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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Feb 17. 2024

창가 자리

가고 싶지 않았던


2월 4일 일요일 오전




처음 엄마에게 유방암이 발견되고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 항암을 하러 입원하기 전 늘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음식을 먹곤 했다.



우리는 그 루틴을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였다.



엄마는 요새 누워서 중얼중얼, 드시고 싶은 음식을 읊으셨다.



그 음식들은 주로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 프로젝트' 때 먹었던 것들이었다.







산본 어느 시장의 염소탕, 관악산 등산로 파전집의 도토리묵과 해물파전, 범계역 반찬가게의 게장, 중앙시장의 빈대떡, 병원 앞 명륜 진사 갈비, 한살림에서 파는 꿀떡과 바람떡, 내가 취나물인 줄 알고 잘못 사 왔지만 맛있게 드셨던 공심채까지...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엄마가 드시고 싶은 음식에는 모두 나와의 추억이 들어 있었다.



엄마는 어쩌면 음식보다 나와의 추억을 다시 드시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2월 4일 일요일 오후



딸이 할머니를 보러 병원에 왔다. 



"할머니..." 



곧 고등학생이 되는 딸이 수줍게 할머니를 부르며 할머니 손을 잡았다.



"우리 주니, 할머니 덕분에 이런 요양병원도 와보네, 그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표현에 서툰 손녀딸은 오늘만큼은 할머니에게 열심히 애정을 드러냈다. 다리를 주물러드리며 할머니 말에 귀를 기울이고 시종일관 웃으며 대답했다.







"할머니가 너 결혼식 보고 싶었는데 못 볼 거 같아 어쩌지?"



"어, 할머니, 괜찮아. 나 어차피 비혼주의야."



철없는 손녀딸의 농담에 엄마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에 항상 두는 가방 안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잔뜩 꺼냈다. 



"할머니가 고등학교 선물 사줘야 하는데, 필요한 거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 알았지? 너 나이키 운동화는 있어? 그거 비싸다매, 그거 하나사."



폐에 자꾸 물이 차서 관을 두 개나 박고 가슴엔 수액줄을 주렁주렁 달고서, 엄마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돈을 셌다. 그러다 기침이 나는 바람에 다시 누워 나에게 마저 세 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아마 대화를 하기 어려워질 때까지, 의식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집에서 우리가 뭐 하고 있을지, 오늘은 무슨 날인지, 식구 중 누구에게 뭐가 필요할지 생각하고 계실 테지.







2월 5일 월요일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다.



전날인 일요일, 내가 종일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 장모님 생일상을 준비해 주었다. 



아침에 나는 그저 남편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통에 담아 가져오기만 했는데 엄마와 함께 맛을 보니 얼마나 정성을 다했을지 짐작이 갔다.



미역국도 소불고기도 살살 씹어도 소화가 될 만큼 부드러웠다. 나중에 들으니 미역국도 하루종일 끓이고 소고기는 살 때 최대한 얇게 잘라달라고 부탁했단다. 엄마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위표 잡채도 빼놓지 않았다. 



부추 대신 엄마가 좋아하는 콩나물을 넣어 아삭하게 요리했다. 엄마는 간이 딱 맞는다며 정말 맛있게 드셨다.







"엄마, 생일 축하해! 한마디 해주세요~"



생일 케이크에 초를 꽂고 옆자리 환자분들께 방해가 되지 않게 작은 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나서 엄마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냥, 본능적으로 영상을 간직하고 싶었다. 혹여나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꺼내 볼 수 있는 영상.



"응, 잘 살았네. 70년 넘게. 너한테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너한테 맘에 없는 소리도 괜히 한 적도 많았고. 너 같은 딸 10명도 키워도 하나도 안 힘들지. 착하고 예쁘고.  주니가 너한테 그렇게 잘하면 좋겠는데.. 잘할 거야. 인성이 좋으니까... 인성 좋은 사람은 잘 되더라. 잘 클 거야. 주니도. 차니도 너무 착하게 잘 키웠고. 고마워."



둘째 딸을 먼저 보내고도 큰 딸을 위해 하루라도 더 생을 붙잡고 견뎌준 것 같아 너무 고마운 엄마. 맘에 없는 소리는 내가 더 많이 했다. 내가 더 미안한데. 엄마도 딸도 항상 서로 미안하다. 



"엄마, 나 이렇게 예쁘게 낳아주고 똑똑하게 키워줘서 고마워. 맛있는 거 많이 해줘서 고마워. 재밌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줘서 고마워. 미안해하지 마. 사랑해."



엄마는 더 이상 내 앞에서 울지 않는다. 



눈물 콧물을 휴지로 닦는 나를 다만 똑바로 보진 못하고 그냥 아래를 보며 가볍게 웃는다. 그 모습이 나에게 평안을 준다. 그래서 엄마가 엄마인가 보다.





2월 6일 화요일 



엄마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옆자리 환자분이 나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뭐가 필요한 게 있으신가 싶어 얼른 달려갔다.



"저기... 내가 암 말기 환자예요... 너무 아파서 예민해... 그런데 엄마가 아침 내내 누구랑 통화해서 너무 시끄러웠어... 그리고... 신장투석하시죠? 침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너무 신경 쓰여... 침대 자리 좀 저~ 쪽으로 바꾸면 안 돼요? 좀 그렇게 해줘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어딘지 기분이 상했다. '우리 엄마도 암 말기 환자인데요, 통화는 10분도 안 하셨다는데요, 신장 투석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라고 했다. 그리고 상황 봐서 이동하겠노라고, 통화는 자제하겠다고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자리로 돌아왔는데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서 가족실에 가서 커피를 한잔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픈 분이니까, 생의 마지막이라도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 이기적이기로 용기 내신 것일 테니까. 그래,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화가 금세 누그러들었다. 




2월 7일 수요일



병실에 도착했는데 옆자리 아주머니 침대가 없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분들을 위한 병실(임종실)이 따로 있었는데, 역시나 그 병실에 가보니 그 방문에 아주머니 이름이 있었다.



아... 어제 그분 마음 상하게 그분 앞에서 투덜대지 않기를 잘했다...



엄마는 그분이 1인실로 옮겨 창가 자리가 났다며 저쪽으로 옮기면 좋겠다고 반겼지만 차마 임종실로 가셨다고 알려드릴 수 없었다. 



창가 자리가 난다는 건, 먼저 계셨던 분이 곧 하늘나라로 가신다는 거고 그 자리로 엄마가 옮긴다는 건 엄마가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다음 날, 임종실 방문에 있던 아주머니 이름이 사라졌고, 간호사님이 엄마에게 창가 자리로 옮겨도 된다고 하셨다.



창밖에 눈발이 날렸다. 



눈송이만큼 가벼이 한 영혼이 흩날리며 하얗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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