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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umpkin May 22. 2020

내 인생의 롤모델,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를 읽고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 고은


 

내가 한비야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언니의 오지 탐험 책을 통해서도, 매스컴을 통해서도 아니었다. 바로 조앤리 여사의 책을 통해서였다. 한때 나의 롤 모델이었고 우상이었던 조앤 리 여사가 그녀의 책에서 언급했던 당돌하고 야무진 직원 한비야. 조앤리가 유일하게 부러워했던 자유로운 영혼 한비야. 그렇게 내 기억 속에 굵은 폰트로 꾹 눌러 찍혀있던 이름 ‘한. 비. 야.’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오지 탐험가라는 이름으로,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재밌게도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비야 언니’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비야 언니, 나도 그래요. 내 웃음 소리두 그렇게 커요. 나도 그렇게 말이 빨랐더랬어요. 나도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느낌이 커요.” 읽는 내내 그렇게 맞장구치면서 무지 친한 척하며 읽어내련 책이었다. 때론 웃기도 하면서 때론 엉엉 울기도 하면서 말이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처럼 느껴졌던 오지탐험가 한비야가 언니처럼 가까이 느껴졌고, 내 리뷰나 초서에는 내내 ‘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림을 당하고 있다. 나의 존재조차도 알지도 못하는 언니가 그렇게 가깝고 편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비야 언니는 개띠, 나는 토끼띠. ‘언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아주 딱 좋은 나이기도 하다.


책으로 다시 만난 한비야 언니는 참 편했다. 정말 슬리퍼를 신고 운동복 차림으로 떡볶이를 먹으며 어묵 국물을 후루룩 마셔대며 온갖 수다를 다 떠는 듯한 그런 편안함, 즐거움이었다. (아고~ 언니의 다른 책들이 불편했다는 말 결코 아님을 아시겠지..?) 언니의 호탕함이 좋았고, 언니의 호들갑이 좋았고, 언니의 삶에 대한 열정이 좋았고, 사랑에 대한 절절함이 좋았다. 언니 안에서 참 많은 부분 나를 보았다. 그래서 가끔씩 나와 부딪히던 나의 호들갑이 좋아졌고, 나의 하이톤 목소리가 좋아졌고, 나의 큰 웃음이 좋아졌다.




당당하면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언니의 미소는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나의 하느님은 늘 이런 식이다. 
어느 분야에서 인정받고 안정되기 시작하면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시며 
그 길로 가라 하신다.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며 인정을 받으며 익숙해져 있을 때, 언니는 ‘늘 떠난다.’ 이렇듯 홍보회사에서 인정받는 실력가에서 오지 탐험가 바람의 딸로, 그리고는 바람의 딸에서 구호팀장으로. 인제는 좀 더 깊은 앎을 위해 다시 학생이 되어 보스턴으로 떠난다. 안주하지 않는 삶. 한 곳에 머물러 썩지 않고 늘 새 생명이 되어 흐르는 삶. 언니는 그 삶을 기꺼이 두 손을 덥석 붙들어 자신 몸에 밧줄로 휘감어 매어놓고 온 몸으로 뛰어든다. 이렇게 주기적으로 거친 광야에 보내어 거기에서 언니를 성장시키고 성숙시키시려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정말 '언니는 커서 무엇이 되려는 건지' 나도 궁금하다. 늘 포기하지 않는 언니, 늘 멈추지 않는 여인, 성장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여인, 자신의 원대한 꿈을 그려내기 위해 끝까지 ‘두드리는’ 언니. 그런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삶 안에서 불태우는 언니가 어찌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비야 언니의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해 준다. 물론 글을 수다 떨듯 편하게 써 내려가시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니의 꽉 막히지 않은, ‘다름’에 대한 존중과 그 존중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언니의 Open-minded Personality가 내 속을 뻥 뚫어주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슬람 종교를 가진 아슈라프와의 서로의 종교에 대한 부엌 수업(?)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언니도 아슈라프도. 그렇게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 바로 평화의 첫걸음 아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교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는가. 나는 확신한다. 종교가 없었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전쟁의 90%는 없어졌을 것이라고. 서로의 다른 성격,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존중하며 서로 어우러지는 삶을 사는 것. 불가능 한 이야기는 아닐 듯싶다.


