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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un 14. 2024

책과 도넛

행복의 재료

아이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던 날, 집에 돌아와서 내가 가진 책 중 가장 두꺼운 책을 골라 집 앞 카페로 달려갔다. 첫 주는 적응기이기 때문에 2시간 후에 데리러 가야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군인처럼 일분일초를 아끼려 카페까지 뛰어갔다. 모비딕을 펼치고 두 장쯤 읽었는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얼마 만에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한 문장 한 문장을 읽는 건지, 육아서를 허겁지겁 읽어대던 때와 달리 모든 단어가 맛있었다.

 

작년 12월, 10킬로그램을 감량하고 바디프로필을 찍었다. 마지막 한 달은 거의 굶다시피 해서 사람들과 눈만 마주치면 배고프다고 징징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촬영 당일 도넛을 손에 쥐었다. 진실의 미간을 찌푸리며 입에 도넛을 넣고 오랜만에 해맑게 웃었다. 촬영을 마치고 유명한 도넛집에 가서 두 상자를 더 샀다. 아이들과 크림이 잔뜩 들어간 도넛을 먹자 행복하다는 말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이번 주말에는 유칼립투스를 배불리 먹고 풀숲에서 책을 읽다 잠이든 아기 코알라처럼 낮잠을 자야겠다. 크림 도넛으로 윤기가 흐르는 배를 통통 두들기며 소파에 누워 책을 읽어야지. 그러다 한 손에서 읽다 만 책을 힘없이 툭 떨어뜨리고 그대로 잠이 들어야지. 꿈속에서 벽돌색 책방에 들어가 책을 더 사고 바로 옆집 초록 도넛집에 가서 크림이 들어간 도넛 두어 상자를 더 주문해야지. 거실 소파 옆을 지나가던 가족들이 자다가 웃는 내 모습을 보며  같이 웃겠지.



작품 <Small Satisfaction> 릴리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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