국을 방문했거나 그 접촉자였지만, 이날 새로 발견된 세 명은 어디에서 감염됐는지도, 해외 방문 이력도 확실치 않았다. 이들 가운데는 심지어 아예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다고 진술한 환자도 있었다. 지역사회 전파의 조짐일까?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은 없었다.
오후가 되어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발표한 공식 자료에는 이전에는 없던 다음의 문구가 포함되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금번 코로나19 발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며, 지역사회 감염이 확인된 국가나 지역의 방문객, 의료기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감염예방 수칙 준수를 거듭 당부했다.”
정부 공식 문서에 포함된 이 ‘새로운 국면’이란 것이 지역사회 전파의 본격화를 말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국내외적인 상황을 다 반영하는 것”이라는 알 듯 모를 듯 한 설명만을 내놨다. 말인즉슨 중국 우한발 유행이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해 홍콩, 싱가포르, 일본, 태 국, 대만 등지에서 2, 3차 감염 양상으로 또 다른 유행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면이란 이야기였다. 정부 당국자는 다음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유사한 환자들의 보고가 늘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유행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내비친 발언이었다.
운명의 19일, 대유행의 조짐은 전날 새벽부터 있었다. 지역에서 추가 환자 발생 소식이 계속 전해졌던 것이다. 정확한 최종 집계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방역당국과 지자체 공보국은 밀려드는 기자들의 사실 확인 전화에 공식 발표 시간까지 기다려 달라는 답변을 내놨다.
드디어 오전 10시 중앙방역대책본부의 공식 집계 자료가 발표되자 취재진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나는 정부 자료에 선명한 “확진환자 15명이 추가로 확인되었다”는 문구에 잠시 멍해졌다. 문득 홍콩 현지 언론인인 제이미 휴이가 내게 들려준 “중국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는 말이 떠올랐다. 발표가 끝나자마자 브리핑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담당자는 계속 통화 대기 중이었다.
“현재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두려워하시지 말고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환자를 신속히 발견하고 발견된 환자는 신속히 격리하며 적극적인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정부 문건 말미의 이 구절은 도리어 사태의 위중함을 강조하는 듯 했다. 그리고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국내 1차 대유행의 혼란 와중에 경북의 지역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심상치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도 대남병원에 입원해 있던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코로나19 감염에 속절없이 스러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폐쇄병동은 병원에 따라 보호병동으로도 불리는데,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를 대상으로 집중 치료를 실시하는 곳이다. 이곳에 입원하는 사람들은 자살 충동이나 폭력성이 높아 자해 및 타해의 위험이 높고, 알코올 사용장애 등 약물 조절장애로 의식이 흐리거나 뇌손상으로 인격상의 급격한 변화가 관찰되는 경우가 많다. 폐쇄병동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어 의료진만 출입할 수 있어 더러 인권침해가 이뤄지기도 했다.
다수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한 경북의 청도 대남병원에 대해 정부는 코호트 격리(Cohort Isolation) 조치를 발효했다. 코호트 격리란, 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 전체를 봉쇄하는 방역 조치이다. 이곳에서는 첫 사망자가 나왔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고인이 20여 년 동안 입원해 있었고, 다른 환자들의 평균 입원 기간도 4~5년씩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실 소규모 정신과 의료기관의 폐쇄병동에는 장기입원환자들이 많은 이유는 보호자와 지역사회의 지지가 없어 퇴원을 해도 딱히 갈 곳이 없는 경우가 많고,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환자당 지급받는 돈 때문에 장기입원을 은근히 반기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게 정신질환자는 만만한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청도대남병원 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신과 폐쇄병동 시설은 열악한 곳이 많았다. 환자 여럿이 한 병실에 장기입원해 있다 보니 병의 전파가 빠르고, 대다수가 고령에 고혈압, 심장병, 당뇨 등의 기저질환을 앓고 있 는 탓에 면역력이 낮았다. 애초에 방역이 불가능한 시설이었던 것이다.
청도 대남병원에서 최초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이들을 가까운 의료기관으로 이송할 수 없었던 것은 정신질환과 기저질환, 코로나19 모두를 치료받을 만한 병원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계속 사망자 가 나오자 정부는 환자 중 코로나19 진단검사 결과가 음성인 이들은 국립부곡병원으로, 양성인 환자들은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은 국립정신건강센터로 이송시켰다. 경북에서 서울까지의 이송은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엄중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이영문 센터장은 대남병원 환자들이 방역이 느슨한 시설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했다. 문제는 이들의 퇴원 이후였다. 그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정신질환 당사자를 지금처럼 두면 안 됩니다. 정신질환 당사자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일반적으로 당사자 한 명을 돌보는데 150~200만 원 정도가 듭니다. 이 비용을 지역사회에 머물 시설로 돌려 환자들을 보듬어야 해요. 집단 수용식이 아니라 소규모 그룹홈에서 돌봐 야 합니다.”
오미크론 변이바이러스 유행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방역대책은 해제되었고, 코로나19는 머지 않아 기존의 법정감염병 1급에서 2급으로 재분류될 것이다. 누구는 코로나19가 끝났다고 말하고, 또다른 이는 빠르면 여름, 늦어도 가을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재유행을 걱정한다.
코로나19 뉴스는 대부분 통계에 기대 제작된다. 매일 마주해야 하는 각종 수치와 통계는 감염자와 그의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 누군가 감염병으로 사망하면 유족은 시신의 마지막을 볼 수 없다. 감염 위험 때문이다. 고인과 가족 모두에게 마지막 작별조차 허용하지 않는 비탄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가져온 한 가정의 비극. 나는 이것을 기사 끄트머리에 “추가 사망자 OO명”이라고 덧붙일 뿐이다. 은퇴 자금을 쏟아붓고 빚을 내 문을 연 식당과 카페가 팬데믹의 여파로 문을 닫고 있다. 이후 그 가정에 찾아올 시련이란 얼마나 매섭겠는가. 누군가의 가족, 이웃, 친구들이 겪고 있는 시련이란 “소상공인·자영업자 생계 어려움”으로 쓰이고 말 뿐이다.
나는 이렇게 누군가의 죽음이나 시련을 몇 줄 통계와 숫자로 전하고 마는 무책임을 2020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되풀이하고 있다.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을 뺀 채 하는 죄. 이 죄를 알면서 저지르고 있다.
2021년 8월 11일 국내 코로나19 유입 이래 가장 많은 환자 수가 나왔다. 이 기록은 아주 쉽게 깨졌다. 훗날 60만명을 넘으며 기록적인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나오던 날 나는 노트북을 닫고는 담배를 피웠다. 감염병의 고통은 여전한데, 하늘은 푸르렀고 낮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코로나19의 마지막 순간까지 취재는 계속될 것이다. 대유행의 시작, 그 혼란의 시간을 기록했던 것처럼 유행의 종식을 뉴스로 만들 때는 수치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코로나19는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