 





에이즈 걸린 부모로부터 수직 전염된 어린 소년이 자신의 고통은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동생들을 돌보아 줄 분들이 생기기를 기도했다며, 한국에서 날아온 후원자를 보며 고맙다고 손을 내미는 부분에서 어찌 꺼이꺼이 눈물이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도 내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 아이를 꼭 안아준 그 아저씨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비야 언니가 행여 그분이 아이가 내민 손을 안 잡아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하며 조마조마했었다는 부분을 읽으며 내 마음도 얼마나 조마조마했더랬는지. 손을 잡기는커녕 그 아이를 꼭 안아준 아저씨가 너무나도 고마워 그분의 사업이 잘되어 그 아이들을 오래오래 후원하실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다.


비야 언니의 글은 참 따뜻하다. 언니가 얼마나 뜨거운 감성의 소유자인지는 글 첫머리부터 느껴져 왔다. 마치 글씨가 살아서 팔딱팔딱 뛰어오르는듯한 느낌. 그 뜨거운 가슴과 감성으로 그 오지에서 구호팀장으로 일하시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들이 느끼는 고통이 그대로 언니에게 전해졌을 터. 그 아픔을 어떻게 감내하며 이어갈 수 있었을까 싶다. 언니에게 전해진 그 고통과 아픔은 사랑으로 변하여 그들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여주기 위해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자꾸만 더 그들에게로 내몰았으리라.






책을 읽다가 책 안에 끼어 있는 Café des Verts. Preserver the futrue and savor the now라고 적혀있는 카페 데 베르 냅킨을 발견했다. 순간 울컥 그리움이 몰려왔다. 카페 데 베르는 내가 사랑하는 와우들이 자주 모이던 카페였다. 그리고 그 안에 함께 끼어 있던 작은 카드 한 장, 그것은 와우들이 보고 싶어 날아갔던 한국 여행 때 함께 떠난 와우 4기 MT에서 와우 동생인 지상이가 보낸 카드였다. 어머님이 아프셔서 먼저 올라가야 함에 미안함을 전하는. 그렇게 한국에서의 와우들과 행복했던 기억이 살며시 고개를 쳐들고 내 가슴을 두드리고. 

더욱이 <그건 사랑이었네>는 지상이가 읽으면서 좋다고 했던 책이라, 내가 좋아할 것 같다고 추천해준 책이라 읽고 싶어 산 건데 그 안에 왕마담 카드가 껴 있어서 더 뭉클했다. 이렇듯 ‘그건 사랑이었네’는 나에게 ‘그건 그리움이었네’로 다가왔던 책이었다.


난 한비야의 책을 Collection으로 가지고 있다. 모두 읽은 건 아니다. 왜냐면 그녀의 책을 읽으면 마치 나도 한비야처럼 오지로 뛰어들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살아야만 잘 살은 것 같은 느낌. 물론 그것은 나에게 큰 그림을 그리게 해 주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해 주며 희망을 품게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닌 것 같은 뭔가 잘못 살고 있는 느낌이 들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슬며시 옆으로 제쳐 놓았던 책들이다. 아마도 그 당시, 나에게 주어진 삶을 귀하게 느끼지 못하고 중심을 잃고 주관 없이 뜬구름만 잡고 다니던 시기여서 더 했을 것이다. 그랬던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인제는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며 몽상 속에 빠진 내가 아닌 굳건히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나니까.


비야 언니의 열정을, 비야 언니의 삶에 대한 사랑을, 비야 언니의 절절한 인류애를 내 가슴에 조심스레 담는다.. 내가 언니처럼 오지 탐험가로 나서진 않겠지만, 내가 언니처럼 공부하겠다고 보스턴으로 날아가 지야 않겠지만, 세계 시민 의식 속에 내가 있는 이 작은 우주에서 벗어나,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사는 내가 되어야 하겠다는, 새로운 삶의 세계관을 안겨준 책이었다.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에서 내가 있는 곳이 어제보다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내가 되어야지.. 하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 언젠가 그 약속을 이루었음에 대한 벅찬 감동을 나누게 되는 축복의 시간이 내게 주어지기를.


비야 언니, 지구 반대쪽 어디에선가 언니를 응원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기억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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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리뷰를 쓰고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비야 언니는 이미 늦게 떠난 유학에서 돌아오셨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셨다.

나를 깨어있게 했고, 공부하게 했고, 끊임없이 시도하게 하며 영감을 주셨던 나의 롤 모델..
늘 하느님의 축복이, 삶의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드린다.




* 2010년 6월 16에 쓴 리뷰를 정리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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