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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스토리

코로나19는 무섭지만 커피는 마시고 싶어


내가 만난 정신과 의사들은 커피를 줄이거나 끊으라고 말했다. 적은 양의 카페인은 기분을 좋게 하거나 기억력을 아주 조금 올려주는 등의 장점도 있지만, 많은 양의 카페인은 불안, 초조, 불면, 심박동수 증가, 손 떨림 등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이 어마무시하고, 길 어귀마다 자리한 카페의 수를 보자면 이런 우려가 기우는 아닐 터다. 그런데 커피를 파는 카페라는 공간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여러 의미를 가진다.


최근 흥미로운 논문 한편이 네이처에 실렸다. 미국의 과학자들이 휴대전화 정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빈번한 곳을 모델링했다. 연구에 따르면, 도시 내 레스토랑, 실내체육시설(헬스장 등), 카페, 호텔, 종교시설에서 다른 장소와는 현저히 많은 감염자가 발생했다. 연구는 쉬지 않고 바깥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저소득층일수록 감염 확률이 높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관련해 정부는 8일 0시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2.5단계로 격상하며 발표한 고위험시설들을 보면 위 논문에 포함된 곳들이 대부분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카페를 생각해본다.


고시촌에서 커피에 대한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서울대입구역 3번 출구 앞에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이들의 행렬이 길었다. 초록색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이윽고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붐볐던 버스를 내리자마자 커피콩 태우는 냄새가 났다. 인근에 카페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이들 중 한, 두 명이 냄새를 쫓아 들어갔다.


고시촌에 있는 커피들은 맛이 있다. 어떤 맛이냐, 싼 맛이다. 그까짓 원두의 질이나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주머니가 가벼운 수험생이나 거주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싸면서 적당히 따뜻한 커피물이면 그만이다. 그곳을 찾는 이들은 대개 답답한 고시원이 싫거나 공부를 할 공간이 필요해서, 아니면 카페인 자체가 필요해서다.


“커피가 타 음료와 다른 점은 사색의 문을 연다는 데 있다. 자신과 마주할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하는 이들은 이 잠깐 동안 상념에 빠진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커피에 실어 목 뒤로 억지로 삼키는 모습은 애처롭다. 누구에게도 결코 방해받고 싶지 않는 순간. 카페는 늘 그런 이들로 가득하다.”


과거 썼던 기사 중 일부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팍팍한 그들의 신세를 있는 그대로 쓰고 싶지 않아 낭만으로 얼추 버무려버렸던 게다. 실제는 다음에 더 가깝다.


“(고시촌) 녹두거리에는 술집이 많다. 노래방과 PC방도 많다. 1만원이면 술과 안주를 해결할 수 있다. 1만원만 더 있으면 게임이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현재의 고달픔과 내일의 불안, 그리고 외로움을 잠깐의 위로로 달래려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술이나 게임, 노래가 싫은 사람들은 1000원을 들고 카페로 가면된다. 탄 맛이 나는 아메리카 한 잔이면 카페에서 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녹두거리에는 카페도 많다.” -녹두거리 잔혹사 중에서


비정한 이야기를 해본다. 치킨과 더불어 커피는 서민 자영업자들의 마지막 동아줄과 다름없었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19 이전부터 난립한 카페 경쟁으로 전국의 숱한 ‘카페 사장님들’은 이미 위기 상황에 내몰려 있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도심 곳곳의 카페는 더 빨리, 더 많이 문을 닫고 있다. 커피를 사 가는 것만 허용한 정부의 방역지침이 초래한 매출 하락.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딱히 하소연할 길도 없다. 손님과 상인이 떠나 빈 점포, 임대인을 모집한다는 종이 한 장 덜렁. 서늘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 도시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하루에만 수백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곳은 비단 카페만이 아닐 터다. 소규모 자영업에 의탁해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이며, 직원들은 어디로 갈 것이고, 이들의 삶은 얼마나 더 팍팍해질까.


감염병이 무서운 이유는 그 사회의 가장 하층부부터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로나19의 미칠 듯한 화염에 휩싸인 지금 카페 사장님들이나, 알바생, 그리고 잠시 숨을 쉴 공간이 필요했던 공시생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우리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커피 한잔 마실 공간조차 빼앗아버린 코로나19가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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