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ura Flòraidh Cameron-Lewis
2011년 3월.
한국무용의 대가인 안무가 국수호의 ‘코리안 드럼’을 어셈블리홀 메인홀에서 공연하기로 결정한 후, 나는 루이스에게 홍보대행사를 추천해 달라고 말했다. 루이스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라우라의 이름을 꺼냈고, 배우이자 싱어로 활동한 그녀의 화려한 경력과 에든버러 축제 참가 경험에 비해 홍보 리퍼런스가 비교적 적었음에도 나는 그녀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했다. 라우라를 추천한 루이스에 대한 신뢰는 페이퍼에 적힌 화려한 리퍼런스와는 비견이 될 수 없을 만큼 명확하다.
성공학의 대가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는 그의 저서 <신뢰의 속도>에서 신뢰가 '가장 비싼 자본으로 거래 속도를 빠르게 하고 거래 비용을 낮추며', 5단계의 신뢰도 중 가장 높은 단계는 ‘말 한마디로 일이 진행되는 단계’라고 말한다. 꾸준히, 성실히, 묵묵히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쌓은 신뢰의 힘은 늘 값지게 작용한다. 폴과 함께 준비한 런던 축제가 그러했고, 윌리엄과 시작한 코리안 시즌이 그러하다. 이번에도 우리의 5단계 신뢰 시스템이 작동했다.
2011년 8월 에든버러.
루이스의 소개 이후, 봄부터 이메일과 전화통화로 함께 일하던 라우라를 만나러 스푼Spoon으로 향했다. 니콜슨 스트리트에 위치한 스푼은 축제 거리인 로얄마일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건물에 도착해서야 이곳이 예전에 자주 방문하던 니콜슨 카페 자리에 새로 생긴 카페임을 인지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조앤 롤링 동생의 남편이 운영하던 카페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던 이곳을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 10년은 현지인답게(?) 관광객이 방문하는 유명 관광지를 찾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2009년 인테리어와 메뉴를 바꾸고 스푼이 오픈했다. 축제 기간 매일 지나다니는 길의 건물 2층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2년이 지나서야 알게 됐지만,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카페답게 친구들이 만남의 장소로 자주 언급하던 곳이라 그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좁지만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계단을 올라가자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커다란 창문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로 카페는 마치 빛으로 가득한 영화 세트장을 연상시켰다. 막힘없이 펼쳐진 공간에 각기 다른 모양과 크기의 10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고급스러운 검붉은색 가죽 소파부터 따뜻한 질감의 각기 다른 원목의자, 화려한 무늬의 스테인리스 의자, 포근해 보이는 패브릭 의자에 다양한 쿠션들까지 통일성을 찾아볼 순 없지만 그 다양함이 잘 어우러져 편안함과 재미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테이블마다 올려놓은 화병에는 화이트, 퍼플, 옐로우, 핑크, 블루 칼라의 이름 모를 꽃들이 무심하게 툭 꽂혀 있고, 크고 작은 화분들이 말 그대로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무심한 듯 어우러져 멋스러운 공간을 연출해냈다.
나는 입구에 우뚝 선 채로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돌리며 라우라를 찾았다.
카페 중앙의 검붉은 가죽 소파에 앉아 여배우 포스를 풍기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큰 눈과 오독한 코, 매혹적인 붉은 입술을 담고 있는 작은 얼굴, 화려한 붉은 기가 도는 탄력 있는 긴 파마머리에 글래머러스한 그녀는 ‘화려하다’는 표현이 정확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라우라도 금세 나를 알아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다가왔다.
