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나 아니고 너라고

by 에벌띵

이런 경우 있지 않나. 별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 때문에 마음 고생 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나는 본투비 내향형 인간이지만 필요에 따라 외향형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걸 공적자아라 부른다.

편안한 공간에 있을 때나 친한 친구와 함께 일 때 내향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낯을 가린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친구 대화를 나누는 중에 친구의 지인이 불쑥 인사를 해오면 화장실에 가거나 둘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휴대전화를 보거나 커피를 마신다.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나 타인과 협업을 해야 할 때엔 판이하게 다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별 어려움 없이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다. 상대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농담을 건네고 음료도 먼저 챙긴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인 양 한다.


내향형의 나를 주로 만났던 친구가 외향형의 나를 마주한 날 이렇게 말했다.

“왜 나랑 있을 때와는 달라?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이랑 오래 만나 온 사람인 양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어. 어떻게 그래?” 친구의 말투는 냉소적이었고, 얼굴엔 약간의 혐오를 담고 있었다. 나의 이중적 모습에 질린다는 듯이.

“엥? 그게 왜? 너는 친구니까 편안하게 내 원래 모습을 보이는 거고, 그때는 공식적인 자리였잖아. 그런 자리에 맞는 태도가 있는 거 아냐? 내가 그래도 사회생활을 얼마나 했는데, 그 정도야 왔다 갔다 하지~” 애써 변명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 나는 카페에서 책 읽기를 즐겼다. 가정 주부면 공감하지 싶다. 집에서 여유롭게 독서를 한다는 건 회사원이 근무 중에 일 안 하고 책 읽겠다는 것과 동일하다. 카페는 나의 최선책이었다.

“넌 카페에서 책이 읽혀? 어수선해서 집중은 돼? 난 카페에서 책 읽는 사람들 이해하기 어려워. 난 도서관에서 읽는데, 그게 더 나은 거 같아. 그렇다고 너한테 뭐라는 건 아냐. 내 생각이 그렇다고.

난 친구의 암호 같은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뭐 어쩌라고 하기에 내 감각은 몹시 예민했고, 친구도 잃고 싶지 않았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심리상담학을 공부하고 온갖 잡스런 지식을 배우며 깨우친 결과 나는 친구에게 거울이란 걸 알았다.

자신이 원하지만 가질 수 없는 무엇을 나를 통해 본 것이다. 친구의 이면, 열등감을 비추는 거울이 하필이면 나였던 게 문제였다.



살다 보면 해준 것 없이 미운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 가만히, 오래 생각한다. 상대가 불편한 이유가 나의 단점이 투사된 결과는 아닌지, 내 열등감이 거울처럼 비쳐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무턱대고 비난하고 싶어진 건 아닌지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의 적극성이, 단호함이, 행동력이 부러워 침 흘리는 내가 보인다.


그랬구나, 너도 갖고 싶었구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부러워해도 돼. 미치게 부러워? 방법을 찾아보자. 아니면 물어봐. 어떻게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되었는지. 토닥토닥한다.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행운이다. 그 행운을 곱고 예쁜 말과 행동으로 귀히 대접하자. 귀인이 발로 넝굴째 굴러 들어왔으니까!




cottonbro studi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662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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