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글/D15
나의 2018년 1월 1일의 시작은 거실 창을 통해 저 멀리 보이는 롯데타워의 불꽃쇼를 보면서 시작되었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옥수동의 높은 언덕 위에 있는 아파트 중 제일 뒤에 있는 높은 지대의 아파트에서 고층이다. 덕분에 거실 창의 시야가 트여서 하늘이 많이 보이고, 앞의 아파트들 사이로는 한강이 조금 보인다. 그 한강이 보이는 틈새의 한가운데 롯데타워가 무섭게 서있다. 옥수동에서 잠실이 꽤 멀지만 롯데타워가 워낙 길어서 꽤 잘 보이는데, 아침마다 롯데타워의 선명도를 기준으로 그날의 대기오염의 수준을 대충 감 잡을 수 있다.
내가 옥수동에 처음 이사 온 것은 고등학생 때이다. 이사하는 날 장마처럼 비가 쏟아졌다. 학교가 끝나고 혼자서 새 집을 찾아가던 그 날, 아파트가 워낙 높은 지대에 있어서 아파트 입구부터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는데, 그 계단을 따라 빗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고등학생 시절 내내 왜 우리 집은 평지가 아니라 산 위에 있느냐며 불평을 해댔다.
그 후로 죽 살다가 결혼을 하면서 다른 곳에 신혼집을 얻어 나가게 되었는데, 아이를 낳게 되면서 떠난 지 4년 만에 결국 부모님이 계시는 옥수동으로 다시 컴백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시작된 옥수동 생활은 7년을 채웠고 각자의 회사에서 출퇴근이 편하고 서울 중심의 라이프를 편하게 즐길 수 있기에 우리 부부도 매우 만족하고, 아이도 너무 좋은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아파트 입구에 있는 구립어린이집도 너무 좋아서 정말 잘 커주었다.
그러다 아이를 학교를 보낼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 곳에 남을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할지 여러 달을 고민을 했다. 여러 번의 논의와 의사결정의 번복 끝에 지난 12월 우리는 판교로 이사 가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하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이사 준비에 1월의 모든 주말을 다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마음은 편치 않았다.
옥수에 남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나는, 과연 이것이 잘한 결정일까라는 의문 속에서, 이사로 인해 생기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만 커져가는 상황 속에 1월을 보냈다.
특히 이 곳을 떠나면서 잃게 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우리 집이 선셋뷰가 정말 좋았는데 다시는 그걸 볼 수 없다는 것도... 이태원, 가로수길, 성수동 핫플레이스가 다 가깝고 아직 못 가본 곳도 많은데 다신 영영 못 올 것만 같은 아쉬움... 친한 친구들도 다 서울에 살고 있는데 이젠 어떻게 만나지...
문득 어느 날은, 내가 이렇게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잃게 되는 것들이 아쉽긴 하지만 그동안 잘 만끽했다고 생각하고 떠나보내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게 생각이 들지 않다니...
판교도 분명한 장점들이 분명한 곳이고, 그렇기에 그곳으로 이사를 결정했고, 막상 가서 살아보면 더 좋은 점들이 많을 것이다. 한두달 후의 글쓰기에는 판교에 대한 찬양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지 않지만 떠나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직은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이번 2월도 이사 준비로 나의 라이프는 계속 고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