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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gelo Jan 06. 2021

정의와 책임,  재량 사이에서 길을 잃다

정인이 사건에 부쳐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담아 쓴다.


정인이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참담하다고 밖에 표현 못할 아동학대 살인사건.

세월호 사건과 마찬가지로

막을 수 있는 '인재'였고

담당자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에 가득하다.


파면하라.

청와대 청원에는

담당자들의 강력한 징계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분노의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사건은 벌어졌고

재발방지를 위해 대책을 고심하는 데에

좀 더 에너지를 쏟아야 하지 않을까?


신상필벌은 엄격히 행하는 게 옳지만

업무의 결과로 조직과 민원인에게

탈탈 털려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이게 얼마나 담당자를 수동적으로 만드는지 알고 있다.


관성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적극행정은 커녕 일반인들에게 욕먹는

공무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지내다가

관리직으로 승진하고,

신임자를 똑같은 모습으로 키워내게 된다.


이 순간에도 드러나지 않았을 뿐

가족에 의해 학대당하는 수많은 약자들이 있고

법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상황은 반복될 수도 있으니..


재발방지를 위함에 있어

아쉽게도 담당자의 징계는

수단이 될 수 있을지언정 해답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형제도가 강력범죄율을 줄일 수 없는 것처럼.




담당자들의 업무처리에 대한 변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째서 이런 결과로 끝나버렸는가에 대한

고찰을 해보고 싶었다.


사실 고찰이라고 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은 미비한 법과 조직의 관성,

실무인력부족에 크게 기인한다.



 "저의 11월 초과 근무시간은 95시간"이라며 "아이를 맡길 쉼터가 없어 전국 쉼터에 구걸하듯 전화해 아이를 보호해 달라고 하고 새벽에 아동을 맡기고 온다. 야간 출장비도 없다.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에 예산지원 및 처우개선을 요구한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10508593982761


내가 감기 증상 있는 환자를 이송 응급실을 못 찾아

동네방네 병원에 전화하며 골든타임을 허비하듯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도 마찬가지란다.


언론을 통해 상황 발생 시 유관기관에 협력토록 한다고

브리핑은 열심히 해대지만 실상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여전히 현장은 고되고 가용자원은 열악하기만 하다.







블라인드에 올라온 아동학대 업무를 경험한 경찰의 글.


찬찬히 읽어보면 심금을 울리는 문장이

곳곳에 지뢰처럼 존재한다.


'미안하다'

'용기가 안 난다'

'감싸주는 윗사람들은 없었다'


일반직이고 경찰이고 소방이고 왜 이리 다들 데칼코마니스러울까.




식물은 곪고 썩은 부위에 영양을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본체의 건강을 유지한다.


하지만 우리네 공공기관이 그럴 수 있을까.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나기는 피한다는 마인드로

현장 직원-하위직들을 갈궈서 바짝 웅크리고

행사 안하고 기존 업무에 집중해 용히 지내기.


사건사고의 화약고인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대형 폭탄이 터질때까지 기다린다.

아니나 다를까 강렬하고 자극적인 사고는 반복되고

그 후 이런 일은 또다시 반복되고 흐지부지 잊혀진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안타까운 사건이 그래 왔던 것처럼.


나는 이런 일을 잊고 싶지 않다.

지금의 감정을 기억하고 싶고,

비극이 반복되는 일을 막는 데에 일조하고 싶다.


생각을 남기는 걸로.

의견을 나누는 걸로.

절대 잊지 않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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