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승무원 취업 설명회가 있었나 보다.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두 명의 여자가 다가오더니 나에게 승무원 취업 설명회가 있으니 참석해 보지 않겠냐고 팸플릿을 나눠주었다. 친구랑 승무원 관련 대화를 나누면서도 ‘승무원도 취업 설명회가 있구나.’ 정도였지, 큰 흥미는 생기지 않았다.
얼마 전, 학교 앞에서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아 호기심에 몇 개월 모델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던 나는 모델 제의받았던 곳이 조금 이상해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이기도 해 의심도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JMS 기독교복음선교회 소속 모델단체였다.
전공이 음악이어서 음악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이유가 있기도 했고, 다른 직업을 가지기 위해 공부하는 데에 돈을 써야 할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토익을 공부해야 한다는데 음악을 전공한 내가 토익을 공부해 봤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어떨까? 하는 정도의 관심 정도였다.
4년 후, 26살 피아노 강사와 바텐더로 하루 두 가지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150만 원 정도 되는 아르바이트비를 받으며 일하고 있던 때이다. 당시 강사로 있던 교습소 원장님의 임신으로 교습소를 그만할 예정이라며 장 선생이 인수한다면 권리금 포함 2800만 원에 해 주겠다는데 그 돈이 있을 리가.
그러다 친하게 지내던 같은 대학 동기 2명이 승무원이 됐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가슴에 불이 났던 듯하다.
그렇게 토익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은 적극 지지해 주었다.
새벽부터 학원에 가서 공부하다가 피아노학원에서 3시간 강사 아르바이트를 다시 구해 일하고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문 닫을 때까지 공부했다. 그리고 주말에는 외항사 승무원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스터디를 진행했고 후에 영어학원의 스피킹 수업 2개를 더 듣고 그리고는 또 공부했다.
40만 원의 월급으로 영어 개인 과외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어 학원비와 토익 시험비는 당시 80만 원을 받던 남자친구가 도왔다. 그러다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27살, 적금 넣어 모아둔 돈을 털어 떠났다.
돌아와서는 영어학원에 취직하고 승무원학원에 다니며 시험을 쳤다. 승무원이 된다면 당시 ‘1등 항공사’라는 아랍에미리트 승무원이고 싶었다. 그러나 오픈데이는 일 년에 1~2번이 고작이었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때의 토익점수는 780점..
나이는 많았지만, 스피킹의 능력은 예상 질문 외 돌발 질문에는 간신히 대답할 수 있는 정도이니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29살에 한국에 오픈 데이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호주로의 워킹을 선택했다.
2번의 낙방 후이다.
호주의 마이어 백화점에서 선글라스 판매 세일즈를 하며 돈을 벌고 공부를 하면서 자신감이 붙어 오픈 데이에 지원, 영어권 지원자들 사이에서 스크리닝 하며 토론하는 중 버벅대는 나 자신의 한심함에 3번째 좌절을 겪고 나서 승무원 되기를 포기했다.
4년 동안 이를 갈았었다.
학교 다니면서도 한번 해보지 않은 과외비와 학원비에 나의 월급이 거의 소비되었다.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던 미드와 영드를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스크립트해가며 외우고 팟캐스트와 영어 신문을 40분 거리의 영어학원을 왕복할 때마다 버스 안에서 듣고 읽었다.
호주에서는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각 나라의 친구들이 많이 모여있는 홈셰어를, 일자리는 무조건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에서만 할 거라고 이력서를 40군데 이상 돌렸다.
나에게는 삼세번이 원칙이었다. 그전까지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이 닿지 않을 때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에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할 때까지 도전한다는 글이, 3번의 낙방은 하늘이 무너지는 뼈아프고 부끄러운 좌절의 경험이라는 생각에서 나를 건져내어 주었다.
지금 나는 학원에서 특강으로 ‘영어로 놀자’라는 커리큘럼을 매 해 3개월씩 진행하고 있다.
당시 온 힘을 다해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던 나는 승무원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로 인해 지금 나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는 ‘영어’를 얻었다. 국적이 다른 사람들과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지금 나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감을 준다.
전공이 아니어도 잘 다룰 줄 아는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나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