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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젤라권 Jul 05. 2023

다섯번의 질문

7시 45분, 46분.

하루의 루틴을 시작한다.

요즘은 자체 써머타임이 시작되어 6시 45분에 눈을 뜨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은 내 몸의 자체 알람이 울려 떠졌던 눈을 다시 감고 '더 자야 돼...' 최면을 걸었다.


첫 잔의 물로 입을 헹궈 뱉어내고, 두 번째 잔의 물은 천천히 원샷.

물을 마시며 동시에 550ml의 정수를 담는 버튼으로 비어있는 한 손을 보낸다.

지난주 배달 온 에스프레소 분쇄커피의 향이 2중 지퍼백에 고스란히 담겨 커피를 내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의 첫 잔은 연하게. 커피를 내린다.

 

비가 온다는 걸 알면서도 들여놓지 않은 슬리퍼는 흠뻑 젖어 무거워 보인다.

커피잔을 들고 창문에 코를 대고 발코니를 한참 바라보다 나가는 걸 포기하고 창문을 연다.

잘 열지 않던 테이블 옆 작은 창문을 열고 자주 앉지 않는 의자에 앉는다.  

작은 창에서 커튼이 흩날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좋아...' 입꼬리가 올라간다. 눈이 작아진다.


바이브 앱을 열어 무심히 'Pop Mix'를 누른다. Ed Sheeran의 Supermarket Flowers가 흘러나온다.

할렐루야. 운 좋게도 오늘은 첫 곡부터 성공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는 상쾌함과 시적인 가사와 최소한의 인스트루먼트를 사용한 감성적인 에드 런의 노래가 완벽한 아침을 만든다.

가사에 나오는 매튜와 존은 이미 친구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고, 엄마의 모습을 한 천사라 불리는 그가 사랑한 누군가가 나의 반려인 같아 감사하다가, 그의 곁을 떠나 천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덜컥 마음이 내려앉는다. 'You were an angel in the shape of my mum...'




사랑하는 마음과 다르게 우리의 하루하루에는 서운함과 오해가 난무하다.

말 한마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해도 이미 기분이 상한 감정들은 상대에게도 똑같은 생채기를 남기고 싶어 한다.

너무 작은 일이기에 '아무 의미 없다...'를 되뇌지만 수십 년 가지고 있던 고집스러운 생각과 감정들은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증명이다.


어제 저녁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러 들른 그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가 된) A와의 대화 중 A의 입에서 나온 파편적인 단어 '귀밝이술'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나는 별스럽지 않게 맞장구를 치고 있었고, 나의 반려인은 그게 뭐냐고 물었다. A도 나도 그저 '정월 대보름에 귀를 밝게 한다고 마시는 술이잖아'라고 간단히 대답했고, 그 이상 할 얘기가 없었다. 얼만큼 취기가 올랐는지 알 수 없는 반려인은 '너희들도 잘 모르네'라는 유쾌하지 않은 대사로 대화를 이어갔고, 재차 나에게 '당신도 그걸 알아?' '진짜 알아?'라며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우리는 '그럼 부럼 깨기의 부가 무슨 부고 럼이 무슨 럼인지, 그 유래부터 정확히 알아? 그냥 이름 들어봤고 무슨 의미인지 알면 아는 거지, 아는 걸 모른다고 그러냐'라고 대화를 넘겼다.


그 단어를 들어봤고 알고 있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따져 묻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의 동일한 질문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당신도 진짜로 그걸 안다고?' 다섯 번째.


그는 술을 먹으면 했던 얘기를 반복한다. 나는 반복해서 같은 이야기를 듣는 걸 싫어한다.

몇 년 전 나는 그와 협약을 맺었다. 그가 술을 마시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딱 세 번까지 들어주고, '이제 그만'을 외치기로.

다섯 번은 위험한 숫자다.

같은 질문을 다섯 번 한다는 건 상대의 대답을 믿지 않는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는 설명은 힘을 잃는다.


물론 말다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너무 소소한 일이고 우리는 이미 비슷한 상황을 수차례 겪었기에 우주의 먼지 같은 이야기로 감정소모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억지웃음을 짓지도 않는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거짓 감정 표현은 나의 정서에 좋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느 정도 나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려 한다.


그저 '잘 자'라는 말을 건네는 정도로 나는 스스로 어른임을 증명한다.

취객임에도 눈치는 살아있는 나의 반려인은 자신을 미워하지 말라는 얼토당토한 말을 남기고 잠이 들었다.



By 엔젤라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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