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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Feb 17. 2024

서로의 기억

마지막 하루


2월 11일




임마누엘, 임종 대기실 안에


엄마와 나, 단둘이다.







엄마의 손과 심장에 모니터를 연결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본다.



간호사와 간병사분들이 10분에 한 번씩 들여다 봐주며 엄마의 통증을 확인해 준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작은 소리로 마음의 준비를 조금씩 하면 좋겠다고 속삭인다.



그 와중에 나는 허기가 진다. 몸의 허기인지 마음의 허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편의점에 가서 먹지도 않을 간편식을 우걱우걱 게걸스럽게 봉지에 담는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엄마의 심박수가 올라갔다. 엄마 손을 잡고 내가 옆에 있음을 알려준다.



엄마를 안심시킨 후, 체온이 아직 따뜻한지 확인하고 발가락 끝 색을 본다. 아침보다 청색증이 조금 더 심해져 발끝의 보라색이 발바닥 가운데까지 번져있다.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의 발가락을 하나하나 주무르니 조금은 상아색으로 변한 듯도 하다. 무릎담요로 발끝을 돌돌 감아 따뜻하게 하고 이불을 다시 고쳐 덮어드린다. 손을 잡고 손이 따뜻한지 한 번 더 확인하고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나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



다시 모니터의 숫자들을 확인하고 심장의 그래프가 규칙적인 파도를 그리는지 본다. 



아직, 엄마는 내 곁에 있다.







2월 12일 오전



밤새 엄마가 눈을 감지 못하고 종종 얼굴을 찡그렸다. 진통제를 맞고서도 한참을 불편한 듯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신음 소리에 가까운 숨을 내뱉곤 했다. 엄마가 끙끙 앓는 소리를 듣는 게 정말 힘들었지만 계속 귀를 기울였다. 



모니터의 숫자를 제외하고 엄마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는 엄마의 숨소리였으므로. 



엄마가 잘 때 나도 자고, 엄마가 깰 때 나도 깼다. 엄마가 숨을 마실 때 같이 들이마시고, 엄마가 숨을 뱉으면 그제야 나도 가슴을 쓸었다. 






낮에 남편이 왔다. 남편과 교대를 하고 집으로 왔다. 얼른 샤워부터 하고 밥을 챙겨 먹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엄마 없이 벌써 한 달 넘게 알아서 먹고 자고 할 일을 해주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혹시 내가 없는 사이 엄마가 떠날까 봐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그새 많이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10년 넘게 함께 산 장모님을 보내는 일이 나만큼 힘든 남편은 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연인이다. 덕분에 지금까지 견뎠다.



지인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엄마는 어떠신지, 나는 몸과 마음을 잘 챙기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묻는 안부들 덕에 나는 또 힘을 내서 엄마 손을 주무른다.



내 곁에는 이렇게 꿋꿋이 버텨주는 가족들과 내 슬픔을 나눠주는 친구들이 있다. 엄마와 나의 간병일기는 모두가 함께 쓰는 우리 삶의 간병일기이다.







2월 12일 밤



엄마가 곤히 자다가 한 번씩 얼굴을 찡그린다. 이전에 없던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아파' 하고 말했다. 



나는 '다리? 손? 머리?' 하고 아플 것 같은 부위를 하나씩 묻는다. 엄마는 '머리'라는 단어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세워"라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앉는 자세가 이미 힘들어져서 누워있어야 했다. 내가 안된다고 머리를 주물러드리니 있는 힘껏 소리를 친다.



"아파! 세워!"



그 소리에 놀란 간호사가 온다. 간호사의 도움을 빌어 겨우 엄마를 앉혀 잠시 내 팔에 기대게 하자 엄마는 그제야 숨을 깊게 내쉬며 찌푸렸던 미간을 편다.



"엄마 원하는 거 다 해드리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간호사가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 심한 통증이 찾아온다고 알려준다. 엄마가 얼마나 많은 통증을 표현하지 못한 채 아팠을까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난다.



앉아서 고개가 앞으로 자꾸 떨어지는 엄마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엄마를 붙잡고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것뿐이다. 






다시 엄마가 평화로운 표정으로 조용히 색-색- 숨소리를 낸다. 폐가 아닌 목으로 쉬는 숨은 신생아의 숨소리처럼 가볍고 위태롭다. 그 소리를 들으며 엄마를 끌어안고 엄마의 귀에 대고 수시로 떠오르는 추억을 말한다. 



"엄마, 그때 있잖아, 엄마랑 나랑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데 내가 갑자기 엄마 백허그 한 날 기억나? 평소에 자주 엄마랑 안고 싶었는데 왜 그렇게 어색한지. 그런데 그날은 꼭 엄마를 안아줘야겠더라고. 그러고 나니 둘 다 어색해서 말도 없었지. 그래서 내가 그냥 '엄마, 파이팅!' 그랬잖아. 사랑한다고 할걸, 파이팅이 웬 말이야. 엄마 미안해, 사랑해."






엄마가 말을 할 수 있었던 며칠 전, 그러니까 임마누엘 방으로 옮기기 전,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나를 혼낸 기억을 떠올리며 미안해했다. 



"그때 내가 너를 너무 혼냈어. 네가 까무러쳐서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갔어. 너무 미안해서 알코올로 소독하면서 울었어. 너처럼 착한 애를 뭐 혼낼 게 있다고..."



하지만 나는 엄마에게 혼난 기억이 없었다. 잔소리도 들은 기억이 없다. 오히려 엄마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장난기 가득한 농담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했다. 





나에게 엄마는 개나리의 노랑이고, 콤비네이션 피자 맛이다. 평범하지만 따뜻하고 즐겁고 다채롭다. 소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엄마, 나는 엄마한테 한 번도 안 혼나고 자란 줄 알고 친구들한테 자랑했는데 반전이네? 엄마, 난 엄마랑 즐거웠던 추억만 생각나.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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