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막내인 나는 30대중반의 나이에도 남은 가족들의 보호속에서 그저 숨쉬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됐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되어 그렇게 슬픔 속에 모든 사고를 멈추고 있었다.
2살밖에 많지 않은 오빠는 어느새 나의 엄마아빠가 되었고, 어떻게든 빈자리를 채워주려 노력하는 오빠를 나는 일방적으로 의지했다. 긴 시간, 나는 나의 슬픔에 쌓여 오빠의 슬픔을 한번도 보듬어주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3년쯤 지나 오빠는 나에게 봉투를 하나 건넸다.
봉투 안에는 보증서에 붙어있는 다이아와 현금이 들어 있었다. 보증서의 날짜는 1997년이었다.
"엄마가 준비해 놓았던 거야. 반지든 뭐든 너 하고 싶은 거 해..."
엄마가 준비해 놓은 막내의 예물에 오빠는 쥬얼리를 만들 현금을 넣어 건네 주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3년은 오빠가 보기에도 불안했으리라. 식사자리든 술자리든 누군가 가족얘기를 시작하면 그냥 눈물이 흘렀다. ‘엄마’라는 단어는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흐느낌으로 나왔고, 결국 어디에서든 가족얘기가 나오면 자리를 떴다.
그러다 생각했다. 엄마는 이렇게 슬퍼만하는 나를 보고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는...
누굴 만나든 ‘아들이야, 아들’이라고 말하며 내가 얼마나 용감하고 거침없이 세상을 활보하는지 자랑하던 엄마다. 나는 엄마의 딸답게 씩씩해져야 한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나의 감정을 조절하며 조카들에게 엄마(할머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오빠가 건넨 봉투는 오빠의 걱정이 조금은 가셨다는 증거같았다.
나는 어릴때부터 결혼식을 할 생각이 없었다.
왠지 형식적인 결혼식이 재미없어 보였고, 언젠가 결혼식을 한다면 그건 엄마아빠를 위한 것이리라 생각했었다. 나는 이제 결혼식을 하지 않아도 된다. 언니오빠가 결혼해서 조카가 4명이니 나는 안해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피력하며, 사회가 지워준 책임감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길게 얘기했지만, 결론은 엄마의 다이아가 예물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게 오빠가 건넨 봉투는 나의 서랍속에서 6년간 더 잠들어 있어야 했다.
2018년 말, 해외 출장을 다녀오던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랑 함께 다니면 되겠네…’
엄마는 내가 하는 일을 늘 궁금해 했고 재미있어했다. 해외공연 얘기도, 공연 만드는 얘기도...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바지를 주로 입는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 버릇이 있다. 뭔가 걸리는 느낌이 싫어 반지를 끼지 않는다.
팔찌는 손 씻을 때 빼놓고 그대로 나오는 경우가 많아 자주 잃어버린다.
목걸이라면 언제나 하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잃어버리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그래, 목걸이를 만들자.'
한 단계 진전은 있었으나, 이 또한 바로 실천이 되지 않았다.
'어디에 맡기지?'
일이라면 추진력이 있다 못해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개인적인 일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렇게 또 몇 개월이 흘러갔다.
모임에서 만나 금새 팔짱을 끼게 된 '삶이 배려' 자체인 M언니는 금속공예를 하는 아티스트다.
반려견과 반려묘가 1년사이로 구름다리를 건넌 후 은둔(?)의 시간을 갖고 있던 언니와 나는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통화하면 늘 한시간 넘게 수다를 떨곤 한다.
언니의 작품은 내 생활 곳곳에서 함께 한다.
집들이 선물로 받은 '연못시계'는 실버톤의 연못 위에 섬세하게 세공된 물고기가 시침과 분침을 가리키고, 고급스러운 색감과 질감의 가죽가방은 나의 가장 소중한 물건들을 담아 지켜준다.
2019년 2월의 어느 날,
그 날도 한시간 넘는 수다로 서로의 일과 안부를 묻고 소소한 주변의 변화들을 얘기하고 있었다.
작업이 밀려 많이 바쁘다는 언니는 어느 쥬얼리회사의 SS시즌 디자인과 샘플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쥬얼리 회사요? 언니, 쥬얼리 디자인도 해요?"
"응, 고맙게도 몇 년 시즌별로 디자인을 하게 되네."
내가 믿고 따르는 착하디 착한 언니가 쥬얼리 디자인을 하고 있다니!
우리는 곧바로 접선장소와 시간을 정했고...
그렇게 한달간의 상의끝에 엄마의 다이아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걸이가 되어서 돌아왔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도같은 목걸이는 내 심장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와 함께 살아간다.
엄마는 엄마의 말처럼 ‘훨훨 날아가’ 나와 함께 세상을 보고, 나와 함께 사람들을 만나고, 나와 함께 새로움을 경험하며 이제 모든 순간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