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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Feb 17. 2024

임종을 기다리는 시간

임마누엘


2월 9일



하루 사이에 엄마가 많이 안 좋아졌다. 눈도 못 뜨고 식사를 거의 못하신다.



이곳에서는 식사를 못하시고 수액으로 영양을 채우기 시작하면 곧 돌아가실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 되기에 나는 한 숟갈이라도 더 먹여보려 애를 쓴다.







엄마에게 섬망 증세가 보인다. 주무실 때 기운 없이 입을 벌리고 주무시고, 혼자 중얼중얼 누군가와 대화를 한다.



잠깐 정신이 드실 때 대화를 나눴는데 눈만 뜨면 신문이 보여서 하루 종일 신문을 읽었단다.



"엄마, 숫자 여섯 개는 안 보였어? 다음에 숫자 6개 보이면 적어놔 알았지?"



건강하실 때 평소에 주고받던 농담을 하니 엄마가 알아듣고 씩 웃는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든다.



다시 중얼중얼 내 이름도 들리고, 손자 손녀사위의 이름도 간간이 들린다. 그러더니 '대박이지?' 하고 혼자 웃는다. 엄마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다행히 엄마에게 보이는 기억은 우리들과 행복했던 기억이 아닐까 하며 혼자 안심해 본다.





2월 10일 



병실에 도착하니 엄마가 입을 벌리고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아침 식사는 거의 못 드셨고 나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고 한다.



아침 내내 주무시던 엄마는 나를 보고 힘을 내서 잠깐 앉아 집에서 싸간 떡국을 열심히 드신다. 그리고 다시 누웠는데 너무 힘들다고 숨이 차다는 말을 반복한다.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자 투석을 제대로 못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폐에 암이 퍼져 숨쉬기 힘든 증상이 더 심해질 테니, 마음의 준비를 조금 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되돌아온다.



엄마의 폐에 연결된 관에서 물보다 피가 더 많이 섞여 나오는 걸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며칠간 총명했던 엄마의 모습에 기대를 품었나 보다.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그 말씀이 청천벽력처럼 느껴진다..



누워있는 엄마의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엄마에게 말해본다. 지금 아니면 혹시나 못 전할 것 같아서.



"엄마, 엄마 천사 같다. 엄마는 너무 착해서 천국 갈 거야. 엄마 진짜 고마워. 사랑해."



엄마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자꾸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더니 "교회 다녀야 천국 가는데. 너 교회 다녀야 천국 가서 만나는데' 하며 걱정하신다.



교회는 가지 않겠지만 알겠다고 교회 가겠다고 천국에서 다 만나자고 하니 그제야 웃으며 긴 숨을 내쉰다. 엄마가 마지막 순간까지 기분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2월 11일



엄마 병원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호스피스 병동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컨디션이 안 좋으시니 평소보다 조금 서둘러 왔으면 했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서둘러 병원에 갔다.



도착하자마자 간호사 분이 엄마의 발을 보여주며 청색증이 나타났다고, 곧 임종실로 가야 할 수도 있으니 가족을 부르라고 하셨다.



아들과 목욕탕에 가기로 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목욕탕이 아닌 병원으로 와야 할 것 같다고 알렸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전시회에 간 딸에게도 전화를 해서 할머니를 보러 오라고 말했다.



남편과 아들이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를 임종실로 옮겼다. 딸도 도착했다. 우리는 갑자기 복받치는 설움을 삼키며 엄마의 귀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말 안 해도 알겠지 했던 이야기를 모두 쏟아냈다.



"엄마, 나 키워줘서 고마워, 고생했어. 너무 아파서 힘들었지. 하늘나라 가면 아빠랑 정화랑 제부랑 조카들이랑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 나는 나중에 갈게."



"어머니, 저 사위예요. 사랑해요. 그동안 어머니 덕분에 즐겁게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할머니, 저 찬희예요. 저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저 혼자 있을 때 놀아주셔서 감사해요. 맛있는 거 많이 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중학생 될 때 하늘나라에서 지켜봐 주세요."



"할머니, 저 준희예요...."



딸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투석을 하고 오는 길에 어린이집에서 하원시켜서 매일 놀이터에 함께 가준 할머니. 투석한 아픈 팔로 매일 5살 손녀의 그네를 밀어주던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울기만 했다. 




엄마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한 번씩 눈에 힘을 주어 떴지만 초점은 아이들을 향하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계속 눈을 떠보며 아이들을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엄마의 호흡은 계속 힘겨웠다. 숨을 쉴 때마다 고개를 함께 움직였다. 입은 다물어지지 않아 바짝 말라버려 손수건에 물을 적셔 한 번씩 닦아 주었다. 



고마웠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아빠와 동생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정신이 또렷할 때 그 말을 했던 것이 그나마 너무 위안이 되고 감사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말에 한 마디라도 더 해본다.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 열 번에 한두 번 엄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말한다...




엄마, 내 걱정하지 말고 행복한 꿈 꿔. 더 이상 아프지 말고. 하늘나라 가는 길에 내 목소리 들으면서 가, 외롭지 않게. 내가 계속 목소리 들려줄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임마누엘 방에서


엄마 손을 잡고


엄마를 보낼 준비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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