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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02. 2019

눈물·피·땀 응급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울음소리가 요란했다. 돌을 갓 지난 아이 보다 응급실 침대가 넓어 휑해 보였다. 주사가 무서운 아이는 바늘이 닿기도 전에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간호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가며 주사를 놓았다. 정맥혈관은 요리조리 간호사를 따돌리지만, 무릎까지 꿇고 열중한 그의 손끝을 피해가진 못했다.


곁에 선 아빠는 버둥거리는 아이를 ‘포박’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주사를 밀쳐내는 아이의 팔을 너무 세게 잡자니 마음이 무겁고, 살살 붙들려니 주사가 잘못될까 걱정이었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달래느라 “우리 아가”를 연발했다. 한켠에선 연이은 응급환자로 동분서주하는 의료진의 땀 냄새도 훅 밀려왔다. 오후 6시 A병원 응급실의 ‘불금’ 풍경이었다.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지린내와 땀, 피비린내가 소독약이 뒤섞여 일순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응급실을 채운 고통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지만, 이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매일은 흡사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한다. 달달한 로맨스로 버무린 드라마 속 응급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현실 속 그것의 장르란 액션·하드코어 활극에 가까웠다. 지난밤 내가 머문 응급실은 한 명의 당직의와 전공의 2명, 인턴과 십여 명의 간호사, 응급구조사 2명으로 바삐 돌아갔다. 의료진의 고군분투는 주말 오후가 되면서 사투로 뒤바뀌었다.       


A씨의 비명소리가 멈출 줄 모른다. 환상 환자인 그는 처치실로 곧장 옮겨졌다. 소독과 드레싱이 시작되자 고통스런 절규가 응급실에 쩌렁쩌렁 울렸다. “아아아악! 아파요. 너무 따가워요!” “라면 국물에 데였고 손상 부위는….” 환자의 상태는 수시로 보고되었다. 환자 돌보랴 보고하랴 레지던트 1년차 ㅈ전공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응급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에도 그는 침착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키고 고통의 경감이 제때, 적절히 이뤄지려면 당황은 금물. 짧지 않은 응급실 생활 동안 ‘평정심 근육’이 제법 붙은 모양이었다.    


환자분 많이 아프죠?
이제 다 끝나가요. 조금만 참으세요


다정한 간호사의 목소리. 고작 말 몇 마디지만 효과는 꽤 크다. 비록 당장 환자의 고통을 일소시키진 못해도 심리적 안정에 적잖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만취 상태로 찾아와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은 이마저도 공연한 트집의 빌미로 삼곤 한다.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취객의 막말·욕설·폭행은 골칫거리


응급실이 빠르게 환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이고 옆구리야.”


“할머니 혈압 재는 거 금방 끝나요. 상처는 없는지 잠깐 볼게요.”


“여기가 아파요?”


“으으으억.”


“통증 심하시면 아픈 거 나아지는 주사 놔드려요?”


“아이고 나 죽네.”


성난 언어도 떠다녔다.


“이 개XX들아! 아파죽겠다고. 어떻게 좀 해봐!”


“환자분 정확히 어떻게 아픈지 설명을 해 주세요.”


“아프다고 씨X!”


막말과 욕설, 폭력은 의료진을 더욱 지치게 만든다. 수일 전에도 술에 취해 의료진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 일이 있었다. “취객 환자분이 가장 힘들어요. 피범벅이 된 상태로 실려 오는데 진정시키려면 한참이 걸리거든요. 치료 협조가 너무 어려워요.” 이 말을 하는 ㅎ당직의도 적잖이 ‘당한’ 눈치였다.


ㅂ보안원은 취객이 소란을 부릴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 “최근에 한 보호자가 술에 잔뜩 취해서 응급실에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거예요. 취객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서 입장을 막고 있거든요.” 주취자의 ‘방문’은 비단 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동은 어림잡아 일주일에 한번 꼴로 일어난다. 명색이 보안원이지만 역할은 제한적이다. 소동을 피우는 주취 폭력의 대응은 늘 조심스럽다. 제지하는 과정에서 자칫 폭행죄로 고소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거예요.
 취객들은 간호사를 더 얕잡아 보고 행패를 부리거든요  

 

“환자분이 소릴 지르고 욕을 하면 우리도 사람이라 스트레스를 받아요. 할 수 있는 최선의 치료를 하고 있거든요.” ㅅ간호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12년차 응급실 경험을 가진 베테랑 간호사이지만,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주먹질과 거친 욕설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스트레스도 많다. 환자들의 고통 섞인 신음의 잔향은 유독 강렬하다. 이는 비단 통증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응급실을 지키는 이들의 귀에도 자극적인 흔적을 남긴다. 스트레스의 강도가 심할 때면 ㅅ간호사는 운동으로, ㅇ간호사는 ‘혼술’로 푼다. 고강도 업무와 스트레스. 응급실이 지긋지긋할 법도 한데 응급실만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고 했다.


