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공허를 채워주는 장소로 적합했다. 사방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 책장과 책장 사이 어딘가에 기대어 순간 마음을 끄는 문장에 머물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도시에서 살든 간에 내게 도서관은 좋은 도피처가 되었다.
육아를 선택하며 수입이 절반으로 줄자 가장 먼저 끊은 건 책을 구매하는 일이었다. 내돈내산이 아닌 남편의 월급으로 내 것을 산다는 게 불편을 넘어 비겁하게 느껴졌다. 기생하는 듯했다. 그러니 책? 안 사고 말지 했다.
아이와 함께 자연스레 도서관으로 향했다. 작은 시골동네 도서관에는 매달 신간이 들어왔고, 관심분야의 도서도 모자라지 않았다. 참새 방앗간 지나듯, 그곳에 애정을 쏟았다.
작은 도서관의 특징이었는지, 사서 개인의 일이었는지 모른다. 수년간 불편함 없이 책을 빌려 읽던 곳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는 걸 어느 날 알게 됐다. 신간이 들어오는 시기만 되면 그랬다.
“자기야, 그 도서관에 신간 들어오는 날 가봤어?”
딸의 하교에 맞춰 도서관에 갈 거라는 내 말을 들은 지인이 별스럽지 않게 물었다.
“응. 가봤지. 왜?”
“자기는 신간 들어오는 날에 신간 책을 빌릴 수 있었어?” 지인의 질문은 이상했다.
“음…. 아니. 그러고 보니 신간 들어온다고 해서 갈 때마다 다 나가고 없다더라고. 2주나 지나야 있었어.”
“그렇지? 그거 왜 그런지 혹시 알아?”
“누가 먼저 빌려가나 보다 싶었지 뭐. 어찌나 재빠른지 아침 일찍 가도 없어서 여러 번 허탕 쳤어.” 이어진 질문에 어깨를 들썩이며 답했다.
“흥, 거기 사서 있지? ㅇㅇ엄마랑 엄청 친하잖아. 신간 들어올 때마다 ㅇㅇ엄마 몫으로 미리 다 빼놓는데. 다른 사람 손타기 전에 읽는다나 뭐라나, 웃기지도 않지? 그 집 식구는 좀 많아? 수십 권을 그렇게 가져간대. 매달 그 짓거리를 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구경도 못한 거야. 그러니 자기가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봐야 됐겠어? 헛짓거리를 한 거지.”
충격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그 후로 동네 하나밖에 없는 도서관에 발길을 끊었다. 기다렸던 신간이 들어오면 꼭 알려 달라며 사서에게 알랑방구 꼈던 내가 어찌나 한심하던지…. 남편에게 이르 듯이 사정을 설명했다.
“그렇잖아도 당신 책 그만 빌려 봤으면 했어. 매번 더러워질까 조심해서 읽는 것도 그랬고, 읽고 싶을 때 못 읽는 것도 마음 불편했어. 그러니까 한 달에 10만 원 정도는 당신 책 사는 데 썼으면 좋겠어. 당신 남편 그 정도는 벌어다 주잖아. 책을 남 비위 맞춰가며 읽는 거 하지 말고, 당신 책으로 읽어. 줄도 긋고, 포스팅도 하고, 여백에 글도 쓰면서 말이야.”
그런 덕에 우리 집에 지금 책방이 있다. 사방이 우리 가족이 고른 책으로 둘러싸였다. 각 책마다 사연과 추억이 숨었다. 어느 때고 손 뻗으면 시작되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는 우리만의 작고 작은 도서관이 덕분에 생겼으니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