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당뇨병 환자의 수는 5억37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중저소득국가에서 발병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오는 2045년까지 아프리카에서 환자가 134%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당뇨병 환자에게 필요한 인슐린은, 환자 절반만이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사노피 등이 유통되는 인슐린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있다.
인슐린 프리필드펜을 1달러에 제공하자
나는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인슐린 제조업체의 개발 비용을 고려하면 계산이 나오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슐린 프리필드펜 1달러 주장은 미국의사협회저널의 네트워크 오픈(JAMA Network Open) 데이터에서 나온 것이다. 저널은 인슐린 펜의 가격은 제조사의 이익을 포함하더라도 개당 약 0.94달러로 책정될 수 있다고 추계했다.
이런 계산을 하게 된 배경은 중·저소득 국가의 당뇨병 환자들이 인슐린펜 접근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전 세계 당뇨병 환자의 80%가 중·저소득 국가에 분포하고 있지만 인슐린 펜에 대한 접근성은 제한적이다. 높은 가격 때문이다. 현재 인슐린펜은 남아프리카에서 1.99달러에, 인도 5.77달러, 필리핀 14달러, 미국에서는 90.69달러에 판매되고 있다.
MSF와 T1인터내셔널(T1International)에 따르면, 당뇨병 환자의 82%가 주사로 투여하는 인슐린 바이알보다 인슐린펜을 선호한다. 투여 정확성·편의성·낙인 감소 때문이다. 때문에 인슐린펜은 세계보건기구(WHO) 필수 의약품 목록에 포함돼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당뇨병 및 비만 치료제 위고비를 프리필드펜 형태로 생산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흡사 광풍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위고비의 경우 전량 프리실드 펜으로 제작되고 있다. 수요 대비 물량, 특히 펜 생산에서 문제가 생기자, 회사는 기존 인슐린펜 생산을 줄이고 위고비에 집중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슐린펜 공급이 줄면 당뇨병 환자들이 기존 치료 방식을 조정하거나 주사기로 투여하는 바이알 형태의 인슐린을 사용해야 한다. 실제 남아프리카에서는 2014년 공공 부문에서 인슐린 펜을 도입했지만 노보 노디스크가 정부에 인슐린 펜 공급을 중단하면서 올해 초 인슐린 펜 사용을 제한했다.
이러한 제조사의 결정에 국경없는의사회(MSF)를 비롯한 국제구호단체들은 비판적인 움직임을 보여왔다. 인슐린 투여 방식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제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100년 전 인슐린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모든 당뇨병 환자들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단돈 1달러에 특허권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 인슐린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절반만이 인슐린에 접근할 수 있는 현실을 보면, 무엇인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죠. 40년 전 한 의사가 딸의 당뇨병 관리를 위해 개발한 인슐린 펜은 고소득 국가에서는 표준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중·저소득 국가에서는 거의 이용할 수 없습니다. 제조사들이 당뇨병 치료제 접근성에 이중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헬렌 바이그레이브 MSF 액세스 캠페인 비전염성질환 고문)
물론 바람처럼 제약기업들이 인슐린펜 가격을 1달러에 공급하기도, 공급을 늘리지도 않을 것이다. 인슐린펜 1달러 공급 주장은 그저 주장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MSF가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글로벌 인슐린 시장 구조 때문이다. 전 세계 당뇨병 시장은 사실상 일라이 릴리, 노보 노디스크, 사노피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결정은 인슐린 접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물론 기업이 최신 인슐린 제품의 가격을 올리거나 제품 생산 방식을 바꾸는 등의 결정은 자율적인 영업 사안이다. 제약기업의 제품은 의약품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다음 제품 개발을 물론, 생존이 가능하다.
여기서 NGO와의 시각 차이가 발생한다. 일례로 MSF는 이러한 가격 정책이 인도주의적 구호 현장과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서 인슐린 펜을 통한 실용적인 치료 접근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적 입장을 표출해 오고 있다. 제품을 만드는 기업의 결정, 그리고 그 제품이 환자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약품임을 고려할 때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하라는 가치의 충돌이 발생하는 셈이다.
인도주의와 제약산업 간의 간극,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