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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29. 2019

화상 그 후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수술이 끝났다.

환자는 가까스로 살아났다. 쉽지 않은 수술이었다. 전신에 화상을 입은 소년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집도의는 장시간의 수술 끝에 사(死)에서 생(生)으로 한 뼘 옮겨간 환자가 고맙다. 한숨 돌리기가 무섭게 의사는 다른 수술실로 향한다. 지잉 소리를 내며 수술방 문이 열리자 이번에는 사십대 남성 환자다. 불과 열에 손상된 피부를 제거하는 수술이 한창이다. 집도의가 손을 보탤 무렵, 온몸에 붕대를 감은 김민재(9·가명)군은 화상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김군은 향후 재활치료와 성형수술, 정신과 상담 등을 거치게 된다. 몸과 달리 정신건강의 치료는 더디게 진행된다. 화상 흉터를 지니고 살아가게 될 앞날도 그리 녹록치는 않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화상 환자들은 아직 적잖은 차별을 받는다. 김군과 같이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화상환자들은 오늘도 A병원에 모여든다.

‘손’이 부족하다

시장의 새벽은 손님 맞을 준비로 부산하다. 주차를 두고 두 사내가 아침부터 고함을 지른다. 벌겋게 달아오른 이들의 얼굴에는 아직 술기운이 남아있다. 시장의 아침은 으레 철없는 네댓 명의 다툼으로 시작하지만 서늘한 새벽공기 때문에 시장의 활기는 반쯤 가라앉아 있었다.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아침 내내 소란을 벌일 참이던 두 사내는 불청객의 등장에 맥이 풀린 눈치다. “쭉 직진하시오.” 퉁명스러운 대꾸를 뒤로하고 일러준 대로 시장입구를 지나 백여 미터를 더 걷자, A병원 응급의료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환자복을 입은 남자가 박카스를 들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걷고 있다. “휴” 그는 병 안의 것을 단번에 비우더니 옅은 한숨을 뱉는다. 비치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사내가 기지개를 쭉 편다. 병원의 아침은 환자와 의료진 할 것 없이 어깨에는 전날의 피곤이 뭉쳐있다.


“익숙해졌어?”


“적응 중.”


엘리베이터 안의 침묵을 깬 건 중환자실의 ㅅ간호사였다. 화상외과에서 근무한지 수년이 지났건만 피곤함은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오전 7시30분에 시작되는 화상외과 콘퍼런스까지 한 시간여가 남아있었다. 커피를 즐길 여유는 있지만 그녀는 늘 시간에 쫓긴다. 업무 준비를 하다보면 커피 타임이란 묘연해지곤 하는 것이다. 생각에 골똘해 있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건물을 관통해 중환자실이 위치한 3층에 그녀를 내려놓았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오전 7시10분. 5층 교수회의실에 불이 켜진다. 화상외과의 컨퍼런스는 주말을 제외한 평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시작된다. 수분 간격을 두고 의료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정히 의사가운을 입은 이도 있었지만 수술복 차림이 더 많다. 벌겋게 눈이 충혈된 이는 대다수. 오전 수술 일정이 있는 몇 명을 제외하고 15~16명의 의료진이 모두 모였다.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의료진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대화는 대화이나 일반적인 대화와는 다르다. 환자의 상태와 진행은 의학용어와 서술어의 단순한 조합으로 보고된다. 접두사나 형용사뿐만 아니라 조사와 접미사도 건너뛴다. 이마저도 속사포라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어렵다. 극단적으로 효율에 맞춰진 언어 사용은 숨 가쁘게 돌아가는 병원의 일상에 익숙해진 탓이다.


반면 환자를 향한 말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 수술실에서 목격한 광경이다. 환부를 소독하고자 붕대를 풀자 환자의 신음 소리가 일순 커졌다. 그러자 의료진은 약속이나 한 듯이 저마다 무어라 소리치는 것이었다. 증폭된 감정이 배인, 힘을 돋우는 말이다. 이를테면 “OOO 환자 이제 다 끝났어요. 잘 참았어요.” 흥미로운 것은 환자의 신음소리가 현저히 사그라진다는 점이다. 물론 마취 상태의 환자는 수술실에서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콘퍼런스 말미 몇몇이 휴가 일정을 머쓱해하며 말하자 일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병원장도 웃어버린다. 늘 ‘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한 명이 쉬면 다른 이의 업무가 늘어난다. 몰려드는 환자와 모자란 일손에 휴가를 가는 사람만 마음이 무겁다. 정기 회진도 단촐하게 진행된다. 동행을 요구하자 난처함이 묻어난 대답이 돌아온다. “회진을 그렇게 거창하게 돌진 않습니다.” 실제로 이날 회진은 병원장과 간호사 두 명이 돌았다.


18개의 병상이 들어서있는 화상중환자실은 24시간 운영된다. 위중한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자연히 의료진들의 손도 빠르고 맵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과 트레이닝의 산물이다. 의료진의 수에 비해 환자들은 항상 많다. 화상 전문병원이 모자란 것도 한 원인이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화상 환자를 괴롭히는 무서운 착각

산업재해 피해자인 김성철(45·가명)씨가 화상중환자실에 실려 온지 수 일이 지났다. 인기척에 기겁하며 잠을 깨거나 고함을 지르는 일이 잦다. 의료진마저 그에게는 종종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통증이나 환부를 감싼 붕대의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다. 김씨는 사고 직후 까닭 없이 찾아오는 환영과 공포에 시달린다고 했다.


“화상환자들 중 상당수가 섬망을 겪어요. 섬망은 일종의 무서운 ‘착각’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ㅇ교수는 화상 환자들의 상당수가 사고 초기에 겪는다는 섬망이 환자뿐만 아니라 보호자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공포에 사로잡힌 환자들이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바라보는 가족들 역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는 것이다. “혹시 머리를 다쳤거나 정신을 놓아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겁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이런 증상은 호전됩니다.”


이명철(33·가명)씨는 사고 당시의 기억에 시달리고 있었다. ㅇ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화상환자들이 겪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충격적인 사고를 계속 재현해내거나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사고 후 보름이 지나도록 타는 냄새에 놀라서 깨는 경우가 관찰되곤 한다”고 설명했다.  


우울증도 심각하다. 병실 문을 닫는 소리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전선도 사고를 연상시키곤 한다. 그러다보니 극도로 예민해진다. 짜증이 늘어나고 벌컥 화를 내는 일도 잦다. 가족들도 지치기 시작한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의 시선은 환자를 더욱 고립시킨다.


몸 상태가 호전돼서 퇴원을 해도 우울증에 많이 시달려요. 화상환자들의 외모를 바라보는 시선에 선입견이 많습니다.” ㅇ교수가 말끝을 흐렸다. 녹음기의 붉은 색 레코드 버튼은 아직 눌려진 상태였다. 한 환자가 낸 신음소리가 함께 녹음됐음을 알아차린 건, 그러나 한참이 지나서였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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