배우가 아닌 한국 공연의 영국 홍보대행사 대표로 나오는 자리임을 의식해서인지 포멀하고 깔끔한 세미 정장 차림의 그녀는 언뜻 전문가 포스를 풍기려 노력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메일과 유선상으로 3~4개월간 합을 맞춰 왔으나, 아시아 클라이언트와의 첫 대면이라는 미지의 상황이 그녀를 조금 긴장시킨 듯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홍보는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 관계성이 일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당시에는, 아니 지금까지도 함께 일하는 현지의 홍보마케팅 회사 사람들에게 나는 그들의 첫 번째 한국인 혹은 동양인 파트너인 경우가 많다. 그녀는 그녀가 처음 함께 일하게 된 한국 회사 대표에 대해 아시아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한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수개월만에 드디어(Finally!) 대면한다는 반가움을 꽤나 극적으로 표현하며 긴 포옹을 이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공통의 주제인 루이스의 근황 이야기를 꺼냈다. 일종의 유대감이 형성되자 그녀는 금세 마음을 열었고 특유의 화사하고 편안한 미소를 뗬다. 매혹적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하는 특유의 버릇은 누군가를 매료시키려는 의도가 없음에도 사람들을 그녀의 입에 집중하는 마법을 부렸고, 그린과 그레이, 브라운이 섞여 빛에 따라 변화무쌍한 그녀의 눈동자는 뛰어난 공감능력을 보여주었다. 미세한 감정의 변화까지 모두 드러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무대 위 연기자로서의 그녀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고, 전쟁 같은 축제의 첫 주 홍보 미팅에 미사여구와 사족은 불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카푸치노와 블랙티를 틈틈이 홀짝이며 5월부터 8월 초까지 진행한 홍보 상황을 확인하고, 첫 주에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각 공연별 포토콜 일정과 참여하는 언론사 및 기자를 꼼꼼히 체크해 나갔다. 그녀의 목소리와 언어에서 해야 하기야 하는 일이 아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주도적으로 행하는 사람들 특유의 책임감과 추진력이 묻어 나왔다.
그녀는 나의 첫 번째 PR person이 아니다. 1999년부터 공연의 장르, 행사의 테마와 규모에 따라 몇몇 큰 PR Agency와 몇 명의 프리랜서 PR Person을 거쳐오며, 나는 첫 미팅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인지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에 대한 믿음이 깊어져 갔고, 나는 우리가 오래 사귈 좋은 친구가 되리라는 걸 쉬이 예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스푼’은 2020년 10월 코로나로 인한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그 해, 라우라는 축제 첫 주에 스콧츠맨The Scotsman, 리스트The List, 스테이지The Stage 등 축제 리뷰를 담당하는 메인 언론사의 리뷰어 관람을 10명 이상 확정하였고, 스콧츠맨 단독 인터뷰와 STV 인터뷰를 진행시켰다. <코리안 드럼>은 스콧츠맨 1면과 페스티벌 페이지 1면을 장식하며 대극장인 어셈블리홀(국회의사당)의 메인홀에서 27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상연하였고, <The Stage>로부터 '최고 수준의 소리와 움직임과 색이 놀랍도록 장관을 이루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이끌어냈다.
축제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앞으로 에든버러에 선보일 한국 공연은 당연히 그녀가 홍보를 맡아야 한다고 얘기했고, 그녀는 입꼬리를 한껏 올리며 다가와 나를 안았다.
2012년 3월, 우리는 축구를 소재로 한 한국 퍼포먼스의 축제 참가를 준비하며 프리뷰 기사 작업을 위해 한국으로 초청할 저널리스트를 고민하고 있었다. 라우라의 추천으로 나는 축제의 기억을 더욱 따뜻한 빛으로 채워준 아름다운 시선을 가진 켈리를 만나게 되었다. (#. 그녀가 세상을 보는 시선)
인연의 고리는 유대과 공감으로 결속되어 아름답게 연결된다. 사랑하는 루이스의 소개로 라우라를, 라우라의 소개로 켈리를, 켈리의 소개로 웬디를, 그리고 웬디를 통해 또 소중한 인연이 연결되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채워간다. (#. 웬디는 2015년부터 현재까지 코리안 시즌의 홍보를 맡고 있다.)
2013년 8월.
