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 갔다. 이곳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분신한 환자가 이곳에 이송됐을 때도, 의학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처음 들어가본 수술실도 모두 이곳에서였다.
'화상 그 후' 취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갔을 때는 화상외과 과장이었던 이가 그새 병원장이 되어 있었다. 세월 참 빠르다고 생각했지만 바뀌지 않는 것도 있었다. 화상에 대한 세간의 낮은 관심과 여전히 화상 분야는 여전히 우리 의료계에서 찬밥이라는 안타까운 사실이 그랬다.
허준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장은 화상외과 의사를 두고 ‘살짝 미쳐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원장 취임 이후 첫 인터뷰에서 국내 유일 화상전문병원, 세계적인 수준의 화상외과를 이끌고 있다고 자랑을 잔뜩 늘어놓아도 모자랄 판인데 미쳐있다니!
이 말에 많은 속사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낮은 수가로 전공의 기피 1순위의 외과, 그중에서도 더 아랫단에 놓여있는 화상외과의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열악하다. 그럼에도 그와 동료들은 굳이 고생길을 자처하고 있으니 미쳐있다고 할 수밖에.
말마따나 병원에서 24년간 일해온 허 병원장은 15년 동안 전공의를 받아본 적이 없다. ‘짬밥’이 높은 그조차 한 달의 3분에 1은 당직으로 밤을 새워야 한다. 제주도를 포함해 땅끝마을에서도 화상 환자가 이송되지만 병원의 경영 사정은 좋지 않다. 조금 과장한다면 한림대의료원의 지원 없이는 언제 병원 문을 닫아도 이상하지 않다.
의료진이 열심히 일해도,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느라 ‘열일’해도 점점 더 적자가 되는 구조. 그것은 우리 의료체계가 가진 모순점일 것이다. 허 원장은 “공공성이 필요한 의료분야는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며 “진료과의 특수성을 인정한 수가 체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화상외과팀이 회식을 하러 갈 때면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다. 식당의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불이 붙을라치면 의료진은 일제히 뒤로 물러섰다. 일상에서 발생하는 화상 피해 환자를 오랜 기간 돌보다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다.
연간 병원의 화상외과에 입원하는 환자 수는 900명~1천명 수준. 타 질환도 그렇지만 화상은 특히 급성기가 중요하다. 과거보다 중화상 빈도는 줄었지만 일상에서 발생하는 화상 사고는 끊이질 않는다. 경화상이라고 해서 만만히 보아선 안 된다. 일부 환자에서 계속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뜨거운 국에 손가락을 데인 이후 후유증으로 손가락 관절에 문제가 생겨 물건을 집거나 하는 등의 일상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도 부지기수. 허준 원장의 말이다.
“화상 사고 이전에는 그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화상 사고를 당한 후에도 어디에서 치료받아야 하는지를 몰라 초기 치료 과정이 부적절하게 이뤄지는 경우도 너무 많죠. 화상 피해 이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합병증이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화상은 상당히 넓은 영역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계절별 화상 예방책과 응급처치법을 더 많이 알릴 생각이다.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미국 내 가장 큰 화상병원보다 규모면에서는 두 배 이상이다. 병원의 화상 분야의 임상 실력은 이미 전 세계 톱 수준. 사실 화상 분야는 특성상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서 발생 가능성이 높고, 피해도 더 크다. 때문에 한림대한강성심병원은 몽골·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 의료진과 교류를 해왔다. 진료 봉사를 위해 현지에 간 적도 수차례. 허 원장은 병원의 노하우를 현지에 전하고도 싶다.
그러려면 현재보다 더 공고한 위치와 체계화된 시스템이 필요했다. 인력도 문제였다. 국내 화상 전문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국내에서 인력 확보도 필요했다. 그래서 허 원장은 지금보다 더 잘 디자인된 병원을 만들고 싶다. 그렇지만 그와 병원 구성원만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제대로 디자인 되어서 체계화된다면 환자의 혜택도 더 많아질 거예요. 국가 운영 체계에서 화상은 낮게 대접받고 있는데 진료과의 특수성이 지금보다 더 고려돼야 합니다.”
지금은 병원장으로 ‘출세’를 했지만 허준 원장도 처음부터 화상외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임상의 말고 기초연구를 하고 싶었다. 해부학이나 법의학을 하고 싶었지만 장시간 현미경을 보는 게 그에겐 쥐약이었다.
하는 수 없이 임상의로, 그럴 거면 외과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화상외과를 선택한 것도 어쩌다보니 되어버렸다고. 그가 화상외과에 전공의로 지원할 당시에도 화상외과는 인기가 없었다. 화상외과에 지원한 전공의는 그 혼자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결에 시작한 화상외과의로의 삶은 그의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병원에서 허 원장은 아직 ‘주니어’ 취급을 받는다. 50대면 아직 펄펄 날 때라는 선배들의 이야기. 사실은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걸 그도, 그의 선배들도 알지만 그냥 웃고 만다. 그래서 일주일에 절반은 아직도 당직 근무로 밤을 샌다. 소신이나 사명감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단순하다. 환자가 덜 힘들면 기분이 좋고 일은 고되지만 재밌으면 땡!
화상 피해는 돈이 많은 사람보다 없는 사람에게 더 취약하다. 경제사정이 안 좋은 환자에게 돈이 많이 드는 치료를 하기가 어렵다. 화상에 대해 보건복지부·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식품의약품안전처·근로복지공단 등은 서로 다른 체계로 운영하는 탓에 화상 질병 분류도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체계화와 합리적 운영이 어려워진다. 병원 입장에서는 경영이 어려우니 비용은 더 비싸지고 환자 본인 부담은 커진다. 전국에 화상병원이 없거나 있어도 점차 줄어드는 이유다. 허 원장은 화상외과 분야의 특수성과 중요도에 비해 정책적 지원이 부족한 점은 늘 아쉽다. 그는 “한이 맺혔다”고 했다.
“전국 각지에 화상병원이 있어야 하는데 의료체계의 한계로 외과계가 살아남기 어려워요. 외과계는 노동집약적 구조를 갖고 있어 거기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원만한 진료가 어렵고 결국 가장 큰 어려움은 환자에게 돌아가고 말아요. 답답한 현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