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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an 13. 2024

불행해하지 않기로 선택

친정엄마 간병일기 2024.1.13


정은아, 잘 있어, 사랑해.



12월 27일 수요일,


엄마가 항암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오랫동안 신장투석을 한 탓에 안 그래도 체력이 약한 엄마는 최근 부쩍 기력이 쇠해졌다. 연락하고 지내는 일가친척도 없고 자식이라고는 나 하나뿐인데 나도 일을 하고 있으니 여느 때처럼 간호사가 병실 환자들을 돌봐주는 통합 병동실에 입원했다.




12월 30일 토요일,


하루종일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병원에 전화를 해도 병실에 전화연결은 어렵다고만 하고 환자에게 직접 통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엄마는 종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루종일 10분에 한 번씩 전화를 하다가 저녁에 직접 찾아가 보기로 했다. 물건을 전해줘야 한다며 간호사를 만나 엄마 안부라도 확인하려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엄마에게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에 전혀 힘이 없고 대답도 잘하지 못했다. 며칠 째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는 게 가장 걱정이었다.




1월 2일 화요일,


엄마를 보러 며칠 가지 못했다.


내가 심한 몸살감기에 걸긴 탓이다. 전화로 새해 인사를 하는데 엄마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대답만 겨우 하는 엄마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새해에는 꼭 건강하자고 인사를 하고 끊었다.




1월 5일 금요일,


수화기 너머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나아졌다.


 딸 중학교 졸업식 때문에 엄마를 보러 가지는 못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떡과 카스텔라 빵을 간호사실에 맡기고 왔다. 엄마는 다음 주 수요일쯤 퇴원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좋아했다.




1월 9일 화요일,


엄마가 다시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도 계속 '응' 이라고만 대답했다.




1월 10일 수요일,


엄마의 목소리가 더 희미해졌다.


'응'이라는 대답도 거의 하지 못했다.  주치의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간호사실에 연락해 일반병동으로 옮겨 내가 상주간병을 하겠노라고 전했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엄마, 내가 갈게. 내가 옆에 있을게.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다. 엄마는 계속 아기처럼 내 이름을 부르며 '응'이라는 소리만 반복했다.




1월 11일 목요일 새벽 1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새벽 내내 나에게 전화를 걸고 또 걸어 이 말을 반복했다. '정은아, 사랑해, 엄마 이상해, 이제 갈 거 같아, 정은아 잘 있어, 사랑해.' 창밖의 찻길을 보며 기도했다. '엄마, 가더라도 지금은 가지 마. 일단 내일까지만 기다려.'




1월 11일 목요일 오전 11시,


드디어 엄마와 만났다.


엄마는 오전에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아이처럼 재촉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1월 11일 금요일,


책을 읽을 여유를 찾았다




엄마가 거의 일주일 만에 식사를 했다. 며칠 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약도 거부해 간호사분들이 많이 걱정했는데 내가 와서 그런지 조금씩 밥을 삼켰다. 좋아하는 절편과 식혜도 드셨다. 1인실로 가고 싶다는 엄마의 제안이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남편과 상의해 며칠이라도 1인실에 있기로 했다. 1인실이 주는 안락함과 위로가 컸다. 거의 의사소통이 되지 않던 엄마가 말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조금 위안이 된 나는 엄마가 잠든 사이 책도 읽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1월 12일 토요일 오전,


간병의 든든한 지원군을 만났다



엄마의 병원 생활을 달래줄 든든한 지원군이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순풍산부인과>를 하는 채널을 찾았다. 하루 종일 <순풍산부인과>를 틀어놓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가끔 대답하고 주로 잤지만 그래도 조금씩 대화를 이어갔다. 예전의 수다스러운 엄마의 모습은 아니지만 소소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1월 12일 토요일 오후 2시,


행복하기보다 불행해하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고민은 계속된다. 퇴원이 결정되지 않은 시점, 특별한 치료 방법도 없이 예정된 병원 생활, 집에 있을 예비고등학생 딸과 초등4학년 아들, 이제 막 회사에서 팀을 옮겨 적응 중인 남편까지도 모두 걱정이 되긴 매한가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부터 지키기로 한다.


눈밭에서 훌라를 추던 그 모습 그대로 나를 지키고 내가 바로 선 다음 주변을 둘러볼 것이다. 나를 지키고 버텨내는 힘으로 내 삶과 가족의 삶을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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