“응급실에선 환자의 상태가 눈에 띄게 진정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응급실만의 장점이죠.”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ㅎ당직의가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이제 슬슬 시작이에요. 불금이라 술도 많이 드실 테고.” 아닌 게 아니라 속속 구급차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한창 바쁠 때는 힘들다는 생각조차 못해요.” 지금은 비교적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하루를 꼬박 일하고 반나절 쉬고 다시 응급실로 직행하는 생활에 인이 박혔다. 밤샘 근무 후 찾아오는 불면증은 응급실 생활의 덤. 한밤 중 ‘급한 환자’에 대한 처치가 얼추 마무리되면 까닭 없이 우울해지기도 한다. “공연히 생각이 많아져서….” 그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이미 처치실은 아비규환이었다. 어린 환자들의 울음소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ㅇ간호사는 아이들을 다루는데 익숙해 보였다. “하나도 안 아프지? 잘 참고 대단하네.” 간호사의 칭찬에 아이가 눈물을 뚝 그친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는 겁을 집어먹고는 바싹 얼어있다. 까맣고 작은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 긴장감이 흘렀다. 중증구역에 의료진이 속속 모여들었다. 막이 쳐졌다. 환자의 심장박동이 지나치게 빨랐다. 병력이 있었다. 의료진은 심전도를 확인하며 약물을 투여했다. 다행히 환자는 점차 정상을 찾아갔다. 막이 걷혔다. 외줄위에 선 듯 매순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환자는 보호자의 부축을 받으며 응급실을 나섰다. 그는 가기 전 전공의에게 인사를 꾸벅했다.


이 시각 4개 병상을 제외하고 응급실은 환자들로 가득 찼다. 차트 작성을 얼추 마무리한 스텝 한 명이 안경을 벗는가 싶더니 책상에 고개를 박고 졸기 시작했다. 그는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이내 다른 이가 와서 차트를 찾고 전화를 받자 그제야 자리를 비켜준다. 어깨에 피곤이 잔뜩 눌어붙어 있었다. 응급실 시계는 이상하다. 빨리가기도 더디 가기도 한다. 환자가 ‘적당히’ 몰려들면 잘 가지만, 너무 바쁘면 오히려 느려진다. 누가 시계에 장난을 쳐둔건 아닐까.


“저는 이제 차트 마무리하고 갈 거예요.” 간호사의 말이 끝내기 무섭게 한 보호자가 그에게 말을 건넸다. “딸내미가 속이 안 좋다고 하는데 잠깐 와봐요.” 간호사가 달려갔다. 환자의 상태변화는 미세한 것이라 해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때때로 심각한 약물 부작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러 재미난 환자들도 응급실을 찾아온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 젊은 부부가 사내아이 둘을 데리고 응급실을 찾았다. “왼쪽 코에 비비탄이 들어갔어요. 이 사고뭉치들, 가만히 앉아있어.” 아빠의 말에 보호자 몇 명이 키득댔다. “비비탄이 들어갔대. 호호.” 의사는 앞니가 빠진 개구쟁이를 소처치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울음소리가 한번 들리는가 싶더니 ‘비비탄 제거’는 무사히 끝났다. 연신 웃음을 터뜨리는 아빠는 급기야 ‘인증샷’을 찍을 기세다. 아내는 철없는 남편이 얄밉다.  


자정이 지나자 ㅈ전공의도 근무를 마치고 돌아갔다. 응급실도 소강상태였다. 그러나 한편에선 걸쭉한 육두문자가 여전했다. “이놈들아, 나 잡아먹으려고 뭘 찍는다고 하냐? 나 죽는다. 아이고 나 죽어.” 엑스레이 촬영의 이유를 거듭 설명하는 의료진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난다. “환자분, 기본 검사라 찍어야 해요.” 이번엔 보호자가 앞을 가로막는다. “엑스레이다 CT다 찍고 검사한다고 하면 어쩌냐고. 찍기만 하면 다야? 그러면 돈 안 드는 걸 찍으라고.”


처치실에서 아까의 화상환자가 계속 비명을 질렀다.


“아아 씨X.”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면 더 아파요.”


“이름 말씀하세요. 주민등록번호도요.”


“몰라. 씨X.”


“환자분 이번에는 전화번호 불러보세요.”


의사는 환자의 정신을 차리게 하고자 연거푸 말을 걸었다. 대개 짜증이 뒤섞인 대꾸가 돌아오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아침이 올 때까지 수많은 환자들이 응급실의 문을 두드렸다. 다시 밤이 되면 이보다 몇 곱절 많은 환자가 다시 찾아올 것이다. 내가 하룻밤 머물렀던 응급센터의 풍경은 일 년 내내 비슷하게 반복된다. 매일의 풍경은 개별적이면서 보편적이다. 고통의 사연은 개인적이다. 환자를 감싼 붕대와 거기 묻은 피처럼 진한 삶의 흔적은 응급센터에 남는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흔적. 환자의 신음과 보호자의 눈물, 의료진의 다급한 손길이 뒤섞여 피와 땀으로 채워진 드라마는 매일 새롭게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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