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것

by 에벌띵


늦여름에 뜨기 시작한 스웨터를 완성했다. 한국근현대미술 4인의 거장들 전시회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도슨트 날 입으니 연일 내린 비로 스산해진 날씨에 맞춤이었다.

그 스웨터를 입어 본 딸이 자기 것도 하나 떠 달라 요청했다. 은은한 연그레이의 캐시미어 실을 구입해 매일 뜨는 중이다.


도슨트 공부와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선생님들과 매주 화요일 김 선생님의 공방에서 모임을 한다. 취미 금수저인 김 선생님께 민화를 배운다는 안 선생님의 이야기에 '저도요!' 하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렇다고 민화를 배우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그림을 그리다 붓을 꺾은 후 어지간해서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을 보고 사유하는 걸로 마음을 채운다.


김 선생님의 공방에서 나는 뜨개를 한다. 실뭉치와 대바늘, 코바늘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 민화에 흠뻑 빠진 두 선생님 사이에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건네는 동안 느긋하게 손을 놀리고 두 눈으로는 민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즐긴다.


어제 아침 경주는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양 비가 쏟아졌다. 김 선생님의 공방에 가는 날 하필.

다행히 두 선생님과 함께 하고픈 욕망이 귀찮음을 이긴 덕분에 나는 또 한 번 민화가 완성되어 가는, 곱고 지루한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섬세함과 견딤이 반복되는 그 과정을 보며 내가 툭 던졌다


"두 분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이 지루한 과정을 어떻게 이렇게 성실히 견뎌내시는지.." 진심이 담긴 감탄이었다.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작업 중이던 안 선생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봤다.

"그러는 당신은 어떻고? 이렇게 성실하게 지겨운 과정을 반복해 옷을 뜨면서?"

내 손에 들린 편물을 가리키며 안 선생님은 재미있는 발견이라도 한 양 까르르, 소녀처럼 웃었다.





나는 자주 스스로의 게으름, 성실하지 못함을 탓한다. 한 권의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날뛰는 생각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A라는 책의 문장에서 책 B, C, D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고, 그것과 지금 읽는 문장의 공통점과 다른 점을 기어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식이다.

무언가를 시작하고 끝맺음을 맺는 데 꽤 긴 시일이 걸린다. 그런 고로 난 스스로를 게으른 완벽주의자라 칭하는 걸로 벌한다.


안 선생님의 말은 내 뒤통수를 다정히 치는 한 마디였다. 타인에게 발견했다면 찬사를 아끼지 않았을 일을, 내 것이라 당연하고 가볍게, 값없이 여겼구나, 깨달음이 퍼뜩 지나갔다.


이미 내 손에 쥐고 있는 달고 고소한 쿠키를 잊고 남의 손에 들린 걸 부러워한 꼴이었다.


스웨터를 뜨는 동안 책을 읽는 게 습관이다. 손이 일하는 동안 멍 때리고 있는 뇌를 용남 할 수 없는 성미가 나를 들볶는다. 한 벌의 스웨터를 뜨는 동안 평균 네 권의 책을 읽는데 에세이와 소설이 주를 이룬다. 좋아라 하는 사회과학서는 절대 읽지 않는다. B, C, D 책을 찾고 뒤질 게 틀림없고, 편물은 내팽개쳐질 게 분명하니까.

스웨터가 완성되고,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과 에세이를 네댓 권을 읽고, 나는 자책한다. 이렇게 게으른 삶을 살아도 괜찮을까 되묻는다. 후회한다.



이미 성실한 나를 조금은 다정히,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을 대하듯, 공들여 안아주기로 한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congerdesign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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