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김치 요정

by 에벌띵

오래전 TV에서 시한부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방영했다. 남편 없이 홀로 키운 외동딸. 그 딸을 두고 세상을 등질 생각에 애가 탔다. 하루만 더 딱 하루만 더 하며 엄마는 생을 붙들었고, 딸은 매일 엄마 품에서 하루를 보내며 혹시 모를 이별을 막아섰다.

두 모녀는 결국 이별했다. 아직은 엄마 손이 필요한 고등학생 딸은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왔다. 냉장고를 열었다. 혼자 남겨질 딸이 굶을까 한가득 김치와 반찬을 해둔 엄마가 거기 있었다. 그걸 먹으면 엄마가 영영 사라질까 먹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던 열여덟 아이가 내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내가 김치를 담그는 걸 반기지 않으셨다. 지금도 엄마가 있는데 뭣하러 고생이냐며 갖은 김치를 담가 주신다.

“난 나중에 김치만 보면 엄마 생각나서 울지도 몰라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가 담가 주신 김치가 먹고 싶어서 어쩌나 싶어 벌써 슬퍼요. 그러니까 나도 가르쳐줘요. 혼자 알고 있지 마시고~!” 갖은 알랑방구를 떨어도 그때뿐이다.



우리 집 김치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 엄마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묵은지부터 갓 담근 겉절이까지 일렬종대로 놓여 나를 반긴다. 아래 위층에 함께 살고 있다지만, 그 무거운 걸 들고 오르락내리락했을 게 뻔해 결국 한소리 한다.

“저한테 가져가라 하세요. 계단도 가파른데 그걸 들고 왔다 갔다 하실 건 뭐예요!”

“살살 다녀서 괜찮다. 내가 안 갖다 놓으면 김치 달라 소리를 안 하잖아, 니가. 엄마가 해줄 수 있을 때 많이 갖다 먹어라. 응?” 애잔한 소리를 하신다.



사실 나도 김치를 잘 담근다. 엄마에겐 배추찜이나 전을 해 먹는다 하고 텃밭에서 뽑아온 배추로 몰래 여러 번 해보니 엄마 손맛을 닮아 있었다. 내가 담근 김치는 꽁꽁 숨겨 놓고 엄마 김치를 날름 받아먹는다. 갓 담근 김치 한 조각을 쭉 찢어 맛보며 “역시! 엄마 김치가 최고야!”라며 찬사를 내놓는 순간 열여덟 소녀처럼 환하게 웃는 엄마를 사랑하니까.



곧 봄동 김치를 맛볼 수 있을 테다. 갖은양념으로 조물조물 버무린 봄동 잎 하나를 내 입에 쏙 넣어 주실게 분명하다.

“간이 맛나?” 명분은 간을 보라는 거지만,

“오~!! 간도 딱 맞고 엄청 맛있어요. 오늘은 흰쌀밥을 해야겠어요. 이것만 얹어 먹어도 한 그릇은 뚝딱이겠어!!” 내 한 마디에 어깨 뽕이 들어갈 엄마가 그려진다.

30년만 더 빌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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