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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an 31. 2024

무거운 이야기 가볍게 전하기

어떻게 말해야 할까


1월 20일 토요일 오전




저 멀리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간병사분과 함께 나오고 있었다. 아들이 외할머니를 향해 달려가서 할머니를 얼른 끌어안았다.



"할머니~~~~"









오랜만에 엄마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엄마는 간밤에 밤새 배앓이를 한 이야기, 변이 잘 나오지 않아 관장을 한 이야기를 모험담처럼 열심히 들려주었다. 



그래도 이제 좀 나아져 이렇게 휠체어에도 앉고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재활도 해서 얼른 걸어야겠다고 했다.



엄마의 희망이 사그라들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1월 22일 월요일




엄마 간병에 빌런이 나타났다.



엄마 간병사분은 차분하고 다정하게 엄마를 잘 챙겨주셨다. 그런데 병실 옆자리에 앉은 간병사분이 어쭙잖게 자꾸 우리 엄마 간병사분께 이간질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엄마가 힘들어서 눈을 감고 있는데 주무신다고 생각했는지 자꾸 엄마 담당 간병사분께


"하루에 얼마 받아요? 에? 더 받아야지! 기저귀도 차시는데. 누가 그 돈 받고 해요?"


라며 돈을 더 받으라고 부추겼단다. 그래봤자 하루에 만 원차이이다.



엄마는 차마 간병사분께는 말하지 못하고 나에게 조용히 그 이야기를 전하며 혹시나 돈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겠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히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빌런이여, 제발 조용히 커튼 뒤로 사라져 주시길.









1월 24일 수요일




엄마가 또 며칠 식사를 드시지 못했다. 투석실에 가서 잠깐 얼굴을 보는데 얼굴이 회색빛이다.



엄마에게 담당 주치의 선생님과 통화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이제 항암치료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리고 어쩌면,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엄마는 말없이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말을 꺼냈다.



"나 병원 앞에 있는 명륜 진사 갈비 먹고 싶은데, 가서 너도 먹고 구운 거 좀 갖다 줄 수 있어?"









1월 25일 목요일




오전 11:30, 갈빗집이 문을 열자마자 들어갔다. 뷔페식으로 먹을 수 있는 갈빗집에 가서 2인분을 주문했다. 



직원분이 커다란 반찬통 하나를 주며 잘 담아 가라고 하셨다. 주방에서 쓰는 통이니 나중에 갖다 달라고.







사실 전날 밤에 갈빗집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가 병원에 계셔서 2인분을 주문하고 모두 구워서 바로 가져가고 싶다고. 



사장님은 원래 포장은 안되지만 기꺼이 해주겠노라고 하셨고 반찬통까지 챙겨주셨다. 상추도 더 싸가라며 봉지를 갖다주셨다. 



이게 뭐라고, 괜히 눈물이 났다. 



큰 일 앞에서는 눈물이 잘 참아지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작은 친절함엔 지고 만다. 여지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쑥스러워서 얼른 눈물을 닦고 열심히 갈비를 구웠다. 부지런히 굽고 잘라서 통에 담아 나가는데 직원분이 구우면서 좀 드시지 왜 하나도 안 드시냐고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도 참 다정하고 고마웠다. 엄마에게 고기를 갖다 드리고 통을 깨끗이 씻어 작은 비타민 음료 하나를 넣어 돌려드렸다. 









1월 26일 금요일



엄마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안색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투석을 시작하고 1시간 정도 지나자 금세 머리와 배가 아프다며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손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얼른 주물러드렸다.



엄마의 손과 발을 만지작거리며 엄마 눈치를 살폈다. 오늘은 엄마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 호스피스로 병원을 옮기는 것이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전날 밤 내내 잠을 설쳤다. 엄마 생각을 하다가 지난 세월 엄마에게 쌀쌀맞게 굴었던 행동이 생각나 괴로움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다 다시 정신을 붙잡고 할 일을 생각했다. 



엄마에게 말을 전해야 한다. 이젠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야 한다고.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엄마와 나는 방안에 아빠와 함께 있었다. 아빠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느려지기 시작했을 때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무거운 이야기를 전했다.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아. 너를 기다리나 봐. 오늘만 일찍 퇴근할 수 있어?"



아빠는 동생이 오고 한 시간쯤 지나서 마지막 호흡을 마셨다가 더 이상 내뱉지 못하고 숨을 멈췄다.




동생이 죽던 날,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수화기로 전해 듣고 엄마 집으로 갔다. 


아침 7시, 엄마는 딸과 사위가 들어오는 표정만 보고도 너무 놀라 무슨 일이냐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나는 또다시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남편이 아닌 내가 직접 전해야 할 이야기였다.



"엄마, 정화가... 죽었대. 다 죽었대. 제부도 아이들도."





그리고 오늘 나는 또다시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야 했다. 


무거운 이야기일수록 가볍게 전하기로 한다.



"엄마, 선생님이 이제 항암 안 하니까 여기서 더 고생할 필요 없대. 진통제도 좀 자유롭게 쓰고 환경도 좋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자. 거기 가면 내가 엄마 보러 매일 갈 수 있잖아. 나 거기로 매일 출근해서 노트북 켜고 엄마 옆에서 일할 게. 좋지?"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것저것 물었다.


"거기 병실 몇 개야? 투석실 좋아?"


병실 상황을 대략 설명해 드리니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러고는 엄마답게 씩씩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야, 요즘은 늙어서 죽는 사람보다 암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대. 엄마가 정상인 거지?"


우리는 또 그렇게 마주 보며 웃었다.





잠깐 바람을 쐬러 병원 앞을 걸었다. 병원에 있는 많은 환자와 가족들의 사투를 아는지 모르는지 햇빛은 너무도 따스했다. 나도 잠시 마음이 노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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