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이야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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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랗게 질린 얼굴로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는 에드워드를 발견했다. 애니가 이대로 결혼할 수 없어서 잠옷 바람으로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 에드워드는 경찰서로 향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애니가 ‘너와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 없다’고 진정시키자 그제야 에드워드의 눈에 오렌지색 커트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웨딩드레스와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뭐 어때.”
짧은 머리를 긁적이는 애니의 모습은 눈부셨다. 그동안 애니에게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강렬한 매력에 에드워드는 숨이 멎을 듯했다. 에드워드는 문득 본인 예복으로 빌린 턱시도가 애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니와 에드워드는 빌려둔 예복을 그대로 입기로 했다. 애니가 턱시도를, 에드워드가 드레스를. 에드워드는 비비디바비디부 이발소에 가서 덥수룩한 턱수염을 면도할까 생각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웨딩드레스와 턱수염의 조합으로 이상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어중간하게 면도를 하는 것보다 좋겠다는 데 커플의 의견이 일치했다.
다음날 아침, 턱시도를 입은 애니, 드레스를 입은 에드워드를 보고 브라운 신부는 결혼식은 장난이 아니라며 주례를 거부했다. 그러나 성당으로 걸어 들어가는 애니와 에드워드의 모습을 본 하객들은 이미 열광하고 있었고, 윈터 원더랜드 시민들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순식간에 이 커플의 사진으로 꽉 찼다.
브라운 신부는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모두가 열광하는 커플의 주례를 선 신부가 될 것이냐(잘하면 #주례_브라운_신부 해쉬태그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의 주례를 거부한 신부로 소문나 윈터 원더랜드 대표 꼰대가 될 것이냐 사이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브라운 신부는 얼른 애니-에드워드 커플과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윈터 원더랜드를 떠들썩하게 한 결혼식 이후 애니는 그토록 바라던 ‘특별함’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람들은 애니의 안무 영상을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무용학교에서 리듬을 완벽하게 타지 못한다고 평가받던 애니는 이제 ‘리듬을 굴복시키는 카리스마’라고 칭송받기 시작했다.
애니의 스마트폰은 윈터 원터랜드의 모든 기획사들로부터 안무 시안을 보내달라는 메시지로 가득 찼다. 기숙형 사립고 이사회부터 시립 홈스쿨링 지원센터까지, 산후조리원부터 상조회사 노동조합까지, 웨딩플래너 공제조합부터 이혼 컨설턴트 연맹까지, 단식원부터 먹방 유튜버 협회까지 애니가 율동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모든 곳에서 ‘우리는 그때부터 애니의 특별함을 알아보았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애니의 안무를 ‘한마디로 절도 있는 흐느적’이라고 불렀는데, 그 표현은 한마디도 아니거니와 형용 모순에 해당한다고도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윈터 원더랜드 시립 언어원은 오랜 회의 끝에 문제 제기를 포기했다.
애니가 일으킨 돌풍은 윈터 원더랜드 바깥까지 불어 나가, 마침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던 좀비물 열풍과 만나 거대한 기류를 만들었다. 애니의 안무 영상은 매력적인 좀비를 연출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던 할리우드와 충무로 감독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선수를 친 곳은 발리우드였다. 애니는 세계 영화사상 가장 장엄하다고 평가받은 좀비 군무를 만들었고, 해당 스코어는 그래미 베스트 댄스 레코드상을 수상했다.
음원 자체가 그래미 수상작으로 적합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전미 리코딩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공식 성명을 통해 댄스 장르에서 안무는 음악의 일부이며 수상 기준은 대중의 평가를 반영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자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는 재빠르게 오스카 안무상을 신설해서 애니에게 최초의 오스카 안무상을 안겼다. 아카데미의 결정에 충격을 받은 일부 토니상 관계자들이 브로드웨이 무대 공연으로 한정된 수상 자격을 해외 뮤지컬 영화까지 넓혀야 한다고 주장해서 브로드웨이에 파란이 일어났다. 500여 편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제작했던 베테랑 제작자가 극비리에 윈터 원더랜드행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이 공항 CCTV에 찍힌 영상이 유포되자 양분되었던 관계자들은 전통을 수호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애니의 독보적인 탁월함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셀러브리티의 삶에 휘둘리지 않는 초연함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어떤 상황에도 감정 기복 없이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는 애니의 초연함에 대해 여러 이론을 주장했는데, 애니 자신은 ‘중용’의 다른 뜻이기도 한 ‘재능이 보통임. 또는 그런 사람’이었던 시절 차곡차곡 쌓여 왔던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음’이 이제야 제대로 쓰임새를 찾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좀비 안무로 전 세계 문화예술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애니는 괴물과 돌연변이로 활동 영역을 넓혀서 독보적인 ‘크리처 모션 아티스트’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애니는 그토록 바라던 탁월한 사람이 되었고 비로소 평범한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특별하지는 않다’는 평가를 그대로 믿어버렸던 것이다. 특별한 헤어스타일 때문에 인생이 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특별하다, 평범하다’라고 하는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인생이 변했다.
애니는 매년 막대한 수입에서 적지 않은 비율의 돈을 윈터 원더랜드 교육청에 보내 각급 학교에서 눈에 띄는 특기가 없고 모든 과목에서 딱 중간 성적인 학생들을 위한 클래스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Class X 프로젝트’라고 하는 이 사업은 애니와 교육청의 협약에 따라 윈터 원더랜드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참여 학생들이 남들보다 잘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는 과정을 지원한다. Class X를 거친 학생들의 행복 지수가 높아짐에 따라 딱 중간 성적을 받는 비법을 선전하는 학원이 생겼을 정도이다. 애니는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오늘도 괴물과 돌연변이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있다.
지은은 책을 덮고 이불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갔다. 반듯이 누워 가슴에 책을 얹고 심호흡을 했다. 고개를 살짝 돌려 침대 맡 탁자에 놓인 은은한 스탠드 불빛을 바라보았다. 유리드믹스의 <Sweet Dreams> 뮤직 비디오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지은은 탁자에 책을 놓고 엎드리면서 스탠드를 껐다.
눈을 감고 검은 턱시도를 입고 있는 오렌지색 머리의 애니를 상상했다. 유리드믹스의 애니인지 윈터 원더랜드의 애니인지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지은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애니의 걸음 소리에 심장 박동을 맞추며 잠에 빠져들었다.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달콤한 꿈들은 이걸로 만들지
Who am I to disagree?
감히 누가 아니래?
I travel the world and the seven seas
나는 온 세상과 7개의 바다를 여행하지
Everybody's looking for something
모두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