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이 되고 싶었던 생선

by 에벌띵

어쩌다 보니 ‘선생님’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일타강사 정승재 씨의 표현을 빌자면 선생이 아닌 생선으로 불려야 마땅한 일개 학원 강사가 된 덕분이었다.

하필이면 아이들의 성적을 쥐락펴락하는 과목인 영어 담당이었는데,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선생 트라우마’가 있던 나는 내 학생들에게 의지할 만한 어른이 되고팠다. 먼저 태어난 덕에 삶의 경험이 조금 더 많은 인간 대 늦게 태어나 경험이 적은 인간으로 맞짱(?) 뜨고 싶었달까. 그러다 보니 내 사무실에는 늘 학원 내 가장 말썽 부리는 학생들로 득실거렸다. 학원 빼먹고 PC방 갔다가 잡혀온 녀석부터 강의하는 여 선생님 앞에서 자위를 감행한 녀석까지, 원장은 모든 꼴통을 내 방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내 앞에 떠밀려온 녀석들은 뭐랄까…. 안쓰러웠다. 학교부터 집과 학원에서 까지 말썽쟁이로 낙인찍힌 아이들의 눈엔 자포자기가 기본값으로 깔려 있었다. ‘될 대로 돼라. 때리면 맞아 주지 뭐’하는 얼굴이었다.


일단 뭘 많이 먹였다. 라면, 어묵, 아이스크림, 햄버거, 종목도 다양했는데 여기저기서 얻어먹은 눈칫밥 때문인지 아이들은 우걱우걱 음식을 씹으면서도 이랬다.

“선생님 돈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녜요?”

“시끄럽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그거 아냐? 사형수도 집행 전에 먹고 싶은 음식 먼저 먹이는 거?”

“켁! 그럼 저 오늘 죽는 거예요? 우와~!! 그럴 줄 알았으면 더 맛있는 거 먹는 건데!!!”

“흐흐흐…. 늦었다, 이 놈아! 최후의 만찬을 고 따위로 고르다니! 꼬시다!!”


그리고 15분 강제 취침을 시켰다. 안 잘 거라 삐약삐약 거리던 녀석도 15분 후면 흔들어 깨워야 했다. 등짝을 후려 맞고서야 어그적대며 일어난 말썽꾼은 그제야 자세를 고쳐 앉고 뭔가 잘못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즉결심판을 기다리는 자세로 내 눈치를 그렇게 봤다.


“자, 이제 까봐라. 뭣 때문에 그랬는지. 자백이 맘에 들면 살려주마.”


배부르고 등따신데 장사 없다.

제 돈이 아닌 내 돈으로 즐긴 만찬으로 생긴 채무감도 한 몫해 말썽꾼의 입은 술술 열렸다. 문제 행동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가 강처럼 흘렀다.




시간도 흘러 내게 등짝을 후려 맞았던 녀석들 중에 몇몇은 고등학생이, 몇몇은 대학생 그리고 성인이 되었다. 어쩌다 카페나 기관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나를 보면 도망갈 만도 한데 용감하게 와서 인사한다.

“선생님!!! 쪼매 밖에 안 늙으셨네요!!”한다. 죽을라고!

“떤땡님~~~~!” 혀 반토막은 씹어 잡수셨는지, 도도도 와서 안긴 녀석 때문에 왈칵 올라온 눈물을 삼킬 때도 있다.



우리 학원 최강 말썽쟁이들에게 나는 좋은 선생이라 생각했다. 돈을 그만큼 썼는데 그거라도 얻고 싶었다.

이제는 안다. 녀석들이 내게 최고의 선생님이었다는 걸. 내 앞에서 뻗대고 욕하고 울고 웃던 아이들이 열어 준 마음의 가치를 이제야 안다. 그 덕에 내 딸아이를 더 많이 이해하고 잘 키울 수 있었고, 그 덕에 조금은 괜찮은 어른으로, 내가 성장했다.

오는 스승의 날엔 녀석들에게 카네이션을 돌려야 할 판이다.




Ilaria M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8886399/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