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도 되는 사이

by 에벌띵

내겐 의자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힘든 걸 내색하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내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한다고 해결점이 보이는 것도 아닌 데다 대개는 ‘나는 더 힘들었어’라는 상대의 신세한탄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앞에서 고작 이런 일로 징징거렸다 싶어 죄책감만 밀려든다. 입이 닫히고 몸은 경직된다.


하지만 이 사람에겐 숨겨둔 속내를 맘껏 쏟아낸다. 억울하고 서러웠던 일을 토로하기도, 너무너무 자랑하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던 자랑거리를 푸지게 꺼내 놓는다. 그러면 언제든 ‘에고, 힘들었겠네’, ‘역시 잘할 줄 알았어. 대단해!’라며 품어 준다.


엉덩이 뼈가 눌려 아픈 딱딱한 나무 의자가 아니라, 온몸을 늘어뜨려 놓을 수 있는 쿠션 좋은 카우치 같다. 세월이 갈수록 질이 나고 내 몸에 딱 맞아떨어지니 기대고 있으면 나른해지고 무방비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나는 곧게 허리를 펴고 앉아야 하는 책상의자 같은 사람이었다. 반듯하고, 올곧아서 오래 앉아 있기는 좀 불편한.

그랬던 내도 변해간다. 자로 잰 듯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배웠고, 엿가락처럼 늘어져도 안전하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나도 누군가의 카우치가 되고 싶다. 털썩 주저앉아 온몸을 맡겨도 편안해지는, 그런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오늘도 나는 내 카우치를 찾아간다. 수고했다, 대견하다, 어여쁘다는 말을 들을 생각에 벌써 행복하다.



Irina Novikova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9078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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