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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Apr 30. 2024

소리와 냄새로 보는 오션뷰

현재를 감각하는 시간

여행 첫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의식처럼 커튼을 젖혔다. 크레파스로 진하게 칠한 듯한 하늘색 하늘 아래 칵테일 빛의 투명하고 푸른 바다색 바다가 연한 흰 거품 경계를 따라 세상을 둘로 나누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상상했던 세상의 모든 파랑이 거기에 있었다. 


'그림 같은'이나 '꿈같은'라는 진부한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표현력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수평선 끝에서 파랑은 계속 새로운 파랑을 만들어 내며 온 바다에 신선한 파랑을 흘려보냈다. 태어나 처음 이 풍경을 보는 나는 물론이거니와 매일 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식물과 건물도 매일 아침 이 오션뷰에 감탄을 보낼 것 같았다. 


"언니, 나는 제주도에 사는데도 여행 가면 무조건 오션뷰로만 예약해요. 바다마다 느낌이 다르거든. 그런데 여기는 진짜 예술이다."


아이들이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시간. 어른 둘이 테라스에 서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새벽 리조트는 마치 진공상태처럼 고요해서 날아가는 새의 펄럭이는 소리까지 들릴 듯했다. 저 멀리 파도가 자기들끼리 부딪쳐 조잘거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미지근한 바닷바람을 타고 우리가 있는 테라스까지 들려왔다.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풍경 앞에서 나는 눈보다 소리와 촉각에 의존하기로 했다. 잠시 눈을 감고 풍경을 소리로 들으며 공기 냄새를 맡았다. 소리와 냄새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솔직하고 현재에 가까웠다. 확실히, 바다의 푸름이 더 가까워졌다. 지금 내가 살아있음이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너무 많은 보고 읽고 쓰고 생각했다. 시각에 치중되었던 시간을 멈추고 다른 신경감각을 깨울 때였다. 여행을 오는 이유가 이런 게 아닐까. 경이로운 자연 앞에서 온 신경을 깨워 오직 현재에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살아있는 나를 감각하는 것. 



부스럭. 아이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얘들아, 너희들을 위해 준비했어! 짠!"


아이들이 오션뷰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양쪽 커튼을 젖히고 테라스 끝으로 비켜섰다. 아이들은 새벽에 도착하고 서너 시간밖에 못 자서인지 오션뷰고 뭐고 짜증 가득한 표정에 볼멘소리로 화답했다.


"응... 바다네... 근데 나 배고파..."

"나도..."


아이들에겐 오션뷰인지 시티뷰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동물적인 감각이 먼저였다. 맞다. 잡념 없이 오롯이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는 아이들 덕에 나도 현재에 늘 가까이 붙어살 수 있구나 싶다. 아이들을 대충 씻기고 함께 뱃속 감각에 충실히 반응하기 위해 조식 뷔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여행은 조식이지!"


어차피 바다는 우리가 여행하는 내내 여기에 있어줄 테니까 눈앞의 푸름이 사라질까 걱정하듯 눈에 담으려 너무 애쓰지 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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