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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Feb 03. 2024

희극과 비극의 줄타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그렇지


2월 1일 수요일 오후




오전에 강의가 있어서 엄마와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병원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올라오는데 복도에서 기타 소리가 들렸다. 








병실에 들어오니 교회 자원봉사자분이 치는 기타 소리에 맞춰 엄마가 눈을 감은 채로 찬송가를 부르고 계셨다. 너무 평화로운 표정이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자원봉사자 분과 조용히 눈인사를 하고 잠시 밖에서 기다렸다.








나는 동생이 죽은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하나님 이름만 들어도 짜증이 났고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말엔 화가 났다. 나에겐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하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그냥 내가 지키고 버티며 살기로 했다.




그러니 찬송가 소리도 기도 소리도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를 위한 연극쯤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교회에서 나오신 목사님이 엄마의 오른손을 잡고 기도해 주기 시작했다. 나도 엄마의 왼손을 잡고 함께 '아멘'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더 큰 소리로 아멘!이라고 외치며 목사님께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럼 되었다. 나도 그분들께 감사했다.





2월 1일 목요일 저녁




엄마가 내내 주무시다가 갑자기 눈을 뜨시더니 앞에 자꾸 누가 있다고 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면 사라지기는 하는데 누군지 모르겠다고 무섭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가방에서 통장을 꺼내 1층에 있는 은행 기계에서 통장 정리를 해오라고 하셨다. 이번 달에 노령연금과 장애 연금이 잘 들어왔는지, 1만 원이 오른다고 했는데 정말 올랐는지 확인해야겠단다. 여기 병원비는 얼마냐며 엄마 통장에 매달 들어오는 비용보다 많이 비싸지 않냐며 걱정을 했다.




엄마는 늘 시장에 다녀오면 종이와 연필을 꺼내고 십 원 단위까지 계산을 하곤 했다. 늘 다 맞아떨어졌지만 앉아서 한참을 계산하고 500원이라도 모자라면 어디서 빠뜨렸는지 나에게 대신 계산 좀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 대화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늘 '아 엄마! 쫌! 그런 건 그냥 넘겨. 뭘 그런 거 가지고 시간을 낭비하고 그래. 어딘가 썼겠지 뭐." 하고 핀잔을 주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알겠다며 군말 없이 웃으며 통장정리 심부름을 갔다.








복도에서 통장을 꺼내는데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동생의 주민등록증이었다. 엄마 지갑에 들어있는 동생의 명함 사진은 본 적이 있는데 이건 처음 보았다. 동생이 결혼 전, 아주 젊었을 때 모습이다.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었을 때가 30살이었는데 이 사진은 20살쯤 되어 보였다. 사진을 보면 너무 보고 싶어 져서 아예 동생 사진을 안 본 지가 꽤 되어 정말 오랜만에 동생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예전만큼 슬프거나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엄마를 챙기는 슬픔이 동생을 향한 그리움을 이겨버렸다. 지금은 엄마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두려움에 모든 슬픔이 수렴되었다. 큰 고통은 작은 고통들을 흡수해 버린다.






2월 2일 금요일




월수금은 엄마가 신장 투석을 하는 날이다. 어느새 신장 투석을 한 지 20년, 신장 기능이 아예 상실된 엄마는 소변을 보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다. 




혈관에 투석기계를 연결하면 신장의 기능을 대신해 준다. 엄마 몸의 피를 모두 받아 소변을 대신 걸러주고 다시 엄마 몸에 깨끗한 피를 넣어준다. 이 과정 자체가 몸에 끼치는 피로도가 상당하기 때문에 혈압이 떨어지거나 복통과 두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3시간 30분에서 4시간을 하는데 최근 2주 동안 엄마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온몸에 통증을 호소해서 3시간도 채우지 못했다. 투석이 원활히 되지 않으니 손과 발이 퉁퉁 붓고 폐에 물이 찼다. 




(신장투석을 하는 환자의 경우 수분을 제때 빼지 못하면 내장기관에 물이 차는데 특히 폐에 물이 차면 호흡이 어려워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호스피스로 옮기고 수요일에 진행한 첫 투석은 다행히 문제없이 지나갔다. 하지만 금요일엔 결국 다 하지 못하고 중간에 멈췄다. 컨디션이 내내 좋지 않은 엄마는 종일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인 채 침대 난간에 기대 주무셨다. 




엄마 옆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주치의 선생님이 엄마가 깨지 않게 조용히 나를 손짓으로 부르셨다.




"엄마가 아무래도 폐와 뇌에 암이 많이 전이되었고, 폐에 계속 물도 차서 관으로 빼내고 있는데 점점 피가 많이 섞여 나오고 있어요. 투석하실 때 점점 더 혈압이 많이 떨어지실 수 있는데 투석 환자는 그게 가장 위험하고 또 그렇게 돌아가시는 경우가 꽤 있어요..."




알지만 들을 때마다 심장이 쿵 떨어졌다. 선생님은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그 말을 전하며 괜히 미안해했다.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엄마에게 돌아왔는데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불안하게 침대 난간에 기대 있는 모습들 보니 코끝이 아렸다.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 코를 푸는데 엄마가 눈을 감은 채로 웅얼거렸다.



"야, 휴지 아껴 써. 코 푸는데 몇 칸을 쓰는 거야. 한 칸만 써."



엄마의 잔소리는 육감이고 본능인가. 엄마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다. 








2월 3일 토요일




호스피스 가족실 원두커피는 무료인 데다가 맛이 꽤 좋다. 덕분에 간병인 삶의 질이 조금 올라간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가족실에 있는 다른 가족들의 대화가 들렸다. 북적북적 젊은 부부와 아이 둘, 그리고 친척으로 보이는 어른 몇 명이 어머님의 영정사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님 사진을 보다가 울음이 터진 가족들로 가족실은 잠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러다 딸로 보이는 분이 '이 사진 어떠냐'라며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가족들이 각자 다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이래서 싫고 저 사진은 저래서 안되고 모두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고르느라 투닥투닥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왠지 그런 가족의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인생은 언제나 희극과 비극의 줄타기이다. 




슬퍼만 하기엔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이토록 해결해야 할 일이 많기도 하다. 나의 슬픔도 아마 이렇게 바쁘게 희극과 비극을 오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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