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는 태권도를 나는 음악을 해서 같은 건물의 사범님과 강사로 인사를 하다가 태권도장과 음악학원을 같이 다니던 한 아이로 인해 말문을 텄다.
그러다 내 생일이 되던 날 밤, 12시에 맞춰 보내온 생일 축하 문자를 시작으로 사귀게 되었다.
서로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십 대를 편모, 편부의 가정에서 자랐고, 그의 아버지도 다리가 불편하셨고, 초등 2학년 때 가장 마음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며,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체육관에서 숙식을 제공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상황적으로 비슷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면 누구 이야기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공감과 이해가 많이 되었고 깊게 말하지 않아도 나의 아픔과 슬픔을 먼저 알아채 줬다.
내가 전화하면 나에게 통화를 걸고 있어 서로 신기해하기가 일쑤였다.
1여 년. 사계절을 보내기 전에 서로의 가족들에게 인사드리고 25살이 지나고도 밤 11시만 넘게 되면 집에 언제 들어오냐는 엄마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되는 확실한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집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되는 거리의 대학로 횟집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 11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 되자 내가 화장실을 간 사이 동생에게 전화로 누나가 술을 마셨으니 데리러 오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동생한테 전화했다는 말에 그때부터 말다툼이 시작되었다.
나는 아파도 아프다는 말도 잘 못하는 가정에서 자랐는데 술을 많이 마셨고 혼자 돌아가는 게 위험하니 동생이 데리러 오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모습에 경악했다.
‘나 때문에 동생이 나를 나르려 40분 거리를 왕복해야 한다고?’
내 앞가림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다고, 네가 뭔데 내 동생한테 피해를 주냐고 거리에서 목청껏 소리쳐 댔다.
그러다 몸싸움까지 일어났고 경찰이 왔다.
그 근처 고시원에서 시끄럽다고 신고를 한 것이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할 만큼 우리에게 부끄러운 큰 사건이 되었다.
4남매의 14, 12, 10살 터울의 막내로 태어난 남자 친구와 가족들은 남자 친구가 초등 2학년 때 뇌졸중으로 쓰러져 누워계셨던 어머니를 10여 년간 간병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가정형편이 많이 어려워졌으나 어머니를 기점으로 형제들의 우애는 깊어졌다.
막내였으니 형제들의 애틋함에서 오는 관심과 사랑이 어땠을지 짐작할만했다.
함께 있다가도 공항으로 데리러 와라는 형의 한마디에 군 마디 없이 알았다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서운함을 느꼈다.
너무 다른 가족에 대한 이해관계 속에 속하고 싶으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남편이 된 그 남자 친구는 태권도장을 운영한다.
애정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그런지 사랑을 주는 데에 인색함이 없다. 사랑은 많이 받았지만 환경 측면으로 좋지 못했던 그는, 마음이든 환경이든 아픈 사람의 이야기에 더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며 눈물 흘릴 줄 아는 매사에 감사하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할 줄 아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내가 그의 가족이 된 순간부터 나는 남들이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전생에 나라를 세 번 구한 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