우리는 라우라의 집에서 10월이 생일인 보Beau의 조금 많이 빠른 생일 축하파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2011년에 라우라는 앤드류와 결혼했다. 5월에 주고받은 이메일 하단에 ‘허니문 중에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을 수 있으니 언제든 연락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메일과 통화로 업무적인 대화만 나누는 누군가의 허니문은 아무런 감정도 불러오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홍보 진행상황이 적혀있는 본문에 집중하느라 이메일 하단의 내용은 의례적으로 작성하는 '회신을 기다리며...' 정도의 문장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2012년 10월, 이름 그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 보Beau가 태어났고, 출산과 육아로 라우라는 홍보일을 잠시 멈췄다. 함께 한 2년의 시간은 어느새 우리를 일 없이도 만나는 사이로 만들었고, 나는 보의 생일선물인 한복을 구김 없이 가져가고 싶은 마음에 캐리어보다 커다란 박스를 고이고이 영국까지 운반하여 블랙캡을 싣고 라우라의 집이 있는 리쓰Leith로 향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며 인지하지 못한 어느 순간의 대화들로, 스콧츠맨 편집장으로 알고 있던 라우라의 남편 앤드류의 본캐가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과 2007년부터 라우라와 함께 밴드 활동을 했다는 과거의 역사, 그리고 언론사 편집장으로의 직함은 현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부캐라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몇 차례의 만남으로 조금은 편한 사이가 되었다 생각했으나, 언론사 편집장으로 외부 카페에서 만났던 앤드류와 라우라의 남편이자 보의 아빠로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만난 앤드류는 그 친근함의 온도가 달랐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되는 평범한 진리. 직업과 직함이라는 갑옷을 툭 벗어놓으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가족이자 그저 인간의 온기를 간직한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
앤드류와 나는 한 사람을 하나의 직업으로 말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꽤나 격하게 공감하며, 사랑하는 사람(라우라와 보)이 같다는 유대를 형성한 사람들답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미소를 나누며 소소한 대화를 이어갔다.
라우라의 집이 위치한 리쓰 워크Leith Walk에서 바닷가까지는 걸어서 10분남짓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한 날의 특별한 저녁 장소를 포토벨로Portobello해변으로 정했다.
포토벨로 해변가에는 바다를 향해 5~6개의 레스토랑&펍이 드문드문 늘어서 있었다. 도심으로 한 블록만 들어가면 바다 뷰는 아니지만 음식에 대한 리뷰가 좋은 십여 개의 식당이 즐비해 있지만, 우리는 황혼에 짙은 앰버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바다를 바라보며 긴 저녁시간을 보내려 <이스파이The Espy>의 해변가 야외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가 버거인지 '스테이크 비프 버거'로 시작되는 리스트가 메뉴판 한 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어니언과 칠리잼, 레드페퍼와 고트치즈, 베이컨과 블루치즈, 해기스와 체다치즈, 모짜렐라와 아보카도 등 10여 개가 넘는 조합의 버거와 영국의 펍&레스토랑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샐러드, 스테이크, 해산물, 어린이 메뉴, 디저트, 음료, 주류 등을 모두 갖춘 풍성한 구성에 레스토랑만의 독특한 소스 조합이 매칭되어 메뉴를 읽는 재미를 배가시켰다.
한국에서나 해외에서나 바닷가에 가면 습관적으로 해산물 메뉴를 고른다. 찬찬히 메뉴를 읽어 내려가던 나의 눈은 피쉬앤칩(Battered Haddok and Fries with Homemade Tartare Sauce)에서 멈췄다.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직접 만든 타르타르소스와 함께'라는 부분에서 기분이 좋아진 것도 한 몫했지만, 나는 희한하게도 '피쉬앤칩'을 발음할 때 입꼬리가 올라간다.
영국친구들과 음식 이야기를 나눌 때 친구들이 취하는 스탠스는 조금씩 다르지만 음식 이름이 몇 가지 나오지 않아 대화가 금세 끝나버리는 상황은 대부분 동일하다. 결국 많은 상황에서 나는 '피쉬앤칩 좋아해'라는 얼토당토 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겸연쩍게 미소를 짓곤 한다. 경험의 축적에 의한 조건반사 같은 건지 '피쉬앤칩'를 말할 때면 나의 입꼬리는 언제나 슬그머니 올라가 있다.
와인을 고르며 의견을 묻는 라우라에게 한국식으로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거 시키세요'라고 말한 후, 나는 메뉴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려한 여배우', '커리어우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정확히 부합되었던 그녀는 이제 세상 모든 일을 이해할 것 같은 엄마의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녀의 눈은 더욱 풍부한 감정으로 깊어졌고 자주 촉촉해진다.
