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청춘은 고난 그 자체였다. 사기극의 피해자였던 동시에 가해자가 된 할아버지의 징역살이로 열두 가족의 생계가 아버지 몫으로 떨어졌다. 그때 아버지는 고작 이십 대 초반이었다.
일찍 장가든 아버지의 형, 내게 큰아버지 되는 양반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다 머리만 올린 어른이 되어 양친의 돌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많은 식솔을 거느렸던 할아버지는 어떤 일에 투자를 했지만 사기였다. 할아버지는 무려 1억을 잃었다. 50년도 더 지난날의 일이었다.
열두 명이나 되는 가족의 의식주에 교육비까지, 아버지는 당신의 청춘을 팔아 감당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구명해야 했고, 저당 잡힌 대저택과 땅을 되찾아야 했다. 가능한 일이었을까 싶은 그 일을 아버지는 기어이 해냈다.
푸릇한 스물 청년이 모든 걸 걸고 찾은 집과 땅의 주인은 어이없게도 청년의 형 몫으로 돌아갔다. 장자승계, 되지도 않는 부모의 억지에 피를 토하며 물러섰다. 훗날 네 몫을 반드시 돌려주겠노라는 부모와 형의 약속을 믿었다. 한 톨의 의심도 없이.
아버지 몫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할아버지 사후 그 많은 재산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약속된 몫은커녕 살고 있는 터전마저 위협받았다. 불안이 현실이 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네 몫만큼은 챙겨주겠노라는 형의 약속은 발뺌과 강제퇴거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렇게 평생을 바쳐 일군 터전에서 쫓겨났다. 아버지의 청춘이 손가락 사이의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맏딸로서 나는 아버지와 그 시절의 이야기를 간혹 나눈다. 억울함과 분통, 헛헛함과 서러움 등 말로 다 형언하기 힘든 감정들이 아버지 안에서 끓어오르는 걸 본다. 제 밥벌이만 해도 기특할 나이의 청년에게 감사하거나 미안해 한 사람이 전무했다. 너의 재능과 노고는 당연히 우리가 누려야 할 특권인데 무엇을 바라느냐는 뻔뻔함으로 일관한 내 조부모와 삼촌들(고모 포함)이었다. 그들에게 내어 준 심장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의 울음이 아버지의 주름과 하얗게 센 머리 한 올 한 올에 남았다.
나는 아버지를 오래 많이 그리고 자주 포옹한다. 내 아들 뻘 이래도 좋을 스물몇의 아버지에게 온 맘으로 감사를 전한다.
“아버지 잘 견뎌주셔서 감사해요. 그 시절을 잘 지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누구도 하지 못했을 그 일을 해내신 아버지가 제 아버지라서 기뻐요. 그런 아버지를 닮은 딸이라 저는 복 받은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귀한 유산을 제 안에 남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아버지 딸답게 살아갈게요.”
청춘의 아버지가 내게 웃는다. 제임스 딘 뺨치게 잘 생긴 그 청년이 이제 아버지 안에서 행복하기를, 온 진심과 마음을 다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