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Feb. 2022
나의 반려인은 20대 초 설익은 나이에 큰 일을 겪었다.
모두 피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모두가 겪는 일.
30대 중반의 나에게 그 일이 닥쳐왔을 때, 그의 진정성 가득한 눈빛과 배려는 나를 살게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회사를 폐업하는 일이 1~2년 새 한꺼번에 닥쳐왔었다. 의지할 수 있는 한 사람, 그의 진심이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었다.
12년을 함께 살아왔고 여전히 서로에게 변화를 바라는 모습들이 남아 있다.
하지만, 굳건히 지켜가는 각자의 성격으로 빚어지는 사건들은 그저 작은 툭탁거림으로 끝날뿐 더 이상 원초적인 문제로 번지지 않는다. 하루하루의 고마움과 신뢰가 쌓인 결과다.
삶에서 겪는 힘듦 앞에 두 손 잡고 힘이 되어 준 서로에게 ‘변화하지 않는 건 그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스퀘어 안에 맞추려 했던 연애 초기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그에게 고마운 게 참 많다. 사랑 안에 커지는 고마움은 단단한 결속의 모습을 갖춘다.
고마움으로 다져진 의리는 작은 흔들림을 막아내는 무적 방패가 된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쓰는 그가 돌아오지 않는 마음들에 상처받는 걸 종종 본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가벼워지자고 말한다. 내 마음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무게를 인지하고, 마음을 담지 않아도 되는 일들에서 마음을 떨어뜨려놓는 연습을 하자고 말이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자라온 환경도, 지금 처해 있는 상황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벌어진 상황의 팩트에만 집중해야 한다. 팩트만이 팩트일 뿐, 감정을 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마음이 다치지 않는다.
‘꽃보다 청춘’에서 이적이 자신의 배려를 형들이 몰라준다고 서운해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이후 그는 윤상이 우울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게 되고, 그 아픔을 늦게 알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서운해했던 모든 순간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린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 아무리 친해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가족이라도 각자의 삶이 우선이다.
조심해야 한다는 표현을 쓴다는 게 슬프지만, 같이 살지 않는 가족에게 건네는 대화에는 배려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사이이고 친한 사이임에 분명하지만, 일상을 함께 하지 않는 가족의 상황을, 컨디션을, 그날의 감정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한껏 신나거나 무척이나 슬픈 오늘의 나의 온도가 그들과 맞지 않을 수 있다.
‘별일 없지?’라고 묻는 부모님의 질문에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는 자식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부모님 마음만은 편하길 바라며 목소리에 한껏 밝음을 장착하고 통화를 마치려 노력한다. 대부분의 우리는 힘든 상황을 가족에게 알려 걱정 끼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누구나 떠안고 가는 각자의 삶의 무게가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을 사회성과 매너라는 표정 뒤에 감추고 살아간다. 내가 숨기고 있는 나의 감정과 표정은 까맣게 잊은 채, 타인의 삶을 그들의 표정으로 어림짐작할 때가 있다.
함께 산 20년과 떨어져 산 20년.
과거에 함께 한 시간들과 추억 안에 멈춰진 신뢰와 결속은 성인이 되어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서로에게 얼마나 단단하게 남아 있을까. 가족은 어떤 말을 해도 다 이해해 줄 것 같다 가도, 농담으로 던진 말 한마디에 소원해질 수 있는 관계 같다.
일상을 함께 하지 않는 가족의 오늘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다.
나는 그저
나의 일상 안에 함께 숨쉬는 그에게,
그의 진심을 담은 예쁜 눈동자에,
먼저 챙기고 배려하느라 늘 상처받는 그의 마음에게,
같은 말을 반복한다.
‘마음도 많이 쓰면 닳아.
알아주길 바라지 않고 상처받지 않을 딱 그만큼만 마음을 써 봐.’
by Angella K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