어느새 어둠이 내리며 검게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발그레해진 볼의 라우라가 작은 속삭임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Sorrow, Sorrow... My heart is broken. My tear. Thank him. Birth. Sunshine on me. 즉흥적인 단어들로 채워지는 듯한 그녀의 노래를 파도소리와 함께 들으며 멜로디를 모르는 후렴구를 어느새 따라 부른다. 두루두루두... 두루두루두...
2015년 8월.
나는 라우라+2를 만나러 하이스트리트High St.에 위치한 스코티쉬 스토리텔링 센터Scottish Storytelling Centre로 향했다. 우리의 만남에는 순차적인 변화가 있었다. 어느새 4살이 된 보Beau와 유모차에 타고 있는 벌티Bertie까지 우리의 모임은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으로 마법처럼 행복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라우라와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최애 공간 중 하나가 된 스토리텔링 센터를 알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활 반경은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확장된다.
2007년 문을 연 스코티쉬 스토리텔링 센터는 그 자체로 역사가 깊지는 않지만, “A home for Scotland’s Story’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보물섬과 지킬 앤 하이드로 유명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주인의 무덤을 지킨 충직한 개 그레이플라이어스 바비Greyfriars Bobby, 잠자리요정 위 윌리 윙키Wee Willie Winkie, 상상의 괴물 그루팔로the Gruffalo와 인버네스의 네스호에 산다는 공룡을 닮은 네시Nessie 등 길고 긴 스코틀랜드의 역사 속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과 방문하기 좋은 센터의 카페에는 엄마의 마음으로 직접 베이킹한 홈 메이드 크로와상과 스콘, 다양한 번Bun과 따뜻한 수프가 있어 간단한 요기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카푸치노와 블랙티, 파이를 주문하고 틈틈이 아이들을 살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전히 축제에서 새로 발견한 보물 같은 작품을 추천하며 흥분하지만,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놀라운 에피소드로 가득한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와 있다. 라우라는 그녀의 아이들이 자연에서 자라길 바라며 새로운 보금자리로 스카이섬Isle of Skye에 위치한 위그Uig의 오래된 호텔(호텔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른/긴 단층 건물)을 집이자 동네 커뮤니티센터로 꾸밀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특정 단어들을 말할 때 스코티쉬 게일어Scottish Gaelic를 사용한다. 라우라가 말한 Isle of Skye의 Uig도 그녀의 발음만으로 스펠링을 떠올리기 어려웠고, 추후 스펠링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에는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보Beau는 스토리텔링 센터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축제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보에게 다가가 포스터의 프로그램을 설명해 주던 나는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고민되는 단어를 발견하고 라우라에게 물어보려다 멈칫했다. 프로그램 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단어 ‘Ceilidh’의 뒤에 붙은 dh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나중에 검색해서 알게 된 ‘케일리Ceilidh’는 게일어로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에서 행하는 춤과 음악이 있는 사교행사를 뜻한다.)
스코틀랜드 게일어는 2005년이 되어서야 공식 언어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민족적 언어적 종교적 배경이 다르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게일족, 스코트족)이 주류이고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주류이며, 외교와 국방, 통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분야를 각각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는 2016년 브렉시트 당시 62%의 투표자가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했다. 하지만 영국 전체 투표의 결과에 따라 영국은 브렉시트를 단행하였고 2021년 1월 31일 EU에서 탈퇴했다.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보면 본인들의 의사를 존중받지 못했다 생각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된다.
영국 전체 인구수 6,750만 명 중 스코틀랜드 인구는 550만 명 정도로 비교적 적지만, 면적은 영국 본토의 3분의 1에 달한다. 영국에게는 스코틀랜드가 영국이 산유국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지역이지만, 스코틀랜드에게 이 석유와 가스전은 분리 독립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 되는 듯하다.
지난 9월 유명을 달리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장례식장에는 그녀가 생전에 요청한 대로 백파이프 연주가 울려 퍼졌다. 백파이프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악기이다. 많은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여왕이 영국 연합국에서 분리 독립하려는 스코틀랜드에 '연합국에 남아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그녀의 스코틀랜드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여름에는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홀리루드궁이나 근교의 밸모럴성에 자주 머물렀고, 생을 마감한 곳 역시 밸모럴성이다.
여왕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스코틀랜드는 다시 분리 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2023년 10월 분리 독립 주민투표를 다시 진행하려 하며 독립이 결정되면 EU에 복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라우라가 꾸준히 포스팅을 올리는 페이스북에는 사랑스러운 삼남매(2018년 셋째 아들 Seora가 태어났다.)의 성장기 외에 스코틀랜드 문화와 전통을 이어가려는 그녀의 노력이 모여 있다.
그녀를 쏙 빼닮아 천사 같은 3명의 아이들은 태어난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엄마아빠 덕분에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대자연에서 아름답고, 평화롭고, 개성 강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으며, 위그의 작은 호텔은 그들의 집이자 지역 커뮤니티의 장으로 성장하고 있다.
2022년 라우라는 위그에서 스토리텔링 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그녀가 포스팅한 페스티벌 포스터에는 '모든 프로그램은 게일어와 영어를 동일하게 사용하며 게일어 연극의 경우 영어 자막을 사용한다'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이, 위그의 아이들이, 스코틀랜드의 아이들이 게일어가 모국어임을 인지하고 2개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습득하기를 바라며, 강요하지 않는 참여 방식으로 스코틀랜드 언어와 문화예술을 알리고 지켜나가려 노력한다.
라우라가 강요가 아닌 방식으로 지켜 나가려는 그녀의 언어. 모국어.
그녀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개인의 커리어보다 큰 사명을 느낀 게 아닐까... 유추해 본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
언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하고 서로 소통하는 매개라는 단편적인 사실을 뛰어넘어, 한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문화와 지식을 기록한다. 언어에 녹아있는 수많은 문화현상을 우리는 언어가 아닌 형태로 표현하거나 기록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저서 <A Little Book of LANGUAGE>의 한국 제목은 <언어의 역사>이다. 'A little book'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친밀함은 '역사'라는 거대한 단어로 대체되며 원제의 매력을 잃었다. 출판사는 독자들에게 말과 글에 대해 설명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가득 담은 이 책에 걸맞는 한국어 제목을 찾아주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책의 아이덴티티를 담으며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정확한 한국어 제목을 찾기란 어려웠으리라 짐작된다.
번역은 어렵다. 페스티벌 친구들에게 각 해당 글을 보내주기 위해 한글을 영어로 번역하면 할수록 한글의 위대함을 느낀다. 한 단어를 다른 언어의 한 단어로 동일하게 치환할 수 없음에 답답하다가도 고유언어의 낱낱의 단어에 담긴 역사와 문화와 감정을 발견하며 놀라움을 만끽한다.
<A Little Book of LANGUAGE>에는 '현존하는 6000여 개의 언어 중 대부분은 소수언어이며 100년 내에 전 세계 언어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라져 가는 언어에 대한 얘기를 접하면 생각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녀가 떠오른다.
언어가 지닌 다양성은 모두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획일화될 수 없음을 강조하는 작가의 글을 접하며,
2020년 축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나의 초심이 떠오른다.
'차별과 혐오의 낙인 없는 세상을 위해 우리에겐 서로의 다름을 다양성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존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축제가 필요하다.'
언어가, 문화가, 예술이, 축제가, 우리의 소중한 유산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다름의 가치를, 다양성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다. 알지 못하는 언어학자와 끈끈한 동지애를 느낀다.
라우라의 기획 안에는 그녀의 강한 의지가 강압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담겨 있다.
'사람이 모이면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인다'는 영화 <말모이>의 명대사처럼 그녀가 기획하는 페스티벌에 사람이 모이고 말이 모이고 그녀의 고귀한 뜻이 많은 이의 뜻이 되어 (2005년까지 공식 언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인)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스코틀랜드의 문화를 담고 쓰이고 후세에 전해져 그렇게 세상을 다름으로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기를 그녀의 속삭이는 노래처럼 작은 목소리로 소리 내어 기도한다.
P.S/
이 글을 쓴 덕분에 다시 한번 읽어 본 '조선말 큰사전(1949년 우리말 큰사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머리말을 그대로 옮겨 적는다.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만 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근사한가. 요즘 말로 가슴